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몰락·재기…롤러코스터 기업史

▲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
[파이낸셜투데이=이혜현 기자] 4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패션기업 신원이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이 박성철 신원 회장의 횡령, 조세포탈 혐의 수사에 본격 나서면서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의 이미지가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1973년 신원을 창업한 이후 줄곧 경영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며 기업을 반석위에 올려놨다. 하지만 박 회장의 개인비리 의혹이 기업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있다.

박성철 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개인비리 의혹을 넘어 기업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년 100명 이상에게 전도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박 회장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믿음과 신뢰를 최고로 여기는 경영철학을 강조해 왔다.

신원(信元)이라는 사명도 믿음이 최고의 가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박 회장의 탈세와 횡령, 시기회생 등의 각종 개인비리 혐의가 백일하에 드러나 40년 넘게 공들여 쌓아온 신뢰의 기업 이미지가 편법 기업으로 추락하는 모양새다.

◆‘믿음’이 최고라더니

1973년에 설립된 신원은 1990년대부터 탄탄한 패션사업을 바탕으로 계열사를 17개로 늘리며 사업을 확장했다.

그 결과 90년대 후반에는 국내 재계 순위 31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우량 100대 중소기업에도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국내외 20여개가 넘는 계열사에서 거둬들인 총 매출은 2조원이 넘었다. 기업이 워크아웃에 처한 위기의 시절도 있었지만 단기간에 재기했다.

2003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에는 개성공단과 중국 등에 진출해서 재도약에 성공했다.

신원은 2005년부터 공격적인 경영에 들어가 그해 개성공단에 입주한 대표 기업이 됐다. 2007년에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 중 최초로 제2·3공장을 지으며 승승장구했다.

박 회장은 신원을 국내 100대 기업 반열에 올린 사업가이자 믿음, 사랑 등 기독교 정신을 기업 경영으로 내세울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믿음이 최고의 가치라는 기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사명처럼 신뢰 경영을 1순위 경영철학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신원의 성공과 재기 이면에는 박 회장의 세금 탈루와 횡령, 사기회생이 있었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박 회장 비리…기업명성 흠집
믿음·신뢰 이면의 편법 ‘민낯’

◆갈수록 늘어나는 비리

박 회장이 지난 8일 세금을 탈루하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돼 11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소환 조사과정에서 박 회장의 혐의가 충분히 확인돼 보강조사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적용한 박 회장의 혐의는 조세범처벌법상 조세포탈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채무자회생법상 사기회생·사기파산죄 등이다.

박 회장에 대한 이번 검찰 수사는 국세청 고발로 시작됐다.

국세청이 신원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박 회장이 신원의 경영권을 되찾고자 가족과 지인 등의 명의로 주식을 매입하고 수십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정황을 포착한 것.

국세청은 즉각 박 회장을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고 검찰은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해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 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지난 1일 신원 본사와 계열사, 박 회장 자택 등 10여 곳에서 대규모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03년 신원 워크아웃을 마친 뒤 가족과 지인 명의로 지주회사 격인 신원의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20억원에 이르는 증여세와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의 세금 탈세 경위는 신원의 워크아웃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신원은 1억5000만달러의 부채를 안고 1999년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박 회장은 신원의 지분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당시 박 회장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유하던 신원 주식 16.77%를 모두 회사에 무상 증여했다.

신원의 흑역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에 돌입한지 4년 만에 1조원이 넘는 빚을 모두 갚는 저력을 보였고 워크아웃 역시 5년 만에 졸업했다.

문제는 신원의 화려한 재기 이면에는 박 회장 일가가 탈세와 편법을 자행한 오점이 있다는 것.

검찰은 박 회장의 탈세가 워크아웃 졸업 시점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원의 워크아웃 기간 중인 2001년 박 회장의 부인 송 모씨는 광고대행사 티앤앰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다.

문제는 티앤앰케뮤니케이션즈가 워크아웃 졸업 후 신원 주식을 대량 매입해 경영권을 편법으로 되찾은 것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증여세와 양도소득세 등의 세금포탈이 이뤄졌다고 파악하고 있다.

티앤엠커뮤니케이션즈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론되자 박 회장이 편법으로 회사 경영권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워크아웃 당시 모든 지분을 포기한 박 회장이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신원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는 박 회장의 부인이 신원의 1대 주주인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의 최대 주주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이 신원의 지분 1%도 갖지 않고 있는 상태임에도 부인이 대주주로 있는 티엔앰커뮤니케이션즈가 28.38%의 신원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권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세 아들도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 지분을 1%씩 보유하고 있다.

광고 대행사인 티엔엠커뮤니테이션은 영업행위와 매출이 전무하고 오로지 주식소유만으로 신원의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티앤엠커뮤니케이션즈가 신원의 100% 자회사인 신원지엘에스, 신원네트웍스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검찰은 이 때문에 티엔엠커뮤니테이션이 박 회장의 경영권 회복을 위해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라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의 비리 혐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당초 국세청이 고발한 탈세 혐의 이외에 박 회장의 횡령과 사기회생 혐의가 새롭게 포착된 것이다.

검찰이 박 회장의 개인 파산 및 회생 과정을 분석한 결과 채무를 변제받기 위해 박 회장의 지인들이 채권자로 위장해 여론몰이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수법을 동원해 박 회장은 2008~2011년 기간 중 가족 명의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숨겨놓고도 재산이 없는 것처럼 속여 270억원에 달하는 개인채무를 면제 받았다.

또 검찰은 자금 추적 과정에서 박 회장이 10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정황을 잡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티앤앰케뮤니케이션즈를 비자금 창구로 활용해 가짜 거래명세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10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

세금계산서와 재무 서류를 확보한 검찰은 압수물을 분석한 뒤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여부도 확인할 계획이다.

박 회장의 횡령 혐의 수사에 대해 신원의 소액주주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스피 상장기업인 신원의 소액주주들은 박 회장의 횡령혐의가 사실로 드러나 상장폐지 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상장기업의 대표이사 등 주요 임직원이 횡령·배임을 했을 경우 상장폐지심사를 거쳐 해당기업을 상장폐지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원 측은 이번 검찰수사에 대해 “횡령 등의 혐의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검찰수사에 최대한 협조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00억원 횡령…상장폐지 위기
매출1조5000억원 청사진 요원

◆청사진 먹구름

박 회장의 비리 파문으로 신원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번 박 회장의 검찰 수사가 눈부시게 이어지는 신원의 상승세로 한껏 고무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다.

신원은 2000년대 초 워크아웃을 무사히 졸업하고 재도약 의지를 다지며 승승장구 했다.

신원은 최근 5년간 5000억원대에서 머물고 있던 매출은 지난해 6075억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600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최근 3년간 영업이익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2012년 5억8069만원이었던 영업이익이 2013년 1334% 급증해 83억2738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배 84% 증가한 154억3954만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하지만 박 회장의 비리혐의가 낱낱이 드러나며 기업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물론 소비자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신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중국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 회장은 이번 검찰수사에 앞서 지난달 29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 위치한 난징진잉백화점 본점에서 중국 대형 백화점 및 부동산기업인 진잉그룹과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회사가 50대50의 지분 투자를 해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2017년을 목표로 남성 SPA브랜드를 론칭하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신원의 여성 브랜드인 베스띠벨리와 씨 등을 진잉백화점에 입점 시키기로 했다.

신원은 이를 바탕으로 중국 진출을 가속화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2006년부터 중국사업을 해 온 신원은 MOU 체결을 발판 삼아 2020년까지 중국에서 6000억원, 2030년까지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신원에 대한 증권사 분석보고서도 긍정적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부분의 고성장세가 지속돼 매출액은 10% 이상 성장하고 영업이익은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신원 자체적으로도 지난달 19일 올해 영업이익은 22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2.9%가 늘고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6.7% 증가한 6485억원으로 예상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박 회장의 비리혐의가 불거지가 신원의 주가가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난 1일 신원의 주가는 6.52% 폭락하는 등 연일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박 회장 비리혐의로 인해 신원의 원대한 계획에 차질이 빗어지는 것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향후 검찰의 수사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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