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중징계…투자 심사 소홀 등 책임 물어

[파이낸셜투데이=이원배 기자]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아 사실상 ‘퇴출’이라는 반갑지 않은 패를 손에 쥐게 됐다. 김 행장의 거취에 대한 각종 설이 고개를 들면서 은행 조직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하나은행 직원의 KT ENS 대출사기 사건 연루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어 은행 도덕성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김 행장은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부당 지원 사실이 적발돼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따라 당장 은행장 거취는 물론 향후 3년~5년간 금융업계 취업이 제한 돼 사실상 금융계에서 ‘퇴출’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김종준 행장이 중징계를 받으면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작업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또 금융당국이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 사건에 대한 하나은행 직원의 연루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은행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미래저축은행에 대해 부당 지원을 한 김종준 행장에 대해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김 행장이 하나캐피탈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지난 2011년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했다 60여억원의 손해를 봤는데 이 과정에서 투자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물은 것이다.

금감원은 또 김 행장이 이사회 회의록 허위작성 및 관련 서류 조작 등 위법·부당행위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김승유 전 회장 ‘주의적경고 상당’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이와 관련된 혐의로 ‘주의적 경고 상당’의 징계를 받았다. 김 전 회장은 재임 시 자회사인 하나캐피탈에게 미래저축은행에 대해 비정상적인 신용공여 성격의 투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자회사의 건전경영을 저해한 책임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하나캐피탈은 기관 경고를, 하나금융지주는 기관 주의를 받았고 관련 임직원 5명은 감봉 징계를 받았다.

김 행장이 중징계를 받음으로써 당장 그의 거취가 불안해졌다. 벌써부터 후임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향후 3년~5년간 금융계 취업이 제한돼 사실상 금융계에게 ‘퇴출’ 당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감원의 김 행장에 대한 중징계는 은행장에서 물러나라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 행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김 행장의 저축은행 부당 지원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점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존보다 징계 수위를 높였다”면서 “거취는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제재심의위에서 김승유 전 회장을 제외하고 김 행장만 제재안건에 상정시켰다가 논란이 일자 하나캐피탈에 대한 재검사에 착수했다. 당시 김 행장의 징계 수위는 ‘주의적 경고’였다.

김행장, ‘토사구팽’ 설 분분

금융사 임원에 대한 징계는 ‘주의’와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5단계로 나뉜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은행 임원은 향후 3년~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된다. 사실상 금융권에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된다.

금감원은 김승유 전 회장도 하나캐피탈 부당 대출과 관련해 관여한 사실을 일부 적발했다. 이런 거액 대출은 김 행장이 김 전 회장의 지시에 의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캐피탈 미래저축은행 투자 사건은 당초 김 전 회장을 타깃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 증거를 찾기 어려워 김 전 회장에 대한 제재는 경징계로 마무리됐다. 김 행장은 이날 열린 제재심위에서 김 전 회장의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김 전 회장과 하나캐피탈 사건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행장이 토사구팽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 행장이 중징계를 받자 당장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문책 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은 은행장들은 거의 모두 중도 퇴진했다. 황영기 전 KB금융그룹 회장이 2009년 9월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도 중징계가 예상되자 2010년 7월 자진사퇴했다.

김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2012년 취임해 임기 2년을 마치고 올 3월 주주총회에서 1년 연임이 확정됐다. 하나은행장 임기는 ‘2+1’ 체제로 임기 2년에 1년 연임이 가능하다.

김 행장의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아있지만 중징계를 받고 자리를 지킨 전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비춰볼 때 조기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김 행장, ‘반격’ 가능성?

하지만 김 행장이 그동안 줄곧 결백을 주장해왔고 징계 결정에 따라 사퇴를 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돼 사퇴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또 금융계 취업이 제한되는 ‘치명적 타격’을 입는 만큼 김 행장이 금융당국의 결정에 반발해 행정소송 등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물러나는 순간 김 행장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겠냐”라며 “줄곧 결백을 주장해 왔던 만큼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김 행장 징계와 관련해 “김 행장이 따로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았다”며 “아직 결정된 게 없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행장의 뜻과는 무관하게 후임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최근 김 행장의 연임 과정에서 함께 최종 면접을 치렀던 김병호·함영주 부행장과 2년 전 은행장 경쟁에 나섰지만 현재 하나은행 밖으로 자리를 옮긴 이현주 외환은행 부행장과 김인환 하나생명 사장 등도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반면 은행 내부에서는 ‘조직 안정’을 위해 임기를 완주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CEO 인선을 결정하는 경영발전보상위원회 한 관계자는 “적임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행장 교체를 결정하면 은행 경영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며 “무엇이 회사에 이로운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논의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김정태 회장의 의중이 중요할 듯하다”고 밝혔다.

하나은행 조직 불안정 ‘불가피’

김 행장이 자리를 지키든 새 은행장이 오든 하나은행 조직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행장이 자리를 지킬 경우 ‘중징계 최고경영자’란 ‘낙인’을 받으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반면 새 수장이 오면 조직을 장악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하나은행으로선 남감한 상황이다.

김 행장이 물러나면 하나금융 차원의 힘의 균형에도 지각 변동이 올 전망이다. 하나금융은 지주사 회장을 정점으로 하나·외환은행장이 권력을 나눠 갖는 구조이고 하나은행장은 차기 지주사 회장의 잠재적 후보이기 때문이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김 행장은 똑같이 임기를 1년여 남겼다. 김 회장에게 연임 의지가 있다면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김 행장이었다.

김 행장의 중징계로 김 회장의 연임 경쟁자는 사라졌다. 특히 하나금융은 최근 회장 임기를 ‘3+1년’에서 ‘3+3년’ 체제로 바꿨다. 김 회장이 또 다른 3년의 회장직에 연임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김 행장의 이번 징계로 김정태 현 하나금융 회장의 친정체제는 더 확고해 졌다. 지난달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물러나면서 김 회장 측근인 김한조 전 외환캐피탈 사장이 외환은행장에 임명됐다. 현재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진(CEO) 상당수가 김 회장이 임명한 인사들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김 행장 사퇴를 전제로 “김 회장으로선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에 이어 김 행장까지 물러나면 오는 2018년까지 독주체제를 굳힐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KT ENS 연루 가능성 조사

하나은행은 수장의 중징계 외에도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에 직원이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해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만약 사기 사건에 직원이 연루됐다면 하나은행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금감원은 KT ENS 협력업체들의 대출 사기 사건에 하나은행 직원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에 대해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주거래은행이었던 하나은행의 경우 2008~2010년 KT ENS 협력업체에 1조1000여억원을 부실하게 대출해줬다가 16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은행에서 내부 적발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문제라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하나금융지주를 비롯해 계열사의 전반적인 내부 통제가 느슨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불시 검사 등을 통해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행장 징계가 하나금융의 최대 과제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다. 통합은 조직이 안정된 상태에서도 추진이 쉽지 않은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또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을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반발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당장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의 통합 작업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김종준 행장, ‘정통 하나맨’ 최대 위기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은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준 행장은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협의회 회의에 불참했다. 금융협의회는 한국은행 총재가 주관하고 시중은행장들이 참여하는 월례행사다.

특히 이날 금융협의회는 이주열 한은 총재 취임 후 첫 열리는 ‘상견례’ 자리로 남다른 회의였다. 김 행장을 제외한 모든 시중은행장이 참여했다. 김 행장은 또 하나금융그룹 계열사 전 임원이 참여한 워크숍에도 불참했다. 그만큼 김 행장이 받은 충격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 행장은 1956년 출생으로 경복고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했다. 이후 하나은행 압구정지점 차장(1991년)과 반포지점장(1993), 임원부속실장(1997년), 영업1부 부장(2000년), PB 본부장(2002년), 부행장겸 가계금융그룹 총괄(2008년)을 지냈다.

이듬해인 2009년 하나캐피탈 대표이사에 오르며 ‘하나금융맨’으로 승승장구했다. 하나캐피탈 대표이사에 오른지 3년만인 2012년 제5대 하나은행장으로 취임했다. 올 3월에는 연임이 확정돼 임기 1년이 추가됐다.

김 행장은 평소 포섭형 인물로 알려졌다. 부하직원과 격의 없는 대화와 소통을 중요시하고 조직의 융합과 위상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캐피탈 사장을 맡을 당시엔 170억원의 적자에 허덕이던 하나캐피탈을 3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위기극복 리더십을 가진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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