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도 잃고 지휘봉도 놓고 ‘회장님은 몰락 중’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초등학교 중퇴, 야간학교에서의 중‧고교 과정, 단돈 200만원을 밑천으로 시작해 자산 2조원의 그룹을 일군 회장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인생 스토리다. 재계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인 성 전 회장이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재계 전방위에 사정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검찰 앞에서다.

 

‘시커먼 땟국이 흐르는 남루한 행색을 하고 남의 집 마루 밑에서 잠을 자며 칼바람과 송곳 추위를 견뎌야 했던 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07년 3월 펴낸 자서전 <새벽빛>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장하며 했던 말이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의 아버지는 술집 여자를 집에 데려와 안방을 차지하고, 어머니와 자식을 사랑채로 몰아냈다. 아버지와 그의 첩은 어머니를 하녀처럼 부렸고 손찌검과 폭언도 일삼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

성 전 회장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했다. 이 무렵 그의 아버지는 성 전 회장의 어머니를 내치고 새 아내를 들였다. 졸지에 ‘콩쥐’ 신세가 된 성 전 회장은 외삼촌이 사탕 값으로 준 100원을 들고 돈 벌러 떠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상경했다.

가정부 일을 하는 어머니를 만난 그는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약국에서 배달 심부름을 하며 한푼 두푼 돈을 모았다. 배움의 끈도 놓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교회 부설 야간학교에서 중‧고교 과정을 공부하고 교회에 딸린 방에서 잠을 잤다.

1974년, 성 전 회장은 100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가 조그마한 화물영업소를 열어 트럭중개업을 시작했다. 성 전 회장이 건설판에 뛰어든 것은 1977년, 출생지이자 근거지였던 서산에서 이름을 날리던 서산토건에 입사하면서 부터다.

당시 서산토건 오너 최순기씨는 평소 성 전 회장의 성실함과 사업감각을 높이 샀다. 개인사정으로 더 이상 회사운영이 힘들어지자 성 전 회장에게 서산토건의 인수를 권유할 정도였다. 성 전 회장은 화물영업소와 직장 생활로 모은 돈 500만원으로 서산토건을 매입했다.

그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서산토건의 사명을 대아건설로 바꾸고 플랜트 산업설비 분야에서 토목주택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1993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1996년에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중‧도매법인 ‘중앙청과’와 온양관광호텔을 인수했다. 인수든 설립이든 그의 사전에 ‘적자’는 없었다.

200만원 밑천으로 자산 2조원 그룹 총수
4수 끝에 단 ‘금배지’ 2년 만에 물거품 

이런 그에게도 외환위기 파고는 높았다. 1000여명에 이르는 직원들 중 80명 이상이 잘려나갔고 1999년 8월에 처음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가 2002년 12월에 졸업했다. 하지만 2003년 대아건설이 경남기업 지분 51%를 확보하면서 최대주주에 오르고 이듬해 9월 경남기업이 대아건설을 흡수합병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경남기업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견건설사였다. 1951년 정성원 회장이 종합건설업을 목적으로 대구에서 설립한 경남토건이 1954년 서울로 본사를 이전하며 경남기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5년 태국 중앙방송국 수주로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3년 2월에는 국내 건설사 최초로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1977년에는 중동, 1978년 스리랑카, 1979년 카메룬에 진출했고 1978년 주택건설사업, 1980년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했다. 1982년 6월에는 건설수출 10억불탑을 받기도 했다.

경남기업은 1987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분 26.81%를 인수하면서 대우 계열사로 편입됐던 전적도 있다. 그러나 2000년 계열사에서 분리해 독자경영을 시작했고 2003년 성 전 회장 품에 안착했다.

재벌이 된 성 전 회장은 ‘금배지’를 노리기 시작했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충남 서산‧태안 지역에서 자민련의 공천을 받으려다 실패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총재 특보단장으로서 비례대표에 도전했으나 탈락했다. 18대 총선에서는 유력한 당선후보로 지목됐지만 한나라당이 그를 외면하면서 출마를 포기했다.

여의도 ‘똑똑’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0년 8월부터 충청권 인사를 모임인 충청포럼 회장을 맡으면서 지역기반을 닦았고 그가 만든 서산장학재단은 충청도 연고 2만1500명의 학생에게 22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성 전 회장은 ‘4수’ 끝에 축배를 들었다.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나와 새누리당 유상곤 후보를 제치며 당선됐다. 당선 공약은 정부투자기관,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 서민주택 3000가구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성 전 회장은 국회의원 겸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경남기업 회장직에서 내려왔다. 문제는 경남기업이었다. 2003년까지 4000억원대였던 매출은 2004년 6000억원, 2007년 1조원을 돌파, 2008년 1조8000억원까지 치솟았지만 2009년 1조7000억원을 시작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0년 1조6000억원, 2011년 1조4000억원, 2012년 1조1000억원, 2013년 1조원 등이다. 2012년에는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230억원의 적자까지 냈다.

경남기업은 결국 세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경남기업은 앞서 2009년 5월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절차에 들어간 이후 기업 체질 개선과 자구 이행 목표 달성을 통해 2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한 바 있다.

경남기업은 2013년 10월 기업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정상화를 위해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에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를 요청했고 2014년 2월 채권금융기관협의회와 경영정상화 계획 이행약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의 채권행사 유예기간이 2016년 말까지 연장됐으며 903억원의 전환사채 발생, 1000억원의 출자전환, 3432억원의 자금지원 등을 결의해 자구이행계획을 이행 중에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수완에너지 주식과 채권을 매각할 예정이며 워크아웃 조기 졸업을 위해 감정가가 1조원에 달하는 ‘랜드마크 72빌딩’ 매각을 추진 중이다.

성 전 회장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회장직에서는 내려왔지만 경남기업과 계열사인 대아레저산업, 대원건설산업 등의 고문직을 맡고 있었으나 지원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성 전 회장 본인도 ‘금배지’를 날릴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2011년 11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구 주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가을음악회 공연을 무료 관람토록 했다. 한 달 뒤에는 충남자율방범연합회에 청소년 선도 지원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2년 10월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결과였다. 선거법상 실형이나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국회의원직이 상실된다. 성 전 회장은 즉각 항소했지만 2013년 5월 2심에서 청소년 선도 지원금 혐의만 인정돼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되는데 그쳤다. 성 전 회장은 대법원까지 갔다. 그리고 지난해 6월26일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아 임기 절반가량을 남겨두고 국회의원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내우외환’ 골머리

성 전 회장은 즉시 경남기업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해 6월30일 작성된 경남기업 반기보고서 임원 현황에 ‘회장(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회사가 어려웠지만 성 전 회장의 복귀는 눈총을 샀다. “너무 빠른 게 아니냐”는 것. 경남기업도 이를 의식한 듯 ‘회장님’ 복귀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복귀로부터 3개월가량이 지난 2014년 10월 ‘성완종 회장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경제협력방안 논의를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스리슬쩍 복귀 소식을 알렸을 뿐이다.

구원투수 영입에도 경남기업의 추락은 멈출 줄 몰랐다. 경남기업의 지난해 12월 말 기준 총자본은 -493억원, 부채는 2조3280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상장폐지 상황으로 거래정지 상태다. 보증서 발급 중지, 발주처 직불지시, 하도업체의 작업 중단 및 납품 거부 등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남기업은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경남기업이 국내 100여곳의 공사 현장에서 비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경남기업이 베트남 최고층 빌딩인 ‘랜드마크72’를 건립하면서 가족 소유의 기업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경남기업은 1조2000억원이 투입된 ‘랜드마크72’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사 외주부터 자재 공급, 건물 관리까지 성 전 회장과 부인이 실소유주인 회사에 맡겼다. 검찰은 이들 회사가 재하도급 과정에 자재 납품가를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원외교 비리의혹’ 법정관리 위기
채권단 지원 당부하며 경영권 포기

경남기업 노조도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 회장과 사족들이 경남 계열에서 분리한 자신들 소유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가 크다”고 주장했다.

경남기업이 정부로부터 성공불융자금을 받아간 뒤 관련 사업을 종료했는데도 4년여간 채무 감면을 신청하지 않은 것도 수사 대상이다. 성공불융자는 위험이 큰 해외 자원개발 등에 참여하는 민간기업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로 사업이 실패했을 때 기업 측 책임이 없다면 채무를 면제해 준다.

경남기업이 러시아 캄차카 반도 광구 2곳에서 벌인 석유광구 개발탐사 사업은 2010~2011년 실패로 종료됐다. 하지만 경남기업은 이 사업에 투입된 정부 융자금 채무를 면책해 달라는 신청을 여태껏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해외 자원개발 투자금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융자금 중 상당액이 비자금으로 빼돌려진 정황을 잡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검찰은 자본잠식 상태인 경남기업이 재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융자금을 유용했을 가능성, 편의를 위해 채무감면 신청 절차를 당분간 보류했을 가능성 등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성완종 정조준

성 전 회장은 채권단에 지원을 당부하면서 경영권을 내려놓았다. 경남기업은 지난 17일 성완종 회장이 경영권 및 지분 포기 각서를 채권금융기관협의회 및 신한은행에 제출했다고 19일 밝혔다. 성 전 회장은 “나의 젊음과 피땀을 다해 이룩한 회사지만 회사와 직원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겠다”며 “현 회사 경영 상황에 무한책임을 지는 만큼 아무쪼록 채권단은 회사가 회생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경남기업도 “회사가 상장폐지나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면 경남기업 전직원은 물론 1800여개 협력업체 임직원들의 생계도 위협받게 된다”며 채권단 지원을 간곡히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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