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고 더 높게 현대판 아방궁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짓는데도 ‘억’ 관리에도 ‘억’소리가 나는 호화청사는 혈세낭비의 상징이다. 해마다 지자체의 예산낭비 1, 2위를 다투는 항목이다. 중앙정부가 단체장들을 임명하던 때에는 없었던 방만경영이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실시한 지방자치제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남시와 용인시다. 호화청사 건립으로 재정이 파탄났다.

성남시청사

◆ 꽃보다 신청사

성남시 청사는 2010년 10월 준공됐다. 토지비만 1753억원, 건축비 1636억원 등 3378억원이 투입됐다. 총면적 7만5611㎡에 통유리로 지어졌다. 청사 개관식 행사에만 2억7000만원가량을 쏟아 부었다. 당시 성남시 관계자는 “분산된 행정서비스 공간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대민행정 서비스에 나서기 위함”이라고 청사 건립 의도를 밝힌바 있다. 그러나 과도한 규모의 투자 때문에 ‘성남 궁전’의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됐고 이대엽 당시 시장은 그해 선거에서 낙선했다.

용인시청사

이 전 시장은 업무용지 특별 분양 청탁, 개발사업 인허가, 공무원 인사 등에서의 이권 개입혐의로 징역 7년에 벌금 1억5000만원을 선고 받고 수감됐다가 건강 악화로 지난해 11월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이듬해 2월6일 이 전 시장은 골칫덩이 성남청사를 남긴 채 폐부종 등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재명 시장 취임 직후 성남시는 모라토리엄(지불 유예 선언)을 선언했다.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해 판교 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5200여억원을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 시장은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 청사를 업무, 상업 시설로 용도 변경을 추진하고 땅값이 싼 외곽에 청사를 짓고 남는 비용을 주민 숙원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각 방침은 철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린벨트였던 청사 부지 용도가 공용으로 변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업용을 변경하는 데 최고 2년이 걸린다는 점과 상업 건물이 됐을 때의 특혜 시비, 별다른 수요자가 없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용인시도 새 청사를 지을 때 유난히 잡음이 컸다. 2005년 준공된 용인청사는 지하 2층, 지상 15층, 총면적 8만7942㎡으로 1974억원이 투입됐다. 용인청사 역시 견물 외벽 대부분을 유리로 마감했다. 800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300석 규모의 소공연장, 보건소, 구의회가 포함되어 있다. 당시만 해도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정부중앙청사 본관보다 큰 청사였다.

경기도 광교신청사 논란 현재진행형
무리한 공사 진행에 지방 재정 파탄

용인시는 여기서 그치기 않고 2011년 수지구 풍덕천동 1만4762㎡ 부지에 776억원을 들여 지하 3층, 지상 7층, 연면적 3만9048㎡ 구모의 수지구청사를 신축해 비판을 받았다. 어지간한 시청사보다 큰 구청사다.

7년이 지난 지금 용인시청사의 규모는 1만7803㎡가량 줄어들었다. 304㎡이던 시장실도 173㎡ 줄어들었다. 대신 도시사업소와 폐쇄회로 종합관제센터, 자원봉사센터, 용인시민장학회, 일자리 상담센터 등이 들어섰고 도서실과 갤러리, 전시관, 시민예식장, 시민무료법률상담실, 시민전산교육장 등 주민 편의시설도 마련됐다. 시민예식장의 이용객수는 매달 1500여명. 연간 2만여명이 찾는 시의 명소가 됐다.

성남시청사 역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시청사 광장은 여름에는 캠핑장과 워터파크,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했다. 공짜 자전거 대여소가 들어섰고 한달에 한번씩 주차장에서 직거래장터가 열린다. 체력단련실은 물론 북카페, 노숙자 쉼터, 갤러리가 마련됐고 시민들을 위한 무료 야외결혼식도 열린다. 이 시장은 9층 시장실을 내주고 2층으로 옮겼다. 기존 시장실은 ‘북카페 아이사랑 놀이터’로 변신했다.

성남시의 청사 개방은 전국 지자체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러시아 관광객도 성남시청사를 구경하기 위해 다녀갔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은 이 시장은 지난해 11월21일 ‘제3회 대한민국 실천 대상’ 시상식에서 지역발전 부분 수상 영예를 안았다.

성남시와 용인시 등 대표적 호화청사 논란을 겪은 지자체가 늦었지만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와중에도 대한민국 지자체의 호화청사 건립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경기도는 빚까지 대면서 신청사를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대전시는 동구청사 때문에 재정파탄 위기에 처해있다.

금천구청사

◆ 일부 지자체 시민개방

경기도 신청사 건립은 광교 신도시 부지 ‘노른자위 땅’에 예정되어 있다. 경기도청사의 광교 이전은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가 재임 시절인 2001년 이의동(현 광교)에 신청사 이전 계획을 세우며 첫 추진됐다. 이후 후임인 손학규 전 지사가 난개발이 우려된다며 광교 일대에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김문수 전 지사가 재정악화를 이유로 기본 및 실시설계 중단을 지시하면서 시청사 건립 사업이 중단됐다. 이에 광교로 이사 온 입주민들이 김 지사를 직무유기 및 사기혐의로 수원지검에 고소하고 도청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지만 김 전 지사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지만 지난해 6월 도지사에 당선된 남경필 신임 지사는 주민과의 약속 이행을 이유로 신청사 이전 사업을 재개했다.

경기도는 총사업비 4273억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25층 신청사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현재 확보된 예상이 설계비 130억원 뿐이라는 점이다. 경기도는 빚을 내 청사를 짓는다는 방침이다. 토지비 1427억원은 도시공사 이익배당금으로, 건축비 216억원은 지방채로 마련할 계획이다.

아파트보다 비싼 지방이전 공공기관
성남·용인, 이미지 개선 모범적 사례

하지만 경기도의회는 불경기 속에 재원 조달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신청사 건립 특별회계 설치 조례 통과를 보류한 상태다. 경기도는 광교신도시 분양 때 입주예정자를 대상으로 신청사 건립을 약속한 상황이라 이대로 사업이 중단된다면 소송을 당하게 되고 7000억~8000억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대전 동구청은 호화청사로 인한 재정난을 겪는 대표적인 자치단체다. 전임 청장이 신청사를 짓는 바람이 재정난이 초래됐고 지금도 여전히 돈이 없다. 대전 동구청사는 700억을 들여 지어딘 호화판 건물이다. 준공 이후 심해진 재정 압박으로 직원 인건비는 물론 각종 문화·체육행사가 축소 내지 폐지됐다. 63억의 돈을 들여 지은 국제화센터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구정홍보 책자는 민선5기 때부터 제작을 멈췄고 축제는 모두 취소됐다. 구청인력은 감소하기 시작했고 자진 전출도 크게 들었다. 지역행사를 위해 보조받은 예산을 스스로 반납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대전 동구청사는 총사업비 664억원 중 부지매입비와 실시설계비, 설계보상비 등 364억원(지방채 166억원 포함)을 확보해 집행했으나 건축비와 감리비 등 나머지 3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공정율 48%에서 사업이 중단된 적도 있다. 동구청은 옛 청사와 구립도서관 등을 매각해 200억원을 마련했고 지방채 발행으로 나머지 100억원을 채워 공사를 재개, 완공했지만 빚은 빚을 낳았다.

전남도청사

이밖에 2005년 문을 연 전남도도 7만9305㎡ 규모의 1667억원짜리 신청사를 건립해 논란이 됐으며 2007년에는 강원 원주시와 경북 포항시, 서울 관악구가 800억~900억원대 신청사를 지어 비난을 받았다. 2008년 10월에 1178억원을 들여 개청한 서울시 금천구 신청사는 “재정자립도는 꼴찌면서 구청은 호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포항시청사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들도 호화청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토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업무시설 면적이 정부 기준(56.53㎡)을 초과한 공공기관은 한국동서발전(65.04㎡), 공무원연금공단(59.1㎡), 산업기술평가관리원(58.57㎡), 경찰대학(57.2㎡), 서부발전 ·중부발전(각 56.8㎡) 등이다.

1인당 업무시설 면적보다 직원복지 면적이 더 넓은 공공기관은 조달청품질관리단(업무 16.5㎡, 복지 38.60㎡),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업무 21.62㎡, 복지 34.91㎡),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업무 13.95㎡, 복지 30.67㎡), 경찰수사연수원(업무 18.34㎡, 복지 19.92㎡) 등이다.

일부 공공기관 청사는 주변 지역 아파트 시세보다 비쌌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은 3.3㎡당 건축비가 812만원으로 나주 아파트 시세 406만원 보다 두 배 높았고 충북 진천의 한국교육개발원과 대구 동구의 한국사학진흥재단, 제주 서귀포의 공무원연금공단도 주변 아파트 평당 건축비보다 높았다.

◆ 천문학적 건립비용

세월호 참사 여파로 해경 조직이 해체되면서 신청사 착공이 유보됐던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는 호화청사 논란 속에도 건립에 착수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신청사는 제주시 아라동 국유지 3만687㎡에 총사업비 189억원이 투입, 지하 1층, 지상 4층, 연먼적 8472㎡ 규모로 지어진다. 부지 면적만 보면 제주도청 1·2청사를 합친 것보다 넓고 신청사 건립 예산은 지난해 정부 본예산에서 해경의 해양안전부야에 배정된 예산을 넘어선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