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게임 업계에 굵직한 인수합병(M&A) 소식이 전해집니다.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 연타석 홈런으로 온라인 게임계의 탑독으로 거듭난 넥슨이 모바일 게임 개발 회사 엔텔리전트(前 넥슨모바일) 인수를 전격 발표한 것이죠. ‘삼국지 무한대전’으로 ‘누적 다운로드 200만회’의 성과를 거둔 엔텔리전트는 명실상부한 모바일 게임 업계의 강자 중 하나였습니다.

넥슨은 이를 계기로 ‘메이플스토리’ 등 검증된 자사 타이틀들을 모바일로 이식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당시 업계 선두였던 컴투스는 ▲미니게임천국 ▲액션퍼즐패밀리 ▲슈퍼액션히어로 등 캐주얼 게임 시리즈를 통해 견고한 입지를 수성하고자 했으며, 둘의 옆에서는 게임빌(현 컴투스홀딩스)이 ‘놈’과 ‘제노니아’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선두 그룹을 함께 내달렸죠.

왼쪽부터 컴투스 ‘미니게임천국3’, 넥슨 ‘메이플스토리 해적편’, 게임빌(현 컴투스홀딩스) ‘제노니아’.

다만 넥슨의 참전에도 모바일 게임이 주류로 올라서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습니다. ‘피처폰’으로 대표되는 당시 시장이 모바일 게임을 위한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담아낼 수 있는 용량도 적었을뿐더러, 기껏 게임을 다운로드할 때나 네트워크 대결 등을 즐길 때 발생하던 막대한 이용료는 많은 대한민국의 부모님들로 하여금 ‘등짝 스매시’를 시전토록 했죠. 작고 소중한 화면 크기와 몇 안되는 버튼으로 구현된 조작감도 모바일 게임의 한계였습니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펴낸 <2006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살펴보면, 2005년 모바일 게임 규모는 전체 게임 시장의 약 2.5% 수준에 그쳤습니다. 물론 잠재력은 높이 평가받았으나, ‘국가나 이동통신사와 같은 외부 환경의 영향이 크며 확실한 수익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다’라는 점에서 성장세가 더딜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왔습니다. 공존하던 온라인 게임 시장이 제2·제3의 부흥기를 연달아 열어젖히며 모바일 게임은 항상 차순위로 밀려났죠.

그랬던 모바일 게임 시장이 어떻게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네. 다들 예상하듯이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게임의 황금기가 시작됩니다.

그래프=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 캡처
그래프=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 캡처

시원시원한 화면 속 한층 자유로운 게임 환경을 조성한 스마트폰은 기존 피처폰이 갖고 있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합니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점차 고도화되며 PC·비디오 기기에서만 플레이 가능했던 하이엔드 퀄리티의 게임이 모바일 게임으로 구현되기도 했지요. 다양한 저가형 데이터 요금제 출시와 전국적인 와이파이존 설치로 느린 전송속도 및 네트워크 이용료 등의 문제들도 함께 해소됐습니다.

그리고 2017년, 마침내 국내 모바일 게임은 PC 게임 매출을 앞지르게 됩니다. <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7년도 국내 PC 게임의 매출액은 4조5409억원(점유율 34.6%)으로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6조2102억원(점유율 47.3%)의 매출을 올린 모바일 게임이 전년 대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선두 자리를 빼앗은 겁니다.

연 3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2022년 넥슨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모바일 매출은 약 1조500억원으로 전체 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넥슨모바일의 2005년 연간 매출인 42억원(감사보고서 공시 기준)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이긴 하나 생각보다 압도적인 비율은 아닌데요, 그나마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피파온라인 등 PC 라이브 서비스 타이틀들이 건재한 넥슨이라 이 정도 비중이 나온다는 업계의 평입니다.

사진=엔씨소프트 IR 자료 캡처
사진=엔씨소프트 IR 자료 캡처

‘3N’이라는 호칭으로 넥슨과 업계 리더로 묶이는 엔씨소프트·넷마블은 일찌감치 모바일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했습니다. 특히나 엔씨소프트는 자사 대표 IP(지식재산권)인 ‘리니지’를 모바일로 이식하며 폭발적인 외형 확대에 성공했습니다.

‘리니지M’이 출시된 2017년, 엔씨소프트는 전년비 79% 증가한 1조7587억원의 연 매출을 기록하며 사상 첫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당해 6월에 출시된 리니지M은 반년 만에 1조원에 가까운 매출액을 쓸어 담았지요. 연간 최대 매출을 또 한 번 경신한 작년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만으로 1조9343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요, 이는 전체 매출의 75%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넷마블은 이들보다 모바일 게임 시장에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조금 더 많이 투자했습니다. 2011년 창업자인 방준혁 의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 회사를 모바일 게임 개발·퍼블리싱사로 완전하게 변모시키면서부터죠. 그리고 방 의장의 과감한 노림수는 완벽하게 적중하게 됩니다.

▲모두의마블 ▲몬스터길들이기 ▲세븐나이츠 등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한 넷마블은 위상이 크게 오르며 오늘날 3N의 한자리를 공고히 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넷마블은 2조6734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중 모바일 게임은 93.10%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구마구’ 등 온라인 게임의 매출이 전체 1.30%에 그치는 동안 말입니다.

사진=넷마블
사진=넷마블

그렇다면 기존의 모바일 게임사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많은 회사들이 엔텔리전트처럼 모바일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대형 게임사들에게 인수합병됐으나, 이중 살아남은 게임사들은 스마트폰의 탄생과 함께 강력한 성장 동력을 갖게 됩니다. 1세대 모바일 게임사, 컴투스가 대표적인 예시죠.

2014년,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라는 메가 히트작을 탄생시킨 컴투스는 당해 폭발적인 외형 성장을 이룹니다. 2013년 당시 약 814억원이었던 컴투스의 연간 매출은 다음 해 3배 수준인 2347여억원 수준으로 껑충 뛰더니, 그 이듬해에는 4335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달성하게 되죠. 양대 산맥을 이루던 게임빌은 2013년 컴투스를 인수한 후, 현재 컴투스홀딩스라는 새 이름으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스마트폰이 불러일으킨 게임 업계의 대변혁 속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For Kakao 없이는 모바일 게임이 성공할 수 없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카카오는 끝내 2016년 4월, 카카오게임즈라는 전문 자회사를 출범시킵니다. 탄탄한 자본과 강력한 플랫폼 역량을 갖춘 카카오게임즈는 오늘날 크래프톤-스마일게이트 등과 함께 3N의 아성에 도전하는 신흥 강자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모바일 게임 전성시대’와 함께 게임 업계 전반이 크게 성장한 반면, 빠르게 ‘흥망성쇠’하는 게임들이 많아지면서 유저들의 우려도 매우 커졌습니다. 스마트폰 덕택에 기존 단점들이 상쇄된 모바일 게임들은 ‘휴대성’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하며 바쁜 현대인들을 공략하는데 성공했지만, 과거 이들이 즐기던 게임들의 깊이까지 담지는 못 했던 것이죠.

특히 획일화된 모바일 MMORPG 장르의 게임들이 우후죽순 탄생하기 시작했으며, 천문학적인 과금을 쏟아부어 게임을 지배하는 비즈니스 모델(BM)이 유행하게 됩니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게임들이 인기를 끌면서 기존 모바일 게임의 최대 장점이었던 휴대성은 끝끝내 독이 되고 만 것이죠. 그렇게 오늘날, 국내 게임 업계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이에 판교에 소재한 많은 게임사들은 크게 신장한 매출을 도전적인 타이틀 개발에 활용하는,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유수의 국내 게임사들은 하나같이 콘솔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거나, 이미 AAA급 신규 타이틀을 시장에 선보인 상황입니다. 물론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 나오는 작품들의 퀄리티에 달렸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넥슨 ‘데이브 더 다이브’, 네오위즈 ‘P의 거짓’, 펄어비스 ‘붉은사막’, 크래프톤 ‘칼리스토 프로토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넥슨 ‘데이브 더 다이브’, 네오위즈 ‘P의 거짓’, 펄어비스 ‘붉은사막’, 크래프톤 ‘칼리스토 프로토콜’.

어떤 산업군이 다르겠냐마는, 특히나 게임 업계는 지난 18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로서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지금의 모습은 ‘게임은 질병’이라는 사회적 시선이 팽배했던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대적 변화입니다.

재미없고 뻔한 말이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게임 업계에 또 어떠한 변화가 올지 쉽사리 예단하긴 어렵습니다. 18년 뒤에도 과연 모바일 게임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2018년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또 다른 게임 환경이 우리의 곁에 찾아올까요?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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