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꾼 사모펀드 먹잇감 될까

[파이낸셜투데이=배효주 기자] 수년 전부터 설로만 돌았던 홈플러스의 매각이 현실화 되는 분위기다. 홈플러스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영국 테스코가 인수합병(M&A) 시장에 홈플러스를 매물로 내놓으며 본격적인 인수의 막이 올랐다. 인수 후보로는 국내 기업인 오리온·현대·농협 등과 중국 유통업체 뱅가드, 외국계 사모펀드 KKR·AEP 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 특히 내수경기 침체로 개별 유통업체보다 자금력을 갖춘 사모펀드로의 매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자 홈플러스 노조는 성명서를 내며 극렬히 반발하고 있다. 국내 2위 유통업체인 홈플러스의 행보에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홈플러스 매각설은 2007년부터 꾸준히 불거져 나왔으나 테스코와 홈플러스 모두 이를 전면 부인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테스코가 63억7600만파운드(약 10조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순손실을 기록하고,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폭로되는 등 경영실적이 사상 최악으로 악화됨에 따라 매각설은 구체화됐다. 테스코는 현재 신용 등급 하락과 은행의 차입금 상환 압박으로 10조~15조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홈플러스를 더욱 서둘러 매각하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테스코는 홈플러스의 몸값으로 최소 7조원 이상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홈플러스 매각은 올해 최대 규모의 M&A가 될 전망이다.

◆인수전 본격화

29일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테스코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홈플러스 매각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또 영국 법률회사 프레시필즈와 법무법인 태평양 등을 법률 자문사로 기용했다.

업계는 홈플러스가 오는 7월 예비입찰과 8월 본입찰 등을 거침에 따라 올해 안에 새 주인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홈플러스의 인수 후보자로는 오리온과 현대백화점, 농협과 중국 유통업체 뱅가드, 외국계 사모펀드인 KKR과 AEP 등이 올랐다.

하지만 국내 재계에서는 내수 경기 침체로 유통업체가 극심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개인정보 불법 매매, 경품 사기 등 구설수에 올랐던 홈플러스를 7조원의 거금을 들여 인수할 만한 투자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오리온은 일본의 노무라금융투자를 인수자문사로 선정, HSBC에 비밀유지확약서를 제출하고 IM을 교부 받았다. 오리온 측은 지난 15일 공시를 통해 홈플러스 인수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 이지만 현재 재무적 투자자와의 공동 인수 방식이나 최종 입찰 참여 여부 등은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오리온이 홈플러스를 실질적으로 인수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왔다.

박찬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리온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900억원 수준으로 홈플러스 인수 시 재무적 투자자와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매각대금 대비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가 매우 작고 오리온이 비제과 사업부문을 매각하면서 제과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점에 근거하면 오리온의 홈플러스 인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백화점 중 유일하게 대형마트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인수 후보자로 오른 현대백화점 역시 ‘제안이 오면 검토해 보겠다’는 미온적 반응을 보인데 그쳤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은 유통 채널이 이미 충분하며 보수적인 투자를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수 후보자로 거론된 농협은 홈플러스 인수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이미 하나로마트 등 전국 유통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거금을 들여 인수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테스코 본사로부터 중국 테스코를 인수한 중국의 유통업체 뱅가드도 홈플러스 인수에 참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업체는 뚜렷한 매입 의사 표현을 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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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업계에서는 KKR, AEP 등 자금력을 갖춘 사모펀드의 매입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인수 한 뒤 통상 3년에서 5년 사이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 한 후 재매각을 통해 시세차익을 얻는 사모펀드의 특성 상 혹독한 구조조정과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 노조는 사모펀드로의 매각은 절대 안 된다며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결사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모펀드가 홈플러스를 매입할 시 한탕을 노리는 ‘먹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 “투기자본 반대”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의 사모펀드 매각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모펀드는 투기자본으로, 이들에 매각될 경우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놓일 수 있으며 기업의 존립과 지속성장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반대의 이유다.

노조 측은 “홈플러스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KKR, AEP 등은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기업의 유지와 지속성장보다 투자자의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분할매각,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재매각을 할 수 있다”며 “투기자본으로의 매각이 시도된다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체 직원들과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며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정당, 소비자와 연대해 전면적인 사회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

이어 “매각 절차 확인을 위해 홈플러스와 테스코에 이번달 중에만 두 차례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경영진은 ‘어떤 통보도 받은 바 없다’는 등 공식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며 “언론보도와 현장제보, 업계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영국 테스코와 홈플러스 경영진은 비밀매각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홈플러스는 1999년 창립 이후 임직원들의 헌신과 희생, 한국 소비자의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라며 “임직원 2만5000여명, 협력업체 2000여개와 수만명 직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고 수백만 한국소비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업체인 만큼 매각과정 또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자회견 중인 홈플러스 노조.

또한 노조 측은 매각에 있어서 홈플러스 경영진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이들은 “매각과정에 노동조합과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며 “테스코는 노동조합, 협력업체와 한국소비자에게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날 홈플러스 노조는 전 직원에게 “경영진의 비밀 매각 추진으로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모든 힘을 모으자”는 내용의 호소문을 매장에 배포할 것이라고 전했다.

KKR·AEP 등 사모펀드 유력 인수후보 물망
노조 “투기자본 매각 모든 힘 다해 막겠다”

홈플러스는 노조의 기자회견에 대해 “테스코는 지난 1월 ‘당분간 해외자산 매각계획이 없다’는 내용을 밝혔고, 이후 별다른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다”며 “모두가 하나 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조가 큰 힘이 돼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침체 및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모든 유통업체들의 매출이 급락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당사는 매각설까지 불거져 더 험한 길을 걷고 있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단결된 모습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사모펀드에 먹히나

홈플러스의 인수 대상자로 거론되는 KKR과 AEP는 지난 2014년 오비맥주 재매각으로 4조원의 시세 차익을 얻어 챙겨나간 곳이다. 해당 사례는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계 사모펀드의 전형적인 행태로 꼽히고 있다.

KKR과 AEP는 2009년 각각 지분 50%를 보유한 실레너스홀딩의 완전 자회사인 몰트홀딩을 국내에 세우고, 이를 통해 AB인베브로부터 18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 오비맥주의 지분 100%를 사들였다. 그 후 2014년 58억달러(약 6조1680억원)를 받고 AB인베브에 지분을 다시 매각했다. 5년 만에 약 3조868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몰트홀딩은 오비맥주로부터 2011년 1090억원, 2012년 1100억원, 2013년 4885억원 등 세 차례에 걸쳐 총 7075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 배당금은 경영 과정에서 생긴 몰트홀딩의 금융 부채를 갚는데 모두 쓰였다.

몰트홀딩은 충북 청원에 소재지를 둔 국내 법인이다. 이에 국내 기업이 국내의 자회사로부터 배당을 받을 때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현 상법과 세법 규정 상 배당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국세청은 몰트홀딩이 위치한 청원 공장에 사무실과 종업원이 없는 점을 들어 해당 회사가 조세 탈루를 위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라며 7075억원의 배당금에 대한 1500억원의 배당소득세와 지분매각 차익에 대한 8000억대의 세금을 통지했다. 몰트홀딩은 일단 세금을 납부했지만 국세청의 결정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기업의 경우 세금을 선납한 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이의가 받아들여질 경우 세금 환수와 함께 가산금까지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사모펀드의 본질을 안다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상황”이라며 “국세청의 합당한 과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 역시 “국내 기업의 미래 자산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외국 사모펀드의 전형적인 먹튀에 당한 것”이라며 “사모펀드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투자 대상 기업의 본질적 성장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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