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권력 따라 ‘이합집산’ 한나라號 “박근혜에 줄서야 산다”

여권의 역학구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횡보를 거듭하자 미래권력에 기대려는 여권의 지형이 박근혜 전 대표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그동안 ‘정중동’ 행보 속에서 힘을 축적해온 친박계의 결속이 최근 더욱 견고해지는 현상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요즘 유난히 박 전 대표 행사에 ‘얼굴 도장’을 찍는다거나 식사라도 같이 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둡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영남권에선 더욱 심하다. 이미 10·29 보궐선거에서 그런 현상이 굳어졌다. 이른바 TK(대구·경북)에서는 박 전 대표가 명실상부한 구심점이다. 4·9총선을 계기로 부산 지역도 ‘박근혜 바람’이 휩쓴 상태다.

이런 분위기는 친이명박계를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이재오 조기 복귀’설을 기정사실로 굳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보궐선거 거치면서 TK ‘친박 바람’ 영남 전체로
2012년 공천권 행사할 당권 향배 박근혜 가장 유력
보수분열 노골화되자 ‘월박’ 또는 ‘양다리’ 두드러져
친이계 구심 없어 ‘이재오 내년초 복귀’ “서두르자”

여권의 이같은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미래권력에 기대려는 정치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지역주의에 기댔던 한나라당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첫째는 차기 공천을 행사할 유력한 인사로 박 전 대표가 꼽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영남 전역에서 대세를 굳힌 ‘친박 바람’의 영향 탓이다.

당내에서 불고 있는 ‘박근혜 쏠림’ 현상은 10·29 보궐선거를 계기로 더욱 두드러졌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10·29때 동료 의원의 영남 지역구에 가봤더니 ‘MB’는 쏙 들어갔다”면서 지역에서의 ‘박근혜 파워’가 대단함을 전했다.

부산지역도 소위 ‘친박’으로 전향했거나 친박에 한쪽 다리라도 걸쳐놓는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이 지역 의원들은 4·9총선에서 ‘친박’이 일시적 바람이 아닌 다음 총선까지도 휘어잡을 ‘광풍’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달 말 정부의 시정연설 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구상찬 의원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처럼 부산에서는 이명박계의 지원사격으로 당직을 맡은 안경률 사무총장만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다른 의원들은 당내 눈치를 살피며 친박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계파를 초월해 이합집산을 하고 친박 쪽으로 ‘러브콜’을 잇따라 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미래의 공천권 때문이다. 2012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유력한 거물 가운데 하나로 박 전 대표가 꼽히는데,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선에서 당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달려있기 때문.

한 마디로, 향후 한나라당의 좌장이 누가 되느냐를 두고 의원들의 이합집산 향배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누가 당권을 잡을지는 아직 장담할 순 없지만 현재로서는 박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하다. 어차피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에 줄서기’ 암행이 이뤄지는 또 한가지 이유로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들 수 있다. 친이명박계는 이미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계파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신인데다 수도권에서 이명박계 인사들이 대거 금배지를 달아 ‘영남정당’에서 ‘수도권 정당’으로 체질이 바뀐 듯 보인다.

이같은 당 체질변화는 영남권 의원들을 자연스레 결집시키는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한 것도 그동안 가졌던 영남권 의원들의 ‘소외감’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아직 대세가 굳어진 것은 아니다. 친이계의 긴장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어 향배를 속단하긴 어렵다. 최근 ‘이재오 복귀설’이 무게를 더 하는 것도 이같은 정황 때문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빨리 이재오 위원이 복귀해 금융위기에 책임있는 이들을 자르고 친이계를 단단히 묶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표나 공성진 최고위원이 잇따라 “내년 초에 이 선배를 귀국시켜야 한다”고 공론화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사실 당내에서 ‘박근혜맨’들은 주요 입법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고도 남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결속력도 남다르다. 대선 경선 패배와 탈당, 복당 등을 거치면서 고생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정책연구모임 ‘선진사회연구포럼’이 계파적 성격을 갖고 있고 ‘친박무소속연대’가 복당후 모임을 확대한 ‘여의포럼’도 또 하나의 ‘친박 구심점’이다. 여기에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던 김세연 장제원 이한성 의원 등이 참여해 외연 확대 가능성이 높다.

친박인사의 선봉장 역할을 할 인사로는 유승민 이해훈 유승복 의원 등이 꼽히며, 이성헌 의원 그리고 서청원 김무성 홍사덕 의원 등도 ‘박근혜 대권 프로젝트’에 나설 인사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우리가 마치 세 규합을 조직적으로 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이재오 모시기’를 위한 명분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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