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쳤나

[파이낸셜투데이=김진아 기자]우리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비리가 추가확인 되면서 감사체계 부실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정기검사에서 규정을 어기고 이면계약을 맺어 금융부실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수재 및 횡령 등 개인비리 혐의가 발각돼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수사를 벌였다. 적발된 대출비리는 작년 11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 그 외의 대출사고가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우리은행 회현동 본점
신탁사업단 내에서 자체 대출 심사...통제시스템 부재
지난해 이어 부동산 PF 대출비리 줄줄이 적발

신탁사업단 내에서 자체 대출 심사...통제시스템 부재지난해 이어 부동산 PF 대출비리 줄줄이 적발

 

우리은행의 대출비리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6월 금감원의 정기검사를 받으면서 부터다. 부동산 PF와 관련한 금융부실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우리은행 신탁사업단은 지난 2008~2009년 부동산 PF 시행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주는 이면계약을 맺었다.

저축은행 등 브릿지론을 취급하는 금융회사가 발행한 대출채권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매입하겠다는 ‘업무약정서’를 맺은 것이다.

부실한 거액 대출 심사과정

이러한 대출채권 매입은 내규인 ‘여신업무지침’을 따라 여신협의회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신탁사업단의 거래를 승인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은행 대출을 심사하는 여신협의회가 아니었으며 신탁사업단 내의 부동산투자협의회에서 자의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 결과를 보면 우리은행 신탁사업본부는 2002년 6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총 49건, 4조 2,000여억원의 PF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면서 은행 내규인 여신업무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규정 위반으로 직접적 손실 가져와

 

▲ 우리은행 이종휘 행장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동산 PF 시행사의 지급불능 사태가 확산되자 ABCP 투자자들이 매입약정 이행을 우리은행에 요청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매입약정이란 시행사가 발행한 ABCP를 갚지 못할 경우 이를 대신 갚아주거나 대출로 전환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우리은행은 은행계정에서 지급 보증한 금액을 물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4,000억원대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 등 금융투자회사가 투자자가 입을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해 주는 것을 사전에 약속하거나 사후에 보전해 주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망을 회피하기 위한 이면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감원은 지난 13일 우리은행의 PF 대출 잔액이 8조 790억원으로 가장 많고 부실채권 중 PF채권이 차지하는 비율도 30.8%로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의 부실운영과 감사체계의 소홀함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57%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이다 보니 정관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부결 사업, 뇌물 수수로 통과

부실 채권 중에는 부당대출도 여러 건 포함되어 있어 도덕적 해이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우리은행 부동산금융팀장이었던 천모씨와 후임 팀장 정모씨를 배임증재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두 간부는 시행사에 1조 4,000억원대의 부당대출을 해주고 200여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금품을 제공했던 이는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의 시행사 대표 이모씨와 이 회사의 공동대표인 중국동포 민모씨다.

2004년 천 씨와 정 씨는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PF 사업에 1,350억원을 대출해주고 이 씨로부터 사례금 12억원을 받았다.

후임 정씨는 2006년 서울비즈니스센터 PF 사업과 관련해 2,700억원의 자금집행 편의를 봐주고 14억원에 가까운 금품과 골프 회원권을 챙겼다.

이들의 유착관계가 계속되어 눈속임에 성공하자 더 대담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2007년 이 씨가 중국 베이징 소재의 화푸오피스 프로젝트 사업자금 3,800억원을 대출 신청했지만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실무협의회에서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이에 이 씨와 민 씨는 부동산금융팀장에 대출사례금을 건네며 청탁을 했다.

금품을 받은 천 씨는 담당자를 바꿔 2차 실무협의회를 다시 열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위원 서명록을 위조하는 방법으로 가결을 받아내 부당 대출을 성사시켰다.

이들은 총 1조 4,00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감행했으며 우리은행은 6건의 PF 사업에 대한 대출 상환액 9,273억원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금융 계열사인 경남은행에서도 간부 2명이 은행장 명의의 지급보증서를 위조하여 4,000억원에 달하는 금융 사고를 일으켰다.

경남은행 구조화금융 부장 장모씨 등 2명은 은행장인감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건설외사 및 투자회사에 3,200억원 상당의 사용인감계, 대출채권양수도약정서 등을 위조·발급해 손해를 입힌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로 구속기소됐다.

잇따른 뇌물수수와 부당대출에 관해 감사 체계가 부실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부당대출이 있었다고 감사체계가 허술하다는 것은 결과론적 해석이다. 몇몇 사건에 대해 끼워 맞춘 얘기일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부당대출 사고

이번 추가감사에서 또 다른 부당대출 사건이 밝혀졌다. 지난 11일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우리은행 간부에게 금품을 건네고 거액을 대출받아 빼돌린 부동산시행사 대표 선 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선 씨는 2005년 경기 남양주시에 아파트 건설 사업을 하면서 우리은행으로부터 2,500억원 규모의 PF대출을 받았다.

이 가운데 100억원을 횡령해 미국 하와이의 골프장 부지를 사들였으며 한편 남양주의 아파트는 사업 승인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부동산금융팀장 김 씨는 선 씨에게 대출을 해주는 대가로 2억 5,000만원짜리의 골프회원권과 2억 8,000만원 상당의 오피스텔 분양권을 받아 챙겼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채권이 이미 자산관리공사(캠코)로 매각되어 당시 대출관련 자료가 없는 상태라 자세한 정황설명이 불가능하다. 부실 채권의 비율이 높은 것은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서일 뿐 심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또한 “정부기관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감사를 많이 받는다. 오히려 정부의 개입이 심해 자율경영이 훼손된다는 우려도 있을 정도”라며 정관계 연루설에 대해 해명했다.

한편 지난 17일 우리금융지주는 임시 이사회를 통해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이팔성 현 대표이사 회장의 추천을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이팔성 회장의 연임이 우리은행 민영화에 유리하므로 이팔성 회장의 라인에 있는 우리은행 이종휘 행장이 이번 3월말 임기만료 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PF대출비리 사건이 잇따라 떠오르고 있어 일각에서는 이종휘 행장의 연임이 불가능 할 경우 우리은행의 민영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추측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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