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아름답지만 속은 ‘텅텅’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이번 주인공은 유명무실한 KTX역사다

KTX호남선이 개통한 것은 착공 6년만인 지난 1일. 서울에서 광주까지 1시간 47분 시대가 열렸다. 호남까지 반나절 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 4000억원을 들여 KTX역을 지었지만 일평균 이용객이 30명이 채 되지 않아 더 이상 KTX가 정차하지 않는 역이 있는가 하면 최악의 접근성으로 악명을 떨치는 역도 있다. 경제적 타당성과 접근성을 무시한 채 역을 짓다 세금만 낭비한 셈이다.

한국철도공사가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4년 KTX역별 일평균 이용자수’에 따르면 하루 이용객이 100명대인 역은 ▲검암(133명) ▲경산(135명) ▲김제(135명) ▲진영 (159명) ▲논산(162명) ▲남원(170명) 등 총 43개 역중 6개역이다. KTX 구례구역과 함안역, 곡성역의 하루 이용객수는 각각 16명, 18명, 19명으로 20명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일부터 KTX열차는 함안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 KTX함안역.

무조건 크게 짓자

연면적 2493㎡의 함안역은 KTX를 비롯해 ITX-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정차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현재 역사의 위치는 경전선 마산-진주 간 복선전철화 계획에 의해 구역사가 있던 가야읍에서 함안면으로 이전한 상태다. 준공은 민간기업이 하고 국가에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민간은 관리운영권을 쥐고 정부로부터 20년간 임대료를 받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총사업비는 3383억원이 투입됐다. 준공자금만 민간 기업이 부담할 뿐 임대료는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

진짜 의문은 역사의 규모다. 대개 경전선 시골 역사는 4~8량 편성 무궁화호가 정차 가능한 규모로 건설된다. 시골역에 불과한 함안역을 기관차 2량과 동력차 2량, 객차 16량 등 총 20량으로 편성된 KTX규격에 맞춰 플랫폼 길이를 420m로 설계한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함안역은 준공 당시만 해도 KTX 정차역이 아니었다. 10량 규모의 플랫폼 건설비용 곱절이 드는 KTX규격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는 애기다. 2012년에 국토부와 코레일이 KTX 정차를 승인했지만 함안역의 KTX 일평균 이용객은 2013년에는 39명, 2014년에는 16명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고속철도인 KTX가 함안역에 정차하면서 속도는 무궁화호급의 완행열차로 전락했다. 경전선 KTX가 진영역을 비롯해 창원중앙역과 창원역, 마산역, 함안역에 정차하면서 가다서다를 반복한 탓이다.

특히 인구 34만 진주시민들의 시간 손실이 컸다. 진주역의 지난해 철도 이용객은 46만7643명으로 이 중 KTX 이용객은 15만5465명이다. 함안역과 비교해 전체 여객은 6배, KTX 이용객은 10배나 더 많은 셈이다. 하지만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은 “경전선 KTX의 경우 최고시속 150㎞로 운행될 예정이고, 역간거리를 살펴볼 때 크게 속도가 저하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함안역 정차를 강행했다. 가뜩이나 경전선 KTX의 경우 고속전용선을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도를 최대 150㎞밖에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차역을 최대한 줄여 열차의 전체 표정속도(열차의 구간거리를 정차시분을 포함한 소요시간으로 나눈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고속열차 운영의 정공법이다. 결국 지난 2일부로 함안역에는 KTX열차가 정차하지 않기로 결정되면서 중심지인 가야읍과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역의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사실 이전하기 전 함안역은 낡긴 했어도 알짜 역사였다. 역사 주위로 함안군청과 군의회, 함안경찰서 등 관공서와 농협·경남은행 등 금융기관이 포진해 있고, 지역 최대 시장인 가야시장이 철도연변에 형성돼 있어 접근성은 훨씬 더 좋았다. 함안군 가야읍의 2층짜리 구 함안역 역사는 차량등록사업소로 바뀌었다.

함안역 관계자는 “원래 함안역은 지금의 위치보다 읍내에 가까운 쪽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며 “원래 역사를 짓기로 예정한 곳에서 성산산성과 아라가야 고분 등 문화재가 나오면서 꼬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토해양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은 원래 예정 노선을 피해 읍내와 더 먼 곳에 역사 신설을 강행했다”며 “결국 함안역이 읍내와 멀어져 버렸고 더 외면 받게 됐다”라고 전했다.

야심차게 출범한 함안역 2년만에 무정차 결정
광명역·공주역 승객 외면 이유 ‘최악의 접근성’

▲ KTX광명역.

이해관계만 맞으면…

인구가 많은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KTX 광명역은 공사에만 4068억원이 투입됐다. 부지 면적 8만평에 건축면적 1만5000평에 달하며 건물길이는 가로 300m 세로 150m에 이르는 대형 역사이다. KTX 출범 당시 출발역으로 계획됐기 때문에 대규모로 건설된 것이다. 하지만 접근성이 문제였다. 코레일은 비싼 돈을 주고 역을 만들어 놓고도 출발역은 서울역과 용산역으로 지정하는 우를 범했다.

광명역은 당초 ‘남서울역’으로서 서울 및 수도권 남부지역의 수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역이었다. 현재 광명역은 광명시 외에 안양시와 성남시, 안산시, 시흥시, 인천광역시 일부지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다. 문제는 똑같은 범위 내에 위치해도 이 역을 이용하기가 난해한 지역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수원시와 서울시 관악구, 서울시 서초구 같은 지역들이다. 광명역사에서 성남시청 청사와 수원시청 청사간의 직선거리는 약 21㎞로 비슷하다. 하지만 리무진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 성남시와는 달리 수원시는 광명역까지의 직행 노선이 없다. 철도(전철)를 이용하자니 버스로 환승해야 되는 불편함이 있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안양1번가와 같은 상습 교통정체구간에 시간이 지체된다. 실제로 광명역이 개통된 이후 수원시 시민들의 광명역 이용 빈도는 높지 않은 편이였고 결국 수원시민들의 지속적인 KTX 정차 요구 끝에 2010년 수원역을 경유하는 노선을 신설했다.

▲ 중요 도심과 공주역과의 거리.

접근성이 문제가 되는 곳은 비단 광명역뿐만 아니다.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공주역은 모든 주 도심과의 직선거리가 10㎞이상 떨어져 있다. 더 안타까운 건 공주역의 경우 직선거리와 이동거리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이다. 대전과 공주시 사이에는 계룡산이 있어 이동시 논산을 경유해야 된다. 계룡시 역시 터널을 뚫지 않는 한 논산을 크게 우회해야 한다. 이 경우 대전까지 가려면 45㎞를 이동해야 한다. 결국 공주역에서 20㎞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는 논산과 부여 공주뿐이다. 이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 KTX공주역은 이용에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공주역 이용객의 불편이 최소화 되도록 연계교통망 구축 등의 대책을 추진중에 있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4000억원 들였지만 하루 30명 이용
세금 퍼부어 짓고 세금으로 운영하고

해결책은?

철도는 육상 교통수단중 가장 적은 토지 파괴를 수반하고 대량수송도 가능하다. 에너지효율성과 친환경성, 교통혼잡비용 절감, 안전성 등을 장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도는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다. 바로 접근성이 타 교통수단에 비해 많이 덜어진다는 점이다. 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역으로 가야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가 어렵다. 따라서 철도 정책을 입안하는 담당자들은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도가 도시의 중심지나 교통의 요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을 통과하도록 설계한다. 새로 신설되는 역이 철도이용자들의 손쉬운 접근성을 보장해야한다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한국에서 진행된 고속철도 사업이나 신설 사업, 기존선 개량 사업들을 보면 철저한 이해관계에 철도의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러 정치인들의 치적 세우기와 여러 지역의 이해관계에 얽혀 계획수립부터 설립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양양국제공항은 주변 지방자치단체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각 지자체의 중심부에서 거리가 같은 곳 즉 경계지역에 건설했지만 높은 고도와 떨어지는 접근성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처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산업화가 가속되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힘들다. 이에 공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단순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경제성과 입지성을 종합해 최적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은 “KTX역은 건설에 있어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관계로 선정에 있어 경제성과 입지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하루에 20여명 나아가 100여명도 활용이 버거운 KTX역이 상당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전 타당성 검토가 부실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KTX역 신설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례를 철저히 검토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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