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1200억원 삼킨 세금 블랙홀

[파이낸셜투데이=배효주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경전철 사업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국내 운행 중인 경전철 중 용인·의정부·부산-김해경전철이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내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잘못된 탑승객 수요 예측과 과다한 사업비 지출 때문에 세금을 축내며 지자체에 재정 부담을 안기고 있다. 승객이 늘어도 적자를 메꿀 수 없는 경전철이 ‘세금 먹는 하마’가 된 데는 민간 자본을 낀 채 의욕만 앞선 지자체와 승객 수요 예측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 한국교통연구원에 책임이 있다.

◆혈세 깔고 달린다

경전철은 일반 지하철인 중전철에 비해 객차 수가 적고 정거장 길이가 짧아 공사비용이 일반 지하철에 비해 절반에서 많게는 80% 까지 적게 든다. 지자체는 주민들의 선심을 얻기 위해 부족한 지방 재정에도 불구, 민간 자본을 끌어 들여서라도 경전철 운영을 단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해 기업들에게 예상만큼 수익이 나지 않을 때는 세금으로 민간 회사 적자를 메워주겠다는 ‘최소운영수익보장액(MRG)’을 적용한다.

경전철이 ‘세금 폭탄’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자체는 민간 사업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승객 예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교통연구원은 사업 유치를 위해 승객 수를 과도하게 부풀려 측정한다. 그 결과 지자체는 수천억원의 MRG를 민간 사업자에게 지급하게 된다. 경전철을 짓는 데는 물론이고 운영 시 생기는 적자까지 사실상 국민이 모두 메우게 되는 셈이다.

‘에버라인’이라 불리는 용인경전철은 2013년 4월 첫 운행을 실시해 지난달 26일 개통 2주년을 맞았다. 용인경전철은 경기 용인시의 구도심을 경유해 에버랜드까지 이어져 있다. 출·퇴근시 3분, 그 외 6~10분 간격으로 평일 388회, 주말·공휴일 328회 15개역(18.1㎞)을 30여분 간 운행한다. 총 1조127억원의 사업비 중 3773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용인경전철 사업은 개통 전부터 경제성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용인경전철 건설 당시 교통개발연구원(현 한국교통연구원) 측은 하루에 16만명의 승객이 용인경전철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용인경전철이 개통한 2013년 첫 해 하루 평균 이용객은 9000여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수도권 통합환승할인 요금제를 시행한 이후 겨우 하루 평균 승객 2만명을 넘겼고, 지난달 10일 역대 최대 이용객수인 3만842명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교통연구원이 예측했던 초기 예상 승객의 18.7%에 불과하다.

용인경전철 주변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승객이 부족한 데 한 몫 했다. 기흥역에서 전대·에버랜드역까지 역사에는 개통 후 1년이 넘도록 편의점 등 부대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일부 역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역사 주변도 편의시설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용인경전철 운영에는 연간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수지타산이 맞으려면 최소 하루 평균 12만2000명 이상이 경전철을 이용해야 한다. 이대로는 민간 사업자인 ‘㈜용인경전철’에 지급할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용인시는 ㈜용인경전철에 원리금과 인건비, 운영비등을 합친 ‘표준 운영비’로 연간 295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경전철로 얻는 수입이 50억원에 그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 용인경전철 승강장.

이에 용인시는 2013년 7월 사업 재구조화를 통해 기존 MRG 방식을 ‘비용보전방식’으로 전환했다. 비용보전방식이란 실제 운영수입이 표준 운영비에 미달될 경우 그 차액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 결과 표준 운영비 295억원 중 운임 수입 5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45억원을 용인시 재정으로 부담했다. 용인시는 30년간 운영을 기준으로 기존 MRG 방식 보다 약 1조원의 재정 부담을 덜게 됐다고 설명했다.

◆빚 폭탄 안은 지자체

 하지만 MRG 계약을 비용보전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용인시는 9000억원대의 막대한 금액을 ㈜용인경전철에 물어줘야 했다. 또 재구조화 과정에서 끌어들인 민간자본 2800억원을 30년에 걸쳐 상환해야 하는데다 연간 5%의 금융이자도 지급해야 된다. 잘못된 수요예측과 과욕이 부른 참사인 것이다.

뿔난 용인시 주민들은 ‘용인경전철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을 꾸려 용인시를 상대로 사업비 1조127억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주민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단이 배상청구를 요구하는 상대는 이정문·서정석·김학규 등 전직 용인시장 3명과 수요 예측을 맡았던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원 3명, 전직 용인시의원 2명, 전·현직 용인시 공무원 7명 등이다. 재판부는 오는 12일 첫 공판기일을 정할 예정이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경전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의정부경전철은 발곡과 탑석 간 11㎞ 구간에 15개의 역을 갖췄다. 총 사업비로는 5477억원이 들었으며 이 중 정부 728억원, 의정부시 1755억원 등 총 2503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의정부경전철 역시 불필요하게 낙관적인 수요예측이 화를 불렀다. 하루 10만8000여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 이용하는 승객은 2만7000여명으로 25%에 그친다.

적자 수천억원…달릴 수도 멈출 수도 없어
용인·의정부경전철 민자 업체 세금 퍼주기
승객 과대포장·수요예측 실패로 혈세 줄줄
부산·김해시 20년간 민간 사업자에 2조원

이처럼 만성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의정부경전철이 ‘시한폭탄’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의정부경전철은 GS건설이 최대주주인 ㈜의정부경전철이 건설·운영하고 있다. 의정부경전철은 의정부시에서 경전철을 소유하되 운영권은 30년 간 ㈜의정부경전철이 갖는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용인경전철과 마찬가지로 수익이 부족할 경우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주는 MRG 방식이 적용됐다.

다만 승객이 예측 수요의 50%를 넘을 때만 적자를 지원하기로 약정했기 때문에 실제 탑승객이 예상 승객의 1/4 수준에 불과한 현 상황에서 의정부시가 적자를 메워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개통한 뒤로부터 62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본 ㈜의정부경전철이 파산하게 될 경우가 문제다. 의정부시가 ㈜의정부경전철로부터 운영권을 되사오기 위해 2500억원의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정부경전철은 2013년 파산을 앞세워 의정부시를 압박해왔다. ㈜의정부경전철 측은 매달 20여억원 이상, 매년 3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상돼 사업의 정상적인 이행이 어렵다며 으름장을 놨다.

㈜의정부경전철 측은 올해 누적손실액이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잘못하다간 의정부시가 거액의 세금을 들여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의정부경전철을 떠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자체 재정난 주범

부산 사상역과 김해 가야대역을 잇는 부산-김해경전철은 총 사업비로 1조3124억원을 들였다. 그 중 정부 1979억원과 부산시 1494억원, 김해시 1451억원 등 총 4924억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 부산-김해경전철.

부산-김해경전철은 2011년 9월 개통 이후 초기 하루 평균 승객 수가 3만84명에서 지난 3월 4만7291명으로 57% 증가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부산-김해경전철 역시 MRG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 4년간 승객이 늘었지만 부산시와 김해시가 민자 업체인 ㈜부산-김해경전철에 내야하는 MRG 부담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김해경전철은 민자 업체와 MRG 협약 당시 해마다 이용 승객이 늘 것을 조건으로 계약했다. 하루 평균 승객수로 ▲2011년 17만6358명 ▲2012년 18만7266명 ▲2013년 19만8848명 ▲2014년 21만1147명 등 2020년까지 해마다 1만명 이상을 추가하도록 돼 있다. 승객이 아무리 증가해도 부산시와 김해시가 부담해야 하는 MRG가 줄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당초 이용 승객의 비율은 개통 초기나 승객이 늘은 지금이나 17~20% 선에서 머물고 있다. 20년간 물어야 하는 2조2000억원의 MRG는 그대로인 셈이다.

이에 부산시와 김해시는 경전철 건설 시 민자 업체가 금융권에서 차입한 8000억원을 저금리로 전환하는 자본 재구조화 등에 희망을 걸었으나 전문기관에서 효과가 없다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수요예측은 ‘적자보전 폭탄’으로 부산시와 김해시에 돌아오고 있다. 2011년 9월 경전철 개통 이후 3개월여 동안 두 지자체가 떠안은 적자보전액은 총 144억원이다. 2012년 액수가 521억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2013년 568억원, 지난해 610억원으로 점차 상승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산시와 김해시는 중앙 정부에 여러 차례 재정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6일 정부가 지자체의 경전철 MRG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정부가 지자체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MRG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정부부담으로 전이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지자체는 부담을 최소화 시킬 수 있도록 MRG 방식에서 비용보전 방식으로 바꾸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비용보전 방식으로 전환 시 민간자본에 대한 이자비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관건이며 신용보증 등을 통한 최저 금리 적용이 가능하도록 산업기반신용보증기금을 최고 한도까지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관계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김해 경전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의 재구조화 추진 사례 및 노하우 등을 지자체와 공유해 재정 절감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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