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듯, 비슷한 듯, 창조적 ‘혈세낭비’

[파이낸셜투데이=이혜현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 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사업이 뚜렷한 성과 없이 예산만 축낸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올해 투입한 창조경제 예산은 180조원에 달한다. 이 중 미래창조과학부 등 23개 부처의 예산 9000억원이 중복, 과다 편성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핵심 경제공약인 창조경제를 실천하기 위해 매년 수백조에 이르는 예산을 쏟아 부으며 관련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의문이다.

◆ ‘억’ 소리 나게 새

각 정부 부처들이 중점 정책을 명분삼아 불요불급한 사업을 끼워 넣거나 유사, 중복사업을 내세워 예산을 늘리는 것은 매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창조경제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창조경제 예산 가운데 실효성이 의문인 사업에 예산이 중복되거나 과다 편성된 경우는 30건에 달했다.

특히 미래부가 주무부처로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것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효과가 미미하고 부처별 사업이 겹치기 때문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정부와 대기업이 협력해 중소·벤처 기업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고용을 창출하는 등 전국 각지에 창업 인큐베이터를 만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당초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각 지역의 창업허브로 키워 향후 3년간 우수 아이디어 3000건, 창업기업 200개, 보육기업 400개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총 17개로 예정된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12곳이 문을 열었다.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삼성과 업무협약을 맺고 지난해 9월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경북(삼성), 대전(SK), 광주(현대차), 충북(LG), 부산(롯데), 충남(한화), 경기(KT), 경남(두산), 전북(효성), 강원(네이버), 전남(GS), 제주(다음카카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다.

남은 4곳은 서울(CJ), 인천(한진), 세종(SK), 울산(현대중공업) 등이다. 미래부는 상반기 내에 나머지 4곳의 센터를 모두 오픈한다는 계획이지만 7월 이후에나 개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약 1억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경기도 양주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두고 오픈한지 11개월이 지났음에도 지역 중소기업과 상인들이 이렇다 할 도움은커녕 고용창출에 성과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이곳에 투입된 예산은 총 5억5000만원이지만 최근 6개월 간 운영한 프로그램은 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3D프린팅 교육 2회, 창업교육 3회가 고작이었다.

경기지역 소상공인들은 “정부와 도가 좋은 의도로 경기북부 혁신센터를 만들었지만 아무런 활성화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업 중복 논란으로 돈 먹는 하마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다음카카오와 함께 총 사업비 28억3000만원을 들여 지난 26일 오픈했다.

문제는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제주 중소기업지원센터, 제주테크노파크와 기능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강경식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은 “정부가 이 사업을 하지 않으면 국가사업 차질과 지역경제에 악영향 준다고 주장하지만 제주에는 이미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지원센터와 테크노파크가 있다”며 “주먹구구식 사업으로 오히려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경우 오픈 일정이 기약 없어 미뤄지고 있다.

서울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개소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중앙 정부와 서울시가 묘한 알력관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또 정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서울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을 맡게 된 CJ그룹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출범시킨 문화창조융합센터와 기능이 서로 겹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두 센터의 성격이 서로 겹치고 투자기관까지 CJ그룹으로 동일해 사업 중복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

CJ그룹은 지난 2월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열었다.

이 사업은 CJ그룹이 글로벌 문화 콘텐츠를 기획, 유통함으로써 건전한 선순환 문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서울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대지 1898㎡, 지상 2층 규모의 DMC홍보관을 리모델링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하고 CJ그룹의 지원으로 문화콘텐츠 분야 벤처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정부와 CJ그룹 관계자들은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문화창조융합센터는 별개”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관련업계는 “명칭만 다를뿐 실제 사업 내용은 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보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창조경제 정책에 대한 투자와 함께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사업의 비율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능, 다른 이름 9000억 중복·편성
모호한 박근혜표 예산, 보여주기식 사업

◆사업 우려먹기

창조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의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과 중소기업청의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도 서로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 공약으로 제시했던 대학의 창업기지화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중기청의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은 우수한 창업인프라를 갖춘 대학을 지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이 사업에 651억6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와 별도로 대학 내 창업보육센터 건립 및 운영 지원 예산으로 118억4000만원을 배정했다.

교육부의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에는 2466억62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는데 이중 13억5000만원은 대학창업교육체계 구축 용도다.

세부 내용을 보면 중기청의 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초 두 사업의 내용과 목적이 서로 다르지만 일부 겹치는 사업으로 인해 예산 중복지급 문제가 있어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시정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의 창의적 인재육성 사업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이 사업에 지난해 23억원보다 30% 증가한 29억9000만원을 올해 예산으로 편성했다.

이 중 23억원은 창의성 교육 확산을 위한 센터 설치와 창의인성교육넷 홈페이지 활성화에 쓰인다.

예산감시네트워크는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단순히 센터 하나만을 설립,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고 해서 창의적 인재가 양성될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환경부가 신규로 추진하는 친환경 창조경제센터 건립사업의 경우 사업목적이 불분명하고 기존 사업과 중복됐다는 지적이 있다.

기존에 이미 환경부가 각 사업별로 아이디어를 발굴해 이를 상품화 했는데도 별도의 센터 건립은 전형적인 사업 우려먹기라는 것이다.

또 이 사업이 중소기업청의 사업과 상당부분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환경부는 친환경 아이디어 제품 제작과 창업 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신규 예산 5억원을 받았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친환경 아이디어 발굴 및 상품화·서비스화 등을 위해 센터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친환경 창조경제센터 사업이 친환경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어서 중기청 등이 추진하는 창조경제센터와는 차별화 된다는 것이다.

고용창출?…창조경제혁신센터 논란
정부 협력사업…모니터링 강화해야

◆예산 먼저 내놔

정부가 사업 개발 방식 등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글로벌 창조지식경제단지 조성사업에 지난해 480억원의 예산에 이어 올해도 55억원을 새로 편성했다.

세부항목은 설계비 22억5000만원과 단지 리모델링 비용 27억5000만원, 사업타당성조사 2억원, 단지 개발사업 기본계획 수립 1억5000만원, 구역별 세부 개발방향 수립 1억원, 발전방안 연구용역비 5000만원 등이다.

글로벌 창조지식경제단지 조성사업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홍릉연구단지 중 세종시로 이전한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 부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업대상 부지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방향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KDI와 KIET 건물을 신축할지 리모델링할지 조차 정해지지 않는 등 국무조정실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예산부터 편성한 셈이다.

현재까지 총사업비 500억원 중 20억원이 미달이지만 앞으로 사업비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아직 총사업비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사업에 55억원을 편성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고 지적했다.

창조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사업에 창조 또는 창조경제라는 이름만 붙여 예산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몽주 선생과 관련된 경북 영천의 지역사업에 예산 2억원을 편성하면서 창조적 인재 양성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법원도 민사재판지원 사업을 창조경제 지원을 위한 IP허브코트 구축이라는 명목으로 3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역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창조교육이라는 이름의 사업 예산으로 2억6600만원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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