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오바마 당선에 분주해진 여야 정치권

반신반의 오바마 당선에 美민주당 인맥 적은 정부 당혹
북핵문제·한미FTA 등 현안 놓고 한미간 불협화음 우려
정부측, 親韓계 미국인 끈 찾고 전·현직 망라 인사 물색
야권 “준비 못한 게으름·무사안일 비용 치를 것” 경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지난 4일(현지시간) 흑인 최초로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정부와 정치권이 ‘오바마 인맥’에 올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 역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직접적인 친분 관계를 쌓은 인사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야말로 ‘신인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을 당시만 해도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이 많다. 즉 오바마 당선인의 짧은 정치 경력과 ‘파격적인’ 대통령 당선, 외교 경험 부재 등의 조건은 그와 개인적 친분을 쌓을 만한 시간적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경력이 많지 않아 직접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구축한 정부 내 인사는 많지 않다”며 “외교부 내에도 미국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인맥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측은 미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정·재·관계 인사들을 총동원해 민주·공화당 양측 캠프 인사들과 교류해 왔고 특히 캠프에서 활약한 친한(親韓)계 미국인들과 접촉하는 등 ‘인맥 구축’ 노력을 기울였다고 항변 중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오바마 캠프의 동북아팀과 비확산팀 인사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고 학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들과 충분한 접촉을 통해 여러가지를 의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오바마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지는 언급하길 꺼려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정부는 전·현직 외교안보라인과 정부 관계자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인연의 끈이 닿았던 사람들을 물색하는 등 ‘오바마 인맥 재정비’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신혜경 국토해양비서관이 오바마 대통령과 하버드대 로스쿨 동문이지만 오바마 측과 인연은 전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은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외교부 장관 시절 미국 유력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인사한 적이 있을 뿐이고, 송영길 의원도 지난해 1월 미국 상·하원 개원 리셉션에서 잠깐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자 자유선진당은 미국의 새 정권 출범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준비 부족’을 지적하며, “급박한 외교현장에서 아무런 실질적 준비도 갖추지 못한 게으름과 무사안일의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선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부와 한나라당이 뒤늦게 오바마와 민주당과의 연결채널 확보에 허둥대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러고도 ‘실용외교’라고 큰소리를 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오바마 정권의 탄생과 함께 우리는 북핵문제와 한미 FTA 등 중대한 현안들로 당분간 한미 간에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북한은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을 미국 대선일에 뉴욕으로 보내 미국 측과 북핵문제에 대한 협의에 나설 예정이며,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겠다고 한다”며 “우리 정부는 통미봉남에 대비해 확고한 원칙과 철학을 갖고 당당하게 한미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국회는 방미 대표단을 꾸려 오는 17일 미국 의회의 레임덕 섹션(총선 후 새국회 개시 전 기간)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측과 접촉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을 비롯해 외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한미 동맹과 대북 정책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폭넓은 의원 외교 활동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대표단은 또 방문 기간 동안 미국 민주당 의원들과 활발한 접촉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미국 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대표단은 특히 신 정부 인수위팀과도 면담을 갖고 향후 미국 행정부의 외교 기조와 양국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정부는 이미 민주당 집권에 대비해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놓은 상태”라며 “오바마 당선자 캠프의 상당 수 인맥이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어서 호흡을 맞추는 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각 당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먼저 민주당은 지난 5일 한반도에 대한 정책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관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브리핑을 통해 “미국 새 행정부가 등장해 한반도 정책 변화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미관계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며 “송영길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송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한미 FTA를 포함해서 한미관계 발전을 위한 특위를 구성한 뒤,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위원장은 특위를 제안한 송 최고위원을 맡기로 했으나 아직 위원들을 구성하지는 않았다”며 “조만간 미국 방문을 추진할 예정이며, 방미단에는 위원장과 송민순 의원 등이 포함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도 6일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몽준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한미관계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특위 구성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미국 측과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라며 “오바마나 민주당 측과 네트워크가 있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조만간 정 최고위원이 위원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다른 야당에 대해 “새로운 오바마 정권에서 한미관계는 초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초당적인 방미대표단을 구성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민주당 한미관계발전특위 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국회 브리핑 자리에서 “과거 한나라당이 개별적으로 대표단을 꾸려서 자기 입맛에 맞는 보수적 인물 몇 분 만나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엇박자낸 모습보다는 초당적인 대표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미 행정부의 한반도 담당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담당하는 미 무역대표부(USTR) 등을 함께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처럼 정치권이 오바마 후보와의 인맥 찾기에 나서고 있는 현 흐름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치권이 오바마 당선자의 인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지나친 호들갑은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당적 차원의 교류나 협력은 충분하게 보장되어 있다.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유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찾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각각 조만간 오바마 인맥이라고 판단되는 인물을 선별해 미국에 파견,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과 접촉을 시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