치적 세울 때만 “약속, 지키라고 있는 것”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 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국가나 지자체의 수장들이 치적을 세우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토목사업과 복지정책, 기념사업이 있다. 특히 기념사업은 토목사업이나 복지정책과는 달리 비교적 적은 비용과 소규모로 진행할 수 있어 더욱 선호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 때문에 수익성이 전혀 없음에도 기념공원 건립을 추진해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의미 없는 기념사업으로 발생하는 유지비까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 반대에서 찬성으로

14일 안동시의회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안동시의원은 ‘임진왜란 극복 기념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해 현재 18명의 의원들 중 12명 정도가 찬성의사를 비췄고 6명의 의원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동시는 예산삭감과 지역 여론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지난달부터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안동시 집행부가 건축물 규모를 기존보다 35%가량 감축하기로 하면서 반대 입장이었던 의회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이다.

반대측 의원들은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시민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찬성의원들은 기존 건립계획보다 축소된 방안을 수용하자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안동시는 2013년 국·도비 등 총 200억원이 투입되는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을 기념하는 임진왜란 역사기념관건립 사업 추진계획을 세워 안동시의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당시 사업비용 일부인 40억원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안동시는 최근까지 실시 설계 등을 진행에 왔다. 하지만 시민들로부터 특혜와 혈세낭비 등의 지적을 받아오면서 안동시의회는 지난해 예산안 심사를 통해 추경예산 4억2000만원 전액을 삭감했다.

김한규 안동시의회 의장은 “사업 추진 여부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조만간 열릴 상임위에서 추가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 열릴 시의회 임시회 추경안 심사에 관련 사업비가 다시 상정될 예정이고, 전체 의원의 과반수이상이 이미 찬성 쪽으로 돌아선 터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강행될 전망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반대하던 의원들이 찬성 쪽으로 선회한 이유도 모르겠지만 과거 복지예산 1억원에도 벌벌 떨었다”며 “집행부가 지역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200억원짜리 기념공원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도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대여론 속 강행에 깊어지는 갈등의 골
타당성 없는 건립…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예천 충효테마공원.

반면 수익성과 타당성조사를 하지 않고 이미 건립돼 유지비만 축내는 기념관도 있다. 예천군이 유교문화권 사업의 일환으로 수백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감천면 포리 일원에 조성한 충효테마공원이 그 주인공이다. 건립 당시 충효의 고장인 예천군의 지역이미지 제고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추진했으나 현재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면서 군의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충효테마파크는 2000년부터 감천면 포리 일원 21만241㎡ 부지에 총 사업비 208억원을 투입해 충효관 및 각종 부대시설을 건립하고 민자를 유치해 유스호스텔 등 휴양문화시설과 다목적운동장, 야외수영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종합 체험 위락단지를 조성했다. 또 2010년 5월 60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천140㎡의 충효관을 건립, 개관했다.

그러나 주변 인프라 시설 부족으로 관람객들의 외면을 받으며 현재 평일에는 50여명, 주말에는 100여명 정도의 관람객이 다녀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예산 낭비의 전형적 사례로 비난받고 있다. 특히 수익은 없는데 운영비로 매년 약 1억8000만원이 소요되고 있어 재정적 어려움도 뒤따르고 있다. 충효관 내부 민속 사료관의 경우 전시 품목이 너무나 작고 빈약한데다 어린이 관람객들을 겨냥해 설치한 애니메이션 동영상 등도 조잡해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충효관 주변에 식재된 소나무 및 일부 조경용 나무들은 고사된 채로 방치돼 있다. 예천군은 유스호스텔을 비롯한 일부 부지를 민간에 매각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예천군 관계자는 “200여 억원을 투입한 충효테마공원이 관람객들로부터도 외면 받으며 지역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며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보수공사만 수개월

▲ 안용복 기념관.

건립에는 성공했지만 부실공사 논란 속에 빗물이 줄줄 새고 있는 곳도 있다. 경상북도와 울릉군은 2011년 사업비 150억원을 들여 본관(지하1층, 지상2층, 1933.35㎡)을 비롯해 사당(28.08㎡)과 동상, 주차장 및 부대시설, 공원조성, 공중화장실(82.04㎡) 등을 갖춘 ‘안용복 기념관’을 설립했다. 그러나 큰 규모와는 다르게 2013년 10월 개관한 기념관은 불과 2년여 만에 건물 곳곳에 빗물이 새고 있어 부실시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안용복 기념관 1층 로비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져 양동이로 빗물을 받는 것은 다반사였고 바닥에는 빗물을 흡수하기 위해 천을 깔아 놓을 정도였다. 또 2층 전시관 우측 창문틀 벽면에는 빗물이 샌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지하 1층 전기실에 설치된 기계는 아예 큰 비닐로 감싸뒀으며 벽면을 타고 흐른 빗물이 중요한 접지단자함 상부에 고여 감전사고에 노출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또 지하 1층 천정 비가 새는 위치에는 보수를 위한 흔적으로 보이는 흉한 구멍이 남아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야외 화장실 좌측 비탈면에는 폭우로 인해 흙이 무너져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현재 기념관은 정규직 직원 없이 무기계약직원이 관리, 관리 소홀 등을 책임질 수 있는 인사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주민 박 모씨는 “관에서 지은 건축물이 저 지경인데 일반 공사의 부실은 오죽 하겠냐”며 “국민의 혈세로 만든 부실 기념관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에 울릉군 관계자는 “하자보수 기간이 지나지 않은 만큼 철저한 점검으로 완벽한 보수공사를 시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컨텐츠부족과 보수 문제로 개관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는 곳도 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5일 부산 남구 대연동에 ‘일제강제동원역사기념관’이 준공된 이후 지반 침하와 누수 등이 발생, 14개월째 시설 보수중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대일항쟁위원회가 2016년 6월 30일자로 해체되지만, 아직까지 운영주체조차 선정되지 않아 이대로라면 올해 개관도 불투명해 보인다.

국민세금으로 날림시공…빗물은 ‘뚝뚝’
‘독불장군’식 밀어붙이기…무조건 전진

일제강제동원역사기념관은 일제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고 추도하는 첫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4년 9월 국회를 통과한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 ‘추도공간 및 사료관 조성에 관한 사항’ 규정에 따라 정부가 의욕적으로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 일제강제동원역사기념관.

부산뿐만 아니라 충남, 제주 등 지자체들이 기념관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 끝에 2008년 8월 기념관 부지가 부산으로 확정됐다. 당곡공원 내 부지 마련에 시비 91억 원, 건물을 짓는데 국비 431억원 등 총 522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선정 과정만 요란했을 뿐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보다 2년 가까이 늦은 2010년 12월 사업에 착수했지만 이후에도 예산 우선 배정 순위에서 밀렸다. 이 때문에 2012년이었던 준공일이 수차례 미뤄졌다.

또 막상 기념관은 지었지만 전시물을 확보하지 못해 컨텐츠도 부족한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은 “국가기록원 자료와 유족에게 기증받은 수기, 사진 등 192 종류 354점을 전시한다”며 “2011년 기공식 당시 30여 만 점을 확보해 전시한다고 보도자료를 낸 것을 무색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념관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만 있고 누가 운영할 것인지, 어떤 컨텐츠를 전시할 것인지 큰 고민 없이 사업을 시작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대일항쟁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시설 보수 공사는 완료했다”며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다른 기념관이나 전시관도 준공 후 바로 개관하지는 않는다. 운영주체가 선정되면 개관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해명했다.

◆ 선거위한 투자

정부와 반대여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념공원 추진을 밀어붙이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 중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당동 가옥 주변 건물들을 세금 286억원으로 사들여 4000㎡의 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혈세를 들여 기념공원을 조성하는데 대해 국민여론이 부정적으로 모이자 박근혜 정부도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좌초에 부딪혔다. 박 대통령은 “국가 경제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들여 기념 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이에 중구청 관계자는 “공원 조성에 대한 주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서울시 투자심사도 기다리는 중이라 사업을 철회할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주차장을 지하로 옮기면서 상부에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고 박 전 대통령 기념 공간은 109㎡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5·16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며 “후세와 우리시민, 외국관광객들한테 역사적 사실과 의미,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 구청장이 박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해 내년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로 박정희 기념 공원 계획을 강행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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