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사람 없어…空연장 전락

[파이낸셜투데이=이혜현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선심성 예산낭비를 일삼는 행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방 중소도시에 구체적인 운영계획과 수익성에 대한 정밀한 검토 없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수백억원 규모의 문화예술시설을 잇따라 건립하는 것은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해마다 예산 편성 때 지자체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단체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돈은 아낌없이 들이 붓고 있어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문화생활을 제공하자 세금 수백억원을 들여 건립한 문예회관은 활용도가 낮아 골치 덩어리다. 해당 지자체는 소외지역 발전과 문화의 저변확대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의 활용도가 높지 않아 중복투자와 혈세낭비, 단체장 치적 쌓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나라 살림이 어수선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치의 세수부족에 시름했다. 경기불황으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는 정부의 한결같은 해명이지만 정작 국민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흥청망청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연중기획으로 담는다. 1편에서는 경제적 타당성이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선심 차원에서 졸속으로 집행되는 예산을 잡아냈다.<편집자 주>

 일단 짓고 보자

지난 10년간 전국에 새로 문을 연 문화예술회관은 총123곳에 달하지만, 이 중 35곳은 일 년 공연 일수가 50일을 넘지 않고 3곳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광주의 광주문화원은 혈세낭비라는 논란에도 전 구청장의 선거 공약에 따라 세금 105억원을 들여 2012년 신축에 착수했지만 지난 2년간 공연 일수는 총 7일, 전시 횟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강원 인제군은 367억원을 들여 지난해 8월 공연장과 스포츠센터 등을 갖춘 인제하늘내린센터를 개관했다. 최고급 시설에 걸맞게 고용된 직원도 20명이 넘지만 하루 평균 이용객은 30명 남짓하다. 686석의 대공연장은 연극이나 뮤지컬, 오페라 공연까지 가능해 국내 어느 문화시설과 견줘도 손색이 없지만 한 달에 한번 꼴로 예술 공연과 영화 상영만 할 뿐 대부분 비어있다.

총 사업비 220억원을 들여 연면적 5943㎡, 관람석 900석 규모의 문화예술회관을 세운 전남 장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문예회관은 차로 20분 거리에 광주에서 제일 큰 문예회관이 있지만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건축을 밀어붙인 끝에 2011년 개관했다. 하지만 개관한지 3년째가 되지만 대규모 공연장은 행사장으로 전락했다.

장성군 관계자는 “사실 가까운 곳에도 문예회관이 있지만 군의 자존심 싸움 식으로 변질됐다”며 “대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적은 없었고 주로 강의나 영화 상영 정도로만 사용해 왔다”고 전했다.

인근에 문예공연장이 있음에도 치적 과시용으로 마구잡이식이로 짓다보니 지역 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전북 익산시도 580석 규모의 문예회관이 있음에도 인근에 12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또 지었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420억원이 넘어 열악한 재정상황을 무시하고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상민 전북 익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어떤 내용을 채울지, 시민의 참여가 가능한가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재정여건과 필요성을 고려치 않고 건물 짓는데 급급했다”고 말했다.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에 위치한 인제하늘내린센터.

 

지역의 아방궁, 돈 먹는 애물단지
10년간 단 한차례 공연 없는 곳도...

 툭 하면 개점휴업

해당 지자체들은 공통적으로 문예회관이 주민들의 문화체험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문예회관 건립을 단순히 수익성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문예회관 운영과정에서 다소 적자를 보더라도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부분 단체장 치적 쌓기로 수요에 맞지 않는 대형시설을 건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업 구상 때부터 철저한 수요조사와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에도 최근 3년간 25개 자치구 문화예술회관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1541억원을 투입했음에도 평균 가동률이 59.4%에 불과해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이 많다”면서 “지방의 경우에는 십중팔구 엄청난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1지자체, 1문예회관’의 원칙을 세워 부분별한 문예공연장 남발을 방지하고 있다.

또 건물 한 채를 짓는데 족히 수백억이 들어가는 지자체의 문화예술회관에 대한 국비 지원은 최대 20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나머지는 시비나 군비 등의 지자체 예산으로 층당 해야 한다.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예산 절감에 최대한 노력하고 중복낭비 여지를 없애야 하지만 지자체들은 운영계획 없이 일단 지어놓고 보자는 식의 건설을 계속하고 있다.

불필요한 문예공연장에 쏟아 붓는 예산 낭비도 문제지만, 지역주민들의 외면으로 짓기만 하고 건립 후에는 무용지물이 돼 운영비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방치되고 있다. 지역 대다수의 문예공연장이 1년 중 10일 안팎의 공연을 하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시설유지비만 계속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후죽순 박물관, 한심한 운영실태
연 평균 ‘10억원’ 시설운영비 낭비

 예산 낭비 박물관 수두룩

지역 단체장 치적 홍보를 위한 예산 낭비 사례는 공립 박물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지자체마다 앞 다퉈 건립한 공립박물관은 전국에 약 300곳에 이르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박물관 1곳당 연간 평균 10억원의 운영비만 낭비되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발표에 따르면 지자체가 설립한 공립박물관은 대형화에도 불구하고 전시자료는 턱없이 부족하며 건립 후에는 전문 인력과 운영예산 확보가 어려워 박물관의 부실운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국고 지원을 받아 공립박물관을 세웠지만, 관련 규정 미비로 예산이 쉽게 낭비되고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99년 30개였던 공립박물관은 2012년 326개로 늘었고, 인구 대비 박물관 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으며 전 세계에서도 8번째로 많다. 하지만 공립박물관 운영 실태는 매우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권익위는 실태조사를 통해 ▲건립에만 치중한 운영부실 공립박물관 빈발 ▲유물 취득 및 관리상의 공정성·투명성 부족 ▲공립박물관 건립 후 관리·감독의 실효성 미흡 등의 문제점을 밝혀냈다.

전남의 한 박물관은 47억원을 들여 건립됐지만 하루 관람객이 10명이 안 됐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직영하는 제주우주항공박물관 역시 관람객 유치에 사실상 실패하면서 운영 적자만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JDC가 항공우주박물관 건립에 쏟은 예산만 115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항공우주박물관 관람객은 26만명으로 개관 전 유치 목표인 72만4000명의 35.9%에 불과했다. 특히 항공우주박물관 지난해 지출액이 97억9200만원으로 추산되는 반면 수입은 예상치인 48억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즉 수십억원에 달하는 운영손실을 JDC가 고스란히 떠안는 꼴이다. 때문에 JDC가 항공우주박물관 사업에 대한 수익성 분석 등 충분한 타당성 검토도 없이 대규모 예산만 투입해 재정 부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JDC 관계자는 “항공우주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 수학여행단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관람객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며 “운영인력 효율화 등을 통해 고정경비를 절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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