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안정성 모두 개선…현대·기아차는 실적 부진에 ‘우울’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반적인 ‘체력보충’에 나섰다. 그룹 대표 기업들이 하나같이 자금은 쌓고 부채는 줄이며 경영 안정성 확보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자동차 형제’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 축소’와 ‘원화 강세’라는 벽에 부딪히며 수익성까지 잡지는 못했다. 반면 지난해 고난의 시기를 지나온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은 본격적으로 이익 창출을 이뤄내며 올 하반기에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현대자동차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유동비율은 206.9%로 전년동기(168.7%) 대비 38.2%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부채비율은 같은기간 148.0%에서 131.6%로 16.4%포인트 떨어졌다.

그만큼 자금은 확보하고 부채를 줄이며 경영안정성은 개선됐다는 의미다.

기아자동차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말 유동비율은 131.9%로 전년동기(116.3%) 대비 15.6% 올랐고 부채비율은 79.9%에서 12.0%포인트 떨어진 91.9%를 기록했다.

반면 수익성 지표는 두 업체 모두 다소 악화됐다. 당장의 수익성 보다 ‘체력 다지기’에 힘을 쏟고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9.07%로 9.60%였던 전년동기에 비해 0.53%포인트 하락했다. 매출도 44조5505억원에서 44조4016억원으로 0.3% 줄었다.

기아차의 영업이익률 역시 같은기간 동안 7.56%에서 6.28%로 1.28%포인트 떨어졌다. 매출도 24조1974억원에서 0.9% 감소한 23조9803억원을 기록했다.

현대·기아차 체력은 나아졌지만…수익성 악화에 ‘시름’
현대모비스, 형님들 부진에도 ‘선방’…영업이익률 ‘유지’

앞길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향후 수익성이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의 지난 8월 기준 미국 시장 점유율은 5개월 만에 8% 밑으로 떨어졌다.

해외시장에서 밀리면서 3분기 실적 전망도 어둡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을 1조9130억원으로 추정했다. 전년동기 대비 4.8%, 전분기 대비 8.4% 감소한 수치다.

이상현 NH농협증권 연구원은 “달러대비 원화강세에 이어 엔저까지 겹치면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에 비해 수출 경쟁력이 하락했다”며 “이에 3분기 영업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부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현대모비스는 ‘미소’

현대차, 기아차와 함께 ‘현대차 3인방’으로 꼽히는 현대모비스는 반대로 ‘미소’를 짓고 있다.

비록 ‘두 형님’은 고생하고 있지만 크라이슬러 등 해외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으로 보유한 부품업체 현대모비스는 이 업체들의 실적 호조 덕에 수익성 ‘선방’에 성공한 까닭이다.

현대모비스의 올해 상반기 기준 유동비율은 228.2%로 전년동기(204.1%) 대비 24.1%포인트 상승했다. 부채비율은 같은기간 73.1%에서 7.6%포인트 하락한 65.5%를 기록했다.

이처럼 경영안정성을 유지하며 실적도 개선흐름을 보였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 8.22%를 나타냈다. 8.13%였던 전년동기 보다 0.09%포인트 오른 수치다. 매출도 1년 사이 16조8180억원에서 17조8461억원으로 6.1% 늘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중국·유럽지역 신차와 고급사양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 증가, 크라이슬러 등의 고객사에 대한 판매호조에 따른 모듈·핵심부품 등의 제조 매출 증가가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합병시너지 나왔다”
현대건설, 해외 수주가 ‘효자’…“영업익 1조 달성할 것”

실제로 현대모비스의 올 2분기 해외법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유럽지역(17.5%)과 미주지역(6.6%), 중국지역(11.4%↑) 등에서 모두 성장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도 현대모비스에 점차 ‘호감어린’ 시선을 주고 있다. 업체가 내고 있는 수익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 돼 있다는 것이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모비스에 대해 “핵심부품 비중이 지속 상승해 평균판매단가를 올리는 데 기여할 전망”이라며 “지금이 다시 매수할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전력 부지 인수와 지배구조로 인한 주가할인율(디스카운트)이 과도하다”며 “현재 주가수익비율은 5.7배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 제철·건설 ‘두 마리 토끼’ 잡겠다

제철과 건설은 지난해 대표적인 ‘경기 불황’ 업종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점점 업황이 개선되며 현대제철과 현대건설 모두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두 업체 모두 경영 안정성 지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 가운데 매출을 크게 늘리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유동비율은 112.2%로 전년동기(103.0%) 대비 9.2%포인트 상승했다. 부채비율은 이 기간 동안 140.8%에서 114.4%로 26.4%포인트 떨어졌다.

현대건설의 올해 상반기 말 유동비율 역시 170.5%로 같은기간(164.2%) 대비 6.3% 올랐고 부채비율은 174.7%에서 15.4%포인트 떨어진 159.3%를 기록했다.

실적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기업은 현대제철이었다. 현대제철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7.40%로 5.20%였던 전년동기에 비해 2.20%포인트 올랐다. 매출 역시 6조4740억원에서 8조5063억원으로 31.4% 급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계절적 성수기와 1후판공장 증설의 영향으로 판매량이 증가하고 냉연부문의 합병시너지가 본격화되면서 이룬 ‘어닝서프라이즈’로 평가한다.

현대제철 관계자 역시 “전반적인 철강시황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냉연부문 합병시너지 창출과 고부가강 생산 및 판매 증대, 적극적인 원가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역시 영업이익률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가운데 매출을 크게 늘리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대건설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5.84%로 전년동기(5.99%) 대비 0.15%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매출은 6조3319억원에서 7조9934억원으로 26.2% 급증했다.

이는 쿠웨이트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과 UAE 사브 해상원유처리시설 공사 등 해외 현장에서 본격적인 매출이 나오고 있고 리스크 관리와 원가절감 노력으로 영업이익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상반기에 베네수엘라 4조원, 이라크 2조원 등 해외에서 수익성 높은 대형수주를 많이 따내 이 수주들이 매출로 연결되는 하반기 실적은 더욱 좋아 질 것”이라며 “국내 건설사상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EO 주목!]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가 급상승하고 있다. 올해 들어 아버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가신’들이 줄줄이 물러나면서 정 부회장으로 세대교체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재계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현대차그룹의 핵심 임원급 인사 4명이 물러났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임원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명한 셈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일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이 용퇴를 선언하면서 올 초 11명에 달했던 그룹의 부회장단은 8명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박 부회장은 197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후 기아차 구매본부 이사와 현대·기아차 구매총괄본부장, 현대다이모스 사장 등을 거쳐 2006년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한 정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2007년 현대제철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당진 일관제철소 건립과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 합병 등 굵직한 사업들을 마무리해 그룹의 숙원사업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월에는 최한영(63) 현대차 상용차담당 부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최 부회장은 현대차 홍보·마케팅실장(상무)과 마케팅총괄본부장(부사장), 전략조정실장(사장) 등을 거쳐 지난 2005년부터 상용차 사업 부문을 총괄해온 정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4월에도 설영흥(69) 현대차 중국 사업총괄 담당 부회장이 용퇴했다. 설 부회장은 화교 2세로 현대차에서 20년간 중국 사업을 담당했다. 중국 내 인적 네트워크로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설 부회장도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인사로 알려졌다.

8월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셋째 사위였던 신성재(44) 현대하이스코 사장이 스스로 물러났다. 신 사장은 최근 정 회장의 셋째 딸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이혼한 바 있는데 사의 표명 역시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 사장을 제외한 최측근 가신들이 물러나며 했던 말들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사업 안정화에 따른 후진양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같은 현상이 “그룹의 세대교체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현대차그룹 승계구도에 유리한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란 것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차세대 경영인이 부친 측근들과 일을 하다보면 원활한 경영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며 “재계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현 세대 가신 그룹 정리는 후대에 힘을 실어주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신들에 대한 인사는 내부 반발을 우려해 서서히 진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정황상 현대차그룹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한 인사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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