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변인호 기자
사진=변인호 기자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많은 사람이 ‘누군가의 인생 게임’을 만들길 희망한다. 스마일게이트RPG의 MMORPG ‘로스트아크’도 출시 전 쇼케이스에서 스마일게이트그룹 창업자인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로부터도 결이 비슷한 말이 있었다. 권혁빈 창업자는 2018년 9월 로스트아크 쇼케이스에서 ‘로스트아크’가 게이머에게 ‘첫사랑 같은 게임’이 되길 희망했다.

신규 대륙 ‘엘가시아’로 1부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는 ‘로스트아크(이하 로아)’는 이용자에게 지난 13일 건강상의 문제로 금강선 총괄 디렉터가 사임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금강선 디렉터의 특별 생방송 소식에 업데이트 로드맵에 대한 설명이나 엘가시아 관련 이야기 등을 기대하고 있던 이용자들은 사임 소식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이용자들이 게임 내 신전에 가서 얼른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와달라고 기도하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회복해서 돌아오라는 헌정 영상들이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금강선 디렉터의 사임에 슬퍼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무리도 나타날 정도였다.

로아가 정식 서비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북미‧유럽 지역에서도 금강선 디렉터의 사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디렉터의 사임에 국내외 유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안타까워하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로아는 모바일게임이 주류가 된 국내 게임시장에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PC 온라인게임이었고, 금강선 디렉터를 필두로 PC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지난 2월 출시 직후 동시 접속자 132만명을 기록한 이후 지난 9일 63만명을 재돌파하는 등 K-게임의 저력을 보인 게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로아의 순위 역주행은 스마일게이트의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국내 로아 이용자들은 로아 개발‧운영팀의 장점으로 빠른 피드백을, 단점으로는 피드백을 받을 일을 하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로아에도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각종 버그, 밸런스 문제 등 많은 흠결이 존재하고, 이용자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다만 ‘누군가의 인생게임이 되고 싶다’는 다른 많은 게임들, ‘이용자와 소통하겠다’고 꾸준히 말해온 다른 많은 게임들과 로아는 소통 방식이 달랐다.

로아는 서비스 시작 초기 접속 한번 하려면 너댓시간 이상은 대기해야 할 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시즌1 말미로 갈수록 암흑기를 보냈다. 많은 이슈도 생겨났다. 그러다 금강선 디렉터와 개발‧운영진은 2020년 1월 ‘루테란 신년 감사제’ 등의 간담회에서 ‘레이드 즉시 완료권’ 같이 이용자들로부터 지탄받은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고, 이용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온전한 신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고칠 것이라는 믿음은 갖지만, 그 시기가 다들 불편함에 적응해서 ‘그런 문제가 있었지’ 할 때쯤 고쳐준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금강선 디렉터는 여러 간담회에서 “누가 아직도 그 게임 하냐고 물어보면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로스트아크 한다고 할 수 있게끔 준비하겠다”고 약속하고 게임을 개선해왔다. 금강선 디렉터를 비롯한 로아 개발진의 노력은 올해 초 신분당선 판교역에 게재된 이용자 모금 지하철 광고를 통해 로아 이용자들로부터 ‘응! 나 아직 그 게임해!’라는 화답으로 돌아왔다.

금강선 디렉터의 말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로아 개발진의 진심이 닿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로아를 스마일게이트에서 믿어줬고, 이용자들은 기다렸다. 실로 특별한 상호작용이었다. 특히 로스트아크 속 세계 ‘아크라시아’를 만들어내고 ‘아크라시아’의 주민이 될 이용자들을 위해 개발진들과 함께 노력해 온 금강선 디렉터의 이야기가 로스트아크의 스토리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한 점도 있었다.

게임사, 개발진의 게임에 대한 애정이 이용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금강선 디렉터는 ‘로아온’ 같은 이용자 간담회에서 OST를 직접 연주하고, 신규 대륙 엘가시아의 메인 OST ‘Sweet Dreams, My Dear’ 가사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다 금강선 디렉터는 마지막 특별 생방송에서 이용자들에게 “건강을 잃었지만 여러분을 얻었다”고 인사를 남겼다. 갑작스럽게 정말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가는 듯, 좋아하던 선생님이 전근 가는 것처럼 이용자들과 애틋한 이별이었다.

로아의 사례를 통해 ‘종합문화예술’인 게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아가 ‘이게 게임이냐’며 트럭시위로 뜨겁던 지난해 게이머들의 눈에 들기 시작한 것은 이전부터 로아 간담회에서 공개됐던 “저희는 계속 게임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최근 ‘게임’의 본질적 의미가 다소 퇴색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시네마틱 트레일러, 게임 소개 영상만 봐도 해보고 싶어서 기대하게 되는 게임을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수익구조(BM)에서 오는 과금 스트레스뿐 아니라 기대하고 있던 게임의 출시 연기도 있다. 거대한 오픈월드를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임 내용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국내 게임사들이 열심히 진출하고 있는 블록체인‧NFT 등의 신사업이 기술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문화예술적인 부분에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게임이 각종 신기술과 새로운 BM으로 기술적인 부분이 발달한 ‘상품’이면 단기간에 실적을 크게 견인하는 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게임 개발진이 누군가의 인생 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과는 다소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많은 신작 게임 발표회,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인생 게임’이나 ‘소통’에 대한 말은 자주 나오지만, 상품으로서의 게임에 무게가 실리면 개발진의 진심이 이용자들에게 닿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셈이다. 다만 로아를 통해 게임사가 진심을 다하면 성과로 돌아온다는 것도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26일 로아는 간담회 ‘로아온 윈터’와 대규모 겨울 이벤트 효과로 전주 대비 신규 이용자 수가 545%, 복귀 이용자 수 499%, 일 이용자 수 135% 증가를 달성했다. 스마일게이트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42.4% 증가한 1조4345억원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2.6% 늘어난 5930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강선 디렉터는 마지막 방송에서 “게임이라는 단어는 여러분에게 항상 설레고 재미를 줄 수 있는 단어여야 한다”며 “게임이라는 단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게임을 의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임은 단순 상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안식처이자 도피처이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추억을 쌓는 매개이기도 하다. 좋은 게임, 재밌는 게임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의 인생 게임’이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아울러 ‘누군가의 인생 게임’이 될 작품을 위한 개발진의 노력과 마음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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