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세계관 확장 위해서는 스토리텔링 필요
내러티브 강화는 스토리 비중 늘리기로
다른 콘텐츠와의 연계에서 생기는 딜레마
스토리 스킵 막으려면 PVE‧PVP와 분리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IT‧콘텐츠 분야에 많은 관심이 쏠리며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를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덕후’의 눈으로 바라본 업계 변화의 움직임을 풀어본다.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가 뜨고, 메타버스에 들어갈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체험형 문화콘텐츠인 게임이 최근 원천 IP로 각광받는 웹툰‧웹소설 못지않게 IP 확장에 열심이다.

게임 IP는 게임사가 만들어낸 디지털 세상의 세계관과 그 안의 캐릭터들을 포함해 구성된다. 게임을 하는 이용자를 붙잡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IP 원소스멀티유즈(OSMU)를 고민하는 게임은 내러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 유명한 게임이어도 글로벌에서 생소하다면 내러티브는 글로벌 이용자가 IP에 몰입할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한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부여 역할을 한다. 잘 짜인 스토리는 세계관을 형성하고, 잘 만들어진 세계관은 IP가 돼 OSMU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다른 장르보다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수익을 내는 MMORPG에서 특히 그렇다. 콘텐츠가 배치되고 레벨 디자인이 이뤄질 때 스토리를 강제로 감상하게 하는 등 내러티브를 강화하면 PVE 콘텐츠 스피드런 같은 것을 노리는 사람이나 스토리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족쇄가 된다.

몇 시간이면 끝날 스토리에 몇 개월의 시간을 들여 연출에 공을 들여도 관심 없는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스토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새로운 레이드 PVE 콘텐츠가 추가됐을 때 ‘퍼스트 클리어(첫 번째로 공략하는 것)’를 노리면 스킵(Skip, 건너뛰기) 버튼을 연타하게 된다. 다 보고 출발하면 스킵한 사람보다 늦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게임의 콘텐츠가 주요 세계관과 연동되고, 메인 스토리 라인과 긴밀한 경우도 많다. 스퀘어에닉스가 개발하고 액토즈소프트가 국내 퍼블리싱을 담당한 ‘파이널판타지14’처럼 메인 스토리와 레이드 개방 스토리를 분리한 경우도 있다. 퍼스트 클리어를 노리는 사람은 레이드 개방을 최우선으로 하고, 스토리 감상을 우선시한다면 메인 스토리부터 하고 다른 콘텐츠를 즐기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레이드 같은 콘텐츠를 위해 스토리 라인을 구성해야 한다. 서브 퀘스트처럼 짧은 스토리가 아니라 이용자가 싸워야 하는 세계관 내 주요 적이 등장하는 배경을 설명하고,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줄 내러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대부분 게임은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동안 이후 콘텐츠 공략에 필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별개 스토리를 만들면서도 메인 스토리와 동떨어지면 안 된다.

이런 딜레마는 게임의 특징에도 영향을 준다. 내러티브를 강화하려면 스토리 진행에 막히는 요소가 적어야 한다. 통상 매력적이고, 몰입도 높은 내러티브가 있다면 추가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의 과금은 용인된다. 하지만 다음 스토리를 보기 위해 몇 주 이상의 반복 작업이 필요하다면 흥미를 잃기 쉽다. 다음 단계를 위해 일명 ‘노가다’를 강요하거나 과금을 강제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적정 시작 레벨을 설정하고, 스토리 진행에 막힘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퍼스트 클리어’를 노리는 이용자를 붙잡을 수단이 필요하다. 많은 게임에 마련된 ‘회상’ 관련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내가 그동안 진행한 스토리의 컷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보기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OTT 등으로 보는 것 같은 차이를 준다.

예를 들어 스마일게이트RPG의 ‘로스트 아크’가 최근 진행한 신규 대륙 ‘엘가시아’ 업데이트에서 새로 나온 던전을 공략하려는 사람들은 스토리를 스킵했다. 그들은 신규 던전을 공략하고 나서야 다른 캐릭터로 ‘엘가시아’ 스토리를 감상할 여유가 생겼다.

내러티브가 빈약하면 게임 속 세상에 몰입하기 힘들고, 접속해야 할 이유를 쉽게 잃는다. 화려한 그래픽과 일러스트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과 같고, 내러티브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이용자에게 왜 성장해야 하는지, 왜 전투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한다. 확률형 아이템 뽑기를 하더라도 강한 내러티브가 부여되면 지갑을 열게 하는 심리적 장벽을 약화한다.

내러티브가 약한 게임은 주로 다른 사람과의 비교, 승부를 통해 승부욕을 자극한다. 이기고 싶은 심리를 자극해 확률형 아이템 등의 유료 아이템 구매를 유도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게임사의 수익을 위해서는 1인당 평균 결제금액(ARPU)가 높은 것이 좋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 짜인 수익구조(BM)에서 나오는 과금 유도가 필요하다. 당연히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매력적인 세계관이 마련됐다면 굳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볼 사람은 보기 마련이다. 모바일게임에서는 주로 스토리 진행 도중 신규 콘텐츠가 열리지만, PC 온라인게임에서는 스토리를 다 해야 신규 콘텐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 배치는 BM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파이널판타지14는 월정액 게임이고, 대부분 MMORPG는 부분유료화 게임이다.

건너뛸수도 있지만 게임 메인 스토리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넣는 일본 사이게임즈 같은 게임사도 있다. 사실상 애니메이션으로 IP를 확장한 셈이다. 파이널판타지14의 방식이 옳은 것도 아니고, 로스트아크가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IP 확장을 위해 스토리에 힘을 주고 내러티브를 강화해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하려면 주요 스토리를 모두 봐야만 콘텐츠가 개방되는 기존 방식에서는 탈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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