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에서 희망을 보다

[파이낸셜투데이=김용진 기자] 한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메르스 여파로 인해 국내 경제가 침체됐고, 국민들은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메르스 공포로 인해 메르스 환자가 있는 병원 근처에 가는 것조차 꺼려한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들은 메르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방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26일 정오 기준, 국내 메르스 환자는 181명으로, 이 중 의료진과 의료지원인력, 간병인 등 병원 관련 종사자가 35명(19.3%)을 차지했다. 메르스 환자의 5명 중 1명은 의료진인 셈이다. 대부분의 의료진 감염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감염됐다.

관련장비와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한 열악한 진료 환경에도 불구하고, 메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내 의료진들은 사활을 걸었다. 지난 18일 강북삼성병원 의사 4명과 간호사 50명은 스스로 자원해 삼성서울병원을 지원했다. 한 의료진은 “장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가족들에게 많은 걱정을 끼쳐 몸과 마음이 힘들지만, 메르스 확산을 막는 최일선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메르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확실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쟁터가 된 병원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폐쇄 조치된 해당 병원들은 외래진료를 중단한 채 메르스와의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간호사들은 메르스 환자들이 격리된 병실에 들어서기 전 만발의 준비를 한다. 두꺼운 방호복과 덧신 등 각종 장비를 착용한다. 간호사들은 5kg에 달하는 방호복을 입고 메르스 환자를 상대로 투약과 주사 놓기, 식사 챙기기 등 여러 가지 진료 업무를 진행한다.

메르스 감염의 공포도 상당하지만 체력적인 고통 또한 상당하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지만, 메르스 확산 위험 때문에 병원 에어컨의 전원은 항상 꺼져있다.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한 간호사는 “방독면을 쓴 채 우의를 입고 100미터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진료를 하다보면 몇 분 되지 않아 호흡도 힘들고 고글에 땀이 차서 정신이 몽롱해질 때도 있다”며 진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심지어 국립중앙의료원의 한 간호사는 탈수증세로 쓰러지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스와의 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의료진뿐만 아니라 뒤에서 지원하는 행정부서 및 관리감독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이 직원들도 의료물품을 보급하고 환자와 의료진이 사용하는 각종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수시로 보호복을 착용하고 격리병동을 드나들고 있다.

두꺼운 방호복과 덧신, 수 차례의 소독과정을 거치는 의료진이지만, 이들도 메르스의 위험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진은 메르스 환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메르스에 대한 무지

최초의 의료진 감염은 메르스에 대한 무지로 인한 것이었다. 지난달 메르스 최초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이 의사는 “최초 환자가 바레인에 다녀온 것은 알았지만, 메르스라는 질병은 잘 몰랐다”고 말했다. 환자는 물론 자신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의료행위 도중 실수와 부주의로 인한 감염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건양대병원 간호사가 있다. 지난 3일 건양대 병원의 신모 간호사는 위독한 메르스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던 도중 메르스에 감염됐다. 메르스 36번 환자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면서 저산소증이 왔고 상태가 심각해지자 응급 상황을 알리는 ‘코드 블루’가 울리자 신 간호사는 음압격리병실로 달려가 방호복을 입고 전공의와 함께 환자의 기도에 호스를 넣어 산소를 주입하는 기관지 삽관술을 시행했다. 의료진은 한 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반복하는 사투를 벌였지만 환자는 결국 죽음을 맞았다.

36번 환자가 사망한지 8일 뒤인 지난 11일 병원에 출근한 신 간호사는 오전부터 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열이 심해지자 곧바로 응급실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은 뒤, 스스로 음압격리병실로 들어갔다. 검사결과 신 간호사는 148번 환자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 간호사는 지난 3일 다른 의료진과 함께 1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반복하는 과정에 환자의 기도에서 피가 튀었고 탈진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땀을 닦다 환자의 체액이 몸에 닿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개인보호장구를 철저하게 착용했으나, 순간의 방심으로 감염된 것이다.

신 간호사는 평소 자신을 헌신하면서 환자들을 극진히 간병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신 간호사의 동료 A씨에 따르면 신 간호사는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난 3일에도 밤 11시까지 중환자실과 격리병실에서 늦게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고 갔다고 한다. A씨는 “그날 심폐소생술도 자신이 할 필요가 없었지만,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고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평소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B씨는 “굉장히 리더십이 강하고 평소 후배 간호사들을 아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어 “항상 후배 간호사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해 따뜻한 말로 답변해주던 친절한 선배”라고 말했다.

◇차가운 시선과 차별

수많은 의료진들이 최전방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감염에 대한 공포가 아닌 차가운 시선과 차별이다.

한 격리병동 간호사는 “평소 메르스에 접촉만 해도 죄인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주위 시선 때문에 병원으로 출근하는 것도 숨기면서 출근했던 적도 있다”고 밝혀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메르스 환자가 있는 병원은 메르스의 온상지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 의료진은 “메르스 병원에는 주변 음식점의 배달은 물론 택배조차 오지 않는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환자 돌보던 간호사 확진, 응원메시지 봇물
헌신한 대가는 ‘낙인’ ‘왕따’에 두 번 울다
의료진 감염 속출, 5명 중 1명 꼴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겠다”

의료진의 가족들도 차가운 시선과 차별을 받으며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한 의료진의 자녀는 엄마가 메르스 치료병원의 의료진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이 의료진은 스마트폰 학부모 단체 대화방에서 ‘아이 관리를 잘해라, 우리 아이는 면역력이 약하니 당신 아이와 어울리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유치원과 학교에서 메르스 병원 의료진의 자녀에 대해 등교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 3일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의료진의 자녀들을 귀가시켰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도 메르스 의료진 자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논란을 일으켰다.

수원병원의 한 간호사씨는 자녀가 다니던 유치원으로부터 등교 거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간호사는 메르스 확진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고 처방전 발급 등 행정 업무만 담당하는 데다 본인과 자녀에게 아무 증상도 없다고 호소했지만, 유치원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치원 측은 “학부모들의 우려가 크고 만에 하나 다른 원생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메르스와 관련해 학생의 학습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경우 엄중 조치할 것”이라며 “이 유치원에 대해 시정명령 공문을 발송하고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유치원 측은 지난 21일 학부모운영위원회를 열어 “해당 간호사 자녀의 등원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도움의 손길 이어져…

다행인 점은 사회 여러 곳에서 의료진들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와 응원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메르스 환자와 간호사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

경기도는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수원역 경기도청 민원센터 앞 희망부스를 마련하고 도민 응원메시지를 받았다. 이곳에는 자필 응원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엽서와 영상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카메라가 마련됐다. 수원역을 오가는 시민 880여명이 엽서로, 87명이 영상으로 응원에 참여했다.

대구보건대 간호학과 학생들은 일손부족을 겪고 있는 보건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간호학과 봉사동아리 벌룬터스 회원 및 재학생 30여명은 지난 22일부터 메르스 상황 종료까지 보건소에서 직원들을 돕기로 했다. 이들은 보건소를 방문하는 시민들의 발열체크와 혈압검사, 전화상담 등 기본적인 일부터 보건소 요청 업무까지 돕고 있다. 이들 외에도 소리 없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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