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벌어 0.5원 주고 ‘생색’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국내 대표 기업들의 ‘무정한’ 기부에 따가운 눈총이 쏠리고 있다. 10대 그룹 중에서도 가장 기부에 인색했던 것으로 나타난 LG그룹은 매출 1000원 당 고작 0.5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반면 ‘생색내기’는 도를 넘어섰다. 어마어마한 성금을 내놓는다며 세월호 참사까지 홍보에 이용했지만 연간 기부금 규모는 1년 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비극에 흐르는 국민들의 눈물까지 이용하는 뻔뻔함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냉랭해지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이 벌어들인 돈 1000원 가운데 고작 1.1원만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에 가장 인색했던 곳은 LG그룹이었고, 그나마 삼성그룹이 가장 후한 기부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전에 비해 기부금이 다소 늘긴 했지만 매출 증가율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저마다 사회공헌 활동을 크게 확대해 가고 있다는 대기업들의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13일 <파이낸셜투데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업보고서와 각 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기부금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은 8개사를 제외한 10대그룹 소속 87개 상장사가 지난해에 지출한 기부금은 총 1조3505억원으로 매출(1247조4554억원) 대비 0.11% 규모였다.

이같은 10대 그룹의 지난해 기부금은 전년(1조3392억원)과 비교해 다소(0.8%·113억원) 증가한 것이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매출은 같은기간(1218조7847억원) 대비 2.4%(28조6707억원) 늘었다. 기부금 증가폭이 매출 증가폭의 1/3에 머문 것이다. 그만큼 벌어들인 돈에 비해 기부에는 인색했던 셈이다.

기부금을 따로 공개하지 않은 LG그룹 소속의 LG상사, LG이노텍을 비롯해 호텔신라(삼성그룹), 아이리버(SK그룹), 현대종합상사(현대중공업그룹), 롯데손해보험(롯데그룹), ㈜한화(한화그룹), ㈜GS(GS그룹) 등은 조사에서 제외했다.

◇LG그룹, 기부 ‘아까워’

그 중에서도 기부를 가장 아까워했던 그룹은 LG그룹이었다. LG그룹 소속 상장사 10곳이 지난해 지출한 기부금은 총 646억원으로 매출 137조6433억원 대비 0.05% 수준이었다.

특히 LG그룹은 1년 새 매출을 1조원 넘게 늘리고도 기부금의 1/5을 삭감한 것으로 집계돼 더욱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LG그룹의 지난해 기부금 규모는 전년(800억원) 대비 19.3%(154억원) 급감한 것이다. 반면 매출은 137조6433억원으로 같은기간(136조3779억원) 대비 0.9%(1조2654억원) 늘었다. 이에 따라 매출 대비 기부금 비율도 0.06%에서 0.01%포인트 떨어졌다.

LG그룹 다음으로 기부에 인색했던 곳은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소속 상장사 11곳의 지난해 기부금 1309억원은 전체 매출 236조8378억원 대비 0.06%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매출은 전년(225조1484억원) 대비 5.2%(11조6894억원) 늘었지만, 기부금은 같은기간(1387억원)에 비해 5.6%(78억원) 줄었다.

세 번째로 기부금 규모가 작았던 GS그룹의 경우 소속 상장사 7곳은 지난해 매출 18조9357억원 가운데 0.07%인 141억원만을 기부했다. 매출이 1년 전(18조3598억원)에 비해 3.1%(5759억원) 증가하면서 기부금도 133억원에서 6.0%(8억원) 늘었다.

그나마 기부금에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 소속 상장사 17곳은 지난해 벌어들인 매출 345조4149억원 중 0.17%인 5978억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전년(6091억원)과 비교하면 1.9%(113억원) 감소한 것이다. 같은기간 이들의 매출은 338조3910억원에서 2.1%(7조239억원) 증가했다.

삼성그룹 다음으로 벌어들인 돈에 비해 기부금 규모가 컸던 곳은 롯데그룹으로 소속 상장사 7곳은 총 매출 52조9768억원 가운데 0.14%인 725억원을 기부금으로 지출했다. 롯데그룹의 경우 매출은 전년(54조819억원) 대비 2.0%(1조1051억원) 감소했지만 기부금은 같은기간(408억원) 대비 77.7%(317억원) 급증했다.

매출 대비 기부금 비율 3위는 한진그룹이었다. 한진그룹 소속 상장사 5곳은 지난해 23조160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중 0.13%인 306억원을 기부했다. 한진그룹 역시 매출은 1년 전(23조6612억원)에 비해 2.1%(5007억원) 줄었지만 기부금은 같은기간(258억원) 대비 18.6%(48억원) 늘었다.

이밖에 10대 그룹의 매출 대비 기부금 규모는 ▲포스코그룹 0.08%(기부금 743억원·매출 89조8145억원) ▲한화그룹 0.08%(247억원·29조7591억원) ▲SK그룹 0.11%(2798억원·256조3629억원) ▲현대중공업그룹 0.11%(611억원·56조5499억원) 등이었다.

10대 그룹, 매출 대비 기부금 비율 ‘0.11%’
‘자린고비’ LG그룹, 1000원 중 0.5원 환원

◇세월호 참사까지 이용해야 했나

이처럼 인색했던 10대 그룹의 지난해 기부금에 더욱 비난이 쏠리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저마다 수백, 수십억원 대의 성금을 기탁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국민들의 시선이 쏠리자 겉으로는 기업 수장들까지 전면에 등장해 대규모 기부로 생색내기에만 힘썼지만, 결국 연간 기부 규모는 예전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가장 인색한 기부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난 LG그룹도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 세월호 침몰 사고 추모와 피해 지원 성금이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70억원을 기탁했다. LG그룹은 당시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온 국민이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 세월호 사고를 전환점으로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가안전 인프라 강화와 유가족, 실종자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성금을 마련했다”는 입장을 알린 바 있다.

삼성그룹 역시 150억원을 기탁했다. 박근희 삼성사회봉사단 부회장은 성금을 전달하면서 “세월호 사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100억원을 성금으로 내놓으며 “현대차그룹이 국가 안전인프라 구축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이번 성금을 준비했다.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힘쓰겠다”고 전한 바 있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당시 SK그룹의 성금 80억원을 전달하며 “SK그룹 전 구성원들은 세월호 피해 유가족과 희생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한다”며 “유가족들과 국민이 슬픔을 극복하고 국가적인 안전 인프라를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까지 홍보 활용…불편한 민낯
회사별 순위 공개…4천억원부터 2만원까지

◇기부금 TOP10 어디?

이와 함께 계열사 별 기부금 액수 상위 10개사 순위에는 각 그룹의 간판 회사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SK그룹이 3개사로 가장 많았고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각각 2개의 계열 상장사가 순위에 들었다. 포스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롯데그룹 계열사도 한 군데씩 1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LG그룹과 GS그룹, 한화그룹, 한진그룹 계열사는 한 군데도 TOP10에 들지 못했다.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 중 지난해 기부금으로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역시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098억원으로 압도적인 기부금 1위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삼성생명은 765억원의 기부금으로 3위를 차지해, 삼성그룹의 제조업, 금융을 이끄는 선두 계열사들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에 이에 2위에 오른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는 ㈜SK로 지난해 1301억원을 기부했다. 이밖에 SK텔레콤이 678억원, SK이노베이션이 295억원의 기부금 지출로 각각 6위와 8위에 자리해, SK그룹은 10대 그룹 중 가장 많은 계열사를 기부금 TOP10에 진입시켰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대표 기업인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는 각각 711억원, 262억원의 기부금으로 4위와 9위를 차지했다. 포스코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맏형인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은 각각 695억원, 566억원을 기부하며 5위와 7위에 자리했다. 롯데그룹의 캐시카우인 롯데쇼핑은 252억원의 기부금으로 10위에 올랐다.

반면 롯데그룹의 현대정보기술은 기부금을 공개한 10대 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지난해 기부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SK그룹 소속 SK커뮤니케이션즈의 지난해 기부금은 고작 2만원에 불과했다. 또 같은그룹의 SKC솔믹스와 GS그룹의 코스모신소재는 각각 241만원, 160만원을 기부했다고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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