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로 시작해 북한 문제로 끝난 한반도

▲ 11월 11일부터 이틀간 열린 서울 G20정상회의

[파이낸셜투데이] 2010년 정치권은 북한 문제로 한 해가 떠들썩한 한 해였다. 북한이 두 번이나 대한민국을 공격하면서 대한민국은 안보정국에 휩싸이게 됐다. 때문에 각종 이슈가 불거져 나왔다가 안보이슈에 묻히는 모습이 보였다. 친이-친박계의 싸움은 세종시 수정법안을 통해 정점을 찍고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비밀회동으로 화해모드로 돌아갔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야당과의 관계는 2011년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2010년 초에는 2009년 가을부터 불거져왔던 이슈로 뜨거웠다. 그것은 바로 정운찬 전 총리가 들고 나온 세종시 수정법안이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세종시 수정법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슈를 주도했던 인물은 박근혜 전 대표이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법안에 대해 반대하면서 친이-친박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친이계는 친박계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친박계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세종시 수정법안 불가를 천명했다.

결국 친박계 내부에서도 분열의 모습을 보이더니 친박 좌장인 김무성 의원이 친박계에서 내쳐지게 됐다. 이후 김 원내대표는 친이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원내대표에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6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법안이 재적의원 275명 중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이날 민주당 등 야당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고, 친박계 의원도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이 일로 정운찬 전 총리는 총리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내정됐지만 인사청문회 파고를 넘지 못하고, 다시 김황식 국무총리가 결국 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이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30%대에서 20%대로 하락해야 했고, 후반기 들어와서 드라마 대물 덕분에 30%대로 재진입하게 됐다.

세종시 수정법안은 이렇게 마무리가 됐으나 올해는 그야말로 북한의 무력도발에 의한 안보정국이 휩싸였던 한 해엿다.

천안함에 이어 무력도발까지

지난 3월25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우리 군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격침, 침몰된 사건이 터졌다. 이후 사고 원인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했다.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지만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각에서는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란 합동조사단의 공식발표에 의문을 품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이 조사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않은 분위기다. 때문에 실질적인 대북제재가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안보이슈를 지방선거에 이용하려 했다가 대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태를 전면으로 부각, 대승을 거둘 생각이었다. 한나라당은 안보이슈를 내세워 보수층 결집과 동시에 중도층을 껴안겠다고 했다. 이에 유세장마다 북한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민주당을 압박했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대참패였다. 한나라당이 안보 이슈를 내세운 것이 오히려 안보 불안으로 작용했다. 많은 사 람들이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트위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젊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모이게 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무상급식 공약을 들고 나온 것이 주효했다.
민주당은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안보이슈를 역으로 이용했다. 이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투표하는 경향이 강했다. 결국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하게 됐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를 제외한 수도권에서 광역단체, 기초단체, 광역의원, 기초의원 모두 대패를 했다.

무상급식에 무릎 꿇은 여당

결국 한나라당의 정몽준 대표 체제는 무너지고 안상수 대표 체제로 바뀌게 됐다.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한나라당은 새로운 당청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앗다. 특히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13명의 후보 모두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전면적 쇄신 및 당청관계 재정립을 외쳤다. 아울러 친이-친박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혔다.

하지만 결국 한나라당 대의원과 당원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줄 인물을 선택했다. 그 인물이 바로 안상수 현 대표이다. 안 대표는 수도권 친이계 대표 주자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다. 때문에 안 대표가 대표직에 당선됨으로써 한나라당은 사실상 이명박 체제로 돌입하게 됐다.

반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 체제는 6.2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해 있으면서 7.29 재보선 공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7.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당선시킨 서울 은평을과 충북 충주 등 최대 승부처 2곳을 비롯한 5곳에서 승리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한나라당은 안 대표 체제에서의 첫 성과라는 측면에서 크게 고무될 수 있으나, 재보선 결과만을 두고 국민들의 지지가 표결로 나타났다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인식도 있었다.

한편, 재보선과는 별개로 당 대표 선출에서 안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홍준표 최고위원은 ‘정풍운동’이라며 여당 내 비주류의 역할을 담당,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두언 최고위원 역시 안 대표 체제에 대해 “당원과 국민들의 관심사에 무심하다”며 안 대표의 행보를 비난했다. 이 후에도 개헌논의, 서민대책, 감세정책, 불법사찰 배후론, 대포폰 재수사론 등 당내 갈등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한편, 민주당은 7.28 재보선에서 참패를 맛보면서 정세균 대표 체제가 무너졌다. 결국 정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10월3일 전당대회를 통해 손학규 대표 체제가 탄생하게 됐다. 손 대표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 방식에 불만을 품으면서 탈당, 민주당에 입당을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의 조직이 미비하면서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의 쓴맛을 맛보게 됐고, 결국 춘천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하지만 손 대표는 민주당이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춘천 칩거를 끝내고 민주당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 이런 모습은 민주당 대의원과 당원에게 어필됐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기쁨도 잠시 10.28 재보선에서 겨우 1곳에 당선, 손 대표 체제가 흔들렸다. 이에 손 대표는 이후 4대강 사업 반대 등 선명야당을 표방하면서 손 대표의 지지율이 두 자리까지 올라가게 됐다. 아울러 유시민 전 장관을 제치고 야당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2010년 중반 선거로 뜨거워졌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청와대에서 극비 오찬을 가졌다.
언론에서 연일 친이-친박 갈등이 보도되면서 친이-친박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두 사람의 회동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전부터 친이-친박은 갈등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그동안 만남을 가졌어도 화합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회동 이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친이-친박은 화해 모드로 돌입하게 됐고, 박 전 대표는 외연확대의 움직임을 보이게 됐다. 이에 친이계 인사들을 만나 식사를 하는 등 소위 식사정치를 하게 됐다. 이재오 특임장관 역시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 과거 묵은 감정을 털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급변하는 한반도

하지만 이 두 세력의 화해 모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정가의 전망이다. 그 이유는 박 전 대표가 2011년 상반기에 본격적인 대선활동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본격적인 대선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친이-친박 갈등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시키면서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게 됐다. 이후 G20 서울정상회의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이 대통령은 날개를 단 상황이었다.

G20 정상회의를 통해 남들이 짜놓은 국제경제질서 속에서 기존의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새로운 판을 짜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우리 정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명하는 예가 있어 서울 G20 정상회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한 공영방송인 KBS에 의해 과도한 G20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으며 그 효과 또한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음향대포 도입도 논란이 되었다. 음향대포는 청각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140dB 이상의 큰 소리를 내며 두뇌에도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시위 진압도구중에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있다. 또한 G20을 계기로 야간집회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데 대한 국민 탄압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 외에도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넣은 사람에게 구속영장을 무리하게 신청하여 기각된 사안이나, G20 정상회의 기간동안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자제해달라고 공고를 보내거나, 정화조 차량 통행을 금지시켜 사실상 대변을 보지 말라는것 아니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20 서울정상회의를 무사히 마치게 되면서 성공적인 정상회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곧바로 북한이 연평도 무력도발을 일으킨 것이다. 11월23일 오후2시30분경 북한은 연평도 무력도발을 일으켰다.

북한은 76.2mm 평사포, 122mm 대구경 포, 1300mm 대구경 포를 이용,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개머리 해안부근 해안포기지로부터 포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군은 첫 타격 13분 후 K9 자주포를 무도 포진지에 50발, 개머리 포진지에 30발 총 80여발을 발사했다.

이후 20일 우리 군은 서해 해상훈련을 하면서 안보정국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를 강타했다. 또한 한반도는 한 달 사이 급변에 급변을 거듭해왔다. 미국은 한국과의 연합훈련에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투입하게 됐고, 이에 중국은 6자긴급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실질적 태도 변화가 있을 때까지는 6자회담은 없다고 거부를 했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연일 맹비난하면서도 6자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북한 역시 6자회담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후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방북, 유엔 핵사찰단의 핵사찰을 수용하면서 북한문제는 또 다른 형국으로 치닫게 됐다. 여기에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에 대해 규탄하는 논의를 하는 등 국제사회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됐다.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은 국회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은 청와대 대포폰과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 내용을 폭로하면서 이슈를 선점하고, 장외 서명운동을 통해 여론전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사건이 터지면서 손학규 대표는 국회로 긴급복귀를 해야 했고, 청와대 대포폰과 민간인 불법사찰 이슈는 안보이슈에 묻혀야 했다.

아울러 새해 예산안 심의에도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북한 연평도 무력도발이 일어나자 정치권은 올스톱해야 했다. 결국 법정기한인 12월2일을 넘기게 됐고, 이에 한나라당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9일을 넘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반면, 민주당은 예산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임시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결국 12월8일 강행 처리 했고 309조원이나 되는 예산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끼리 몸싸움을 벌여 병원에 입원하는 등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민심은 극도로 냉랭하게 됐다.

문제는 졸속 처리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반이명박·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하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기획재정부가 넘겨준 예산안을 그대로 처리했다.

그런데 이 예산안에는 한나라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사업의 예산이 삭감 혹은 누락됐다. 특히 탬플스테이 예산이 누락되면서 조계종은 반정부·반한나라당을 선언하게 됐다. 사실 그동안 개신교의 땅밟기 논란으로 인해 조계종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그런데 탬플스테이 예산마저 누락되면서 사실상 반정부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민주당 역시 새해 예산안 여당 단독 강행 처리에 반발, 장외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이슈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끝까지 하겠다고 나서면서 2011년도 정국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2011년 정치권도 혼란에 혼란이 거듭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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