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2010년은 각계각층에서 지도층 인사들의 부침이 이어진 한해였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7.28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왕의 남자’로 부활했고 2년여간 칩거에 들어갔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당심의 선택을 받아 대표로 복귀했다. 반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딸 특채’ 파동으로, 김태영 국방장관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처 미흡으로 각각 낙마했다.


‘왕의 남자’ 이재오 특임장관, 화려한 부활
▲ 이재오 특임장관

한동안 정치적 칩거 생활을 했지만 ‘나홀로’ 선거 운동을 벌여 7.28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왕의 남자’로 부활했다.

이 장관은 30여년간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5차례에 걸쳐 10여년간 옥고를 치른 재야 출신 인사로, 이명박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으로 꼽히며 이대통령 집권 초기 최고 실세로 부상했다.

하지만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낙마했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0개월간 ‘정치적 유배’ 생활을 보냈다. 이후 국민권익위원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복귀, ‘총리급 행보’라는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현장 곳곳을 누비며 ‘고충 해결사’로 거듭났다.

7.28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 무대로 돌아온지 11일 만에 특임장관에 전격 발탁된 그는 당정청, 여야간 소통과 화합을 위한 가교 역할에 주력하며 현장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정치가 지력을 다했다. 객토해야 한다”며 ‘객토론’을 제시, 개헌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드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90도 인사’도 연일 화제가 됐다.


‘세종시 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시작은 창대했으나
▲ 정운찬 전 국무총리

10개월여간의 재임 기간 ‘세종시 총리’로 불릴 정도로 세종시 수정 문제에 명운을 걸었지만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8월 11일 물러났다.

10여년간 정치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으며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꼽혀 왔던 정 전 총리는 2002년 서울대 총장에 임명돼 다양한 인재 선발을 기치로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하고 각종 개혁을 추진했다.

소신파 경제학자이자 소문난 ‘야구광’으로 인지도를 쌓았던 정 전 총리였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세금탈루, 병역회피 등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덕성에 흠집이 났고, 각종 말실수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총리 재임 기간 10여차례 충청 지역을 방문, 설득에 나서며 세종시 수정에 ‘올인’했으나 결국 수정 실패로 불명예 퇴진했다. 대권 주자 반열에서는 일단 멀어졌다는 평가지만 최근 총리 시절 강조했던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할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집권여당 수장’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잇단 구설수
▲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7.14 전당대회에서 개혁과 화합을 내걸고 집권여당 수장에 올랐으나 `보온병 포탄' 논란, 예산파동 인책론으로 연말에 때아닌 곤욕을 치렀다.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여권에 위기감이 팽배했던 7월, 안 대표는 여권의 해결사를 자임하며 대표경선에 출마해 승리했다. 이후 7.28 재보선을 완승으로 이끌었고, 당화합 행보와 개혁적 중도보수 노선으로 ‘안상수 체제’ 안착에 성공했다.

하지만, 11월말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피해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포격으로 그을린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한 해프닝이 빚어졌고, 이를 담은 방송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되면서 원치 않는 유명세를 치렀다.

이어 예산파동으로 당내에서 지도부 퇴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개헌 정국과 내년 4월 재보선, 수평적 당청관계 재정립 요구 등은 안 대표 리더십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얼음공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대권 시동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세종시 수정안 논란 과정에서 정국의 중심에 섰다.

당 대표 재임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세종시 건설은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반드시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수정안 추진 방침에 정면으로 맞섰다.

결국 6월29일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표결 끝에 부결되면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고집 센 지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생겼다.

당의 6.2 지방선거 참패로 운신의 폭이 다소 좁아졌던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8.21 단독 회동’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과의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유력 차기 대권주자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연말에는 자신이 발의한 복지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사실상 대권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돌아온 대권주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 본격 대권 레이스
▲ 손학규 민주당 대표

2008년 7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2년여간 춘천 칩거에 들어갔다 10월3일 전당대회에서 변화를 택한 당심의 선택을 받아 부활에 화려하게 성공, 대권가도에 한걸음 다가섰다.

재야 운동권 출신인 손 대표는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 광명 보궐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됐다. 당 대변인,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지사 등 승승장구하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으나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정치인생의 최대 전환점을 맞았다.

이어 구 여권 대선 레이스에 합류했다 실패한 뒤 2008년 초 당에 구원투수로 투입돼 과도기 대표로서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들었다.

대표 취임 후 강한 야당 지도자로서의 변신을 시도해온 그는 12월 8일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에 맞서 현 정권 심판을 선언하며 한겨울 장외투쟁에 돌입, 또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차세대 리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후 지난 7월 민노당을 이끌 새 대표에 선출되면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초선의 여성 당대표의 탄생은 그 자체가 파격이었고, 그는 `유연한 진보'를 내세우며 야권의 ‘차세대 리더’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10월에는 "당의 수도권 돌파에 앞장서겠다"며 19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출마를 선언하고 지역사무소를 열었다.

최근에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통합을 위해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와 회동, 연석회의를 추진키로 합의하는 등 `진보 대통합'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연소 도백’ 김태호 전 경남지사, 아직은 때가 아니다
▲ 김태호 전 경남지자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며 39년만에 ‘40대 총리’(48세)로 지명됐으나 공정성 논란에 휘말려 중도 낙마했다.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를 통해 ‘최연소 도백’에 오르며 정치권을 놀라게 한 김 전 지사는 올해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경남지사 3선 도전 대신 불출마를 선언, 중앙정치로 무대를 옮겼다.

8.8 개각을 통해 총리로 발탁된 김 전 지사는 세대교체 및 통합.소통의 ‘아이콘’인 동시에 ‘소장수 아들’이 행정부 수장으로 발돋움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스폰서 의혹, 불투명한 금전 거래 및 재산관리 문제, 나아가 답변 번복 등으로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총리 지명 21일만에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영포회 개입 논란 구설
▲ 이영호 전 청와대고용노사비서관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로 재판 중인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으로부터 공무원 감찰 정보를 비선으로 보고받았다는 의혹으로 7월 사표를 제출했다.

포항 인맥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과 연결돼 영포목우회(영포회) 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포항에서 중·고교를 졸업해 포항 인맥으로 분류되지만 공직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정식 영포회 소속은 아니다.

평화은행 노조위원장을 지냈으며, 2007년 대선에는 당 선거대책위 노동분야를 담당하면서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를 성사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파동으로 곤혹
▲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이명박 정부의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딸의 특별채용 파동 때문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8월말 실시된 외교부 5급 직원 특채에서 유 전 장관의 딸이 합격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9월 초. 유 전 장관은 언론에 이 사실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딸의 응모를 취소했지만 비판 여론이 커지고 행정안전부가 특별인사감사에 착수하자 9월4일 “물의가 야기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유 전 장관은 현 정부 들어 2년7개월간 북핵과 천안함 사건 등의 난제들을 노련하게 처리하면서 장수장관으로 인정받았지만 도덕성에 흠집을 남긴 채 37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감했다.

행안부 감사결과 외교부는 유 전 장관의 딸이 합격할 수 있도록 면접평가, 응모기간 등에서 노골적인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외통위는 국정감사에 유 전 장관을 증인으로 불렀지만 그는 두 차례 모두 해외에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나가지 않았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아시아문제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체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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