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례적으로 시중은행을 연이어 방문해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인한 차주들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등 은행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주문하자,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대출금리 인하 등 금융 취약계층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시중은행을 향한 ‘이자장사·돈 잔치’ 비판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이후 정부·금융당국의 은행권을 향한 사회적 역할 확대 압박이 커지자 시중은행들이 그에 호응하는 모양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달 23일 하나은행, 지난 8일 BNK부산은행, 전날에는 KB국민은행 본점을 방문해 소상공인, 개인 차주들의 금융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또한 은행이 과점적 지위에 안주하며 손쉽게 이익을 확대한 영업행태와 과도한 성과급 지급 관행 등을 비판하고, 은행의 상생금융 확대를 격려했다.

이 원장 방문 이후 각 은행들은 저마다 금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책을 내놨다. 하나은행은 이 원장 방문 당시 서민금융상품 ‘햇살론15’를 이용하는 고객 대출잔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캐시백해주는 ‘이자 캐시백 희망 프로그램’ 시행과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안심 고정금리 특판대출’ 출시를 발표했다.

지난 2일부터는 또다른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의 신규 취급 금리를 1%p 인하했고, 7일에는 외식업을 영위 중인개인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기업대출(최대 1억원) 잔액의 1%(최대 100만원)을 1년간 캐시백하는 ‘이자 캐시백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BNK부산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전세대출·신용대출 상품 등 판매 중인 모든 대출상품의 신규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총 1조6929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책을 발표했다. 이달 중 주담대 금리는 최대 0.80%p, 전세대출 최대 0.85%p, 신용대출은 최대 0.60%p 내릴 예정이다. ‘새희망홀씨대출’ 금리도 최대 1.0%p 인하한다.

이와 함께 다음 달에는 기존 대출 차주에 대해서도 금리 인하를 실시, 저신용(신용평점 하위 10% 이하) 차주가 보유 중인 전세자금대출 및 신용대출 금리를 최대 0.50%p 일괄 인하하는 한편,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이용 중인 취약계층을 위해 ‘BNK 따뜻한 상생 대환대출’ 상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은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전 상품의 금리를 인하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이자 경감책을 내놨다.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각각 0.3%p, 신용대출 금리는 0.5%p 인하된다. 특히, 전세자금대출 및 주담대 금리 인하는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모두에 적용된다.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 금리 인하를 실시한 KB국민은행은 이를 통해 전체 가계대출 상품에 대해 은행권 최저 수준의 금리를 제공한다.

또한 그동안 은행권 진입이 어려웠던 저신용 차주들의 가계대출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은행권 최초로 시행되는 5000억원 규모의 제2금융권 대출 대환 프로그램인 ‘KB국민희망대출’을 출시하기로 했다. 기업고객에 대해서는 대출 연장 시 금리가 7%를 넘을 경우 초과분을 최대 2%p 인하하고, 안심 고정금리 특별대출과 대출이자 원금 상환, 연체이자율 감면을 추진한다.

시중은행들이 차주들의 금융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는 이유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은행권을 향한 사회적 역할 확대 압박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가파르게 오른 기준금리의 영향으로 대출금리가 빠르게 상승해 차주들의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반면, 은행들은 이자이익이 늘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이에 은행들은 기본급의 3~4배에 이르는 성과급과 수억원대의 퇴직금을 지급하자 ‘이자장사로 돈을 벌어 자기들까지만 돈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관련 대책 마련을 금융당국에 지시했고,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TF’를 꾸려 은행권 과점구조 해소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이자장사·돈 잔치’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은행권은 취약계층에 대한 3년간 10조원 규모의 사회공헌 계획을 내놨지만, 이 원장은 지난달 17일 “거칠게 말하면 약탈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은행의 비용 절감,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은행의 운영 방식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이 계속 있어 왔다”면서 “금융소비자들은 금융의 경쟁 기능 실패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는 마당에 본질과 어긋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 금융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이 원장은 조만간 신한은행, DGB대구은행 등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은행들도 차주들의 금융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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