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손보, 부산지법 2심서 패소…상고 포기
소비자원 소분위 "보험가입자는 보험금 환급의무 없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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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보험금과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둘러싼 보험사와 보험소비자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법원이 보험사의 이같은 행태를 ‘취약계층에 대한 역차별’로 판단해 주목된다.

본인부담금 상한제는 국가가 국민의 의료비 지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실시하는 제도다.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가입자의 소득수준을 1단계부터 10단계로 구분해 상한액을 초과하면 초과분만큼 사전이나 사후에 환급금 형태로 환자에게 돌려준다.

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나 의료비 지출 감소로 보고 있다. 이에 기지급된 보험금에서 환급금만큼 환수하거나 지급될 보험금을 삭감해왔다.

◆H손보,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만큼 환수하려다 2심서 패소

부산지방법원(이하 부산지법) 제5-3 민사부(판사 박민수)는 지난해 11월 3일 H손보가 가입자 A씨에 대해 제기한 부당이익금 소송에 대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7년 H손보의 실손보험을 가입한 A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추간판탈출증, 손목관절증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실손보험금 1억9762만2939원을 수령했다. 이후 A씨는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으로부터 환급금 2238만2420원을 받았다.

이에 H손보는 A씨가 실손보험금을 지급받고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통해서도 환급금을 받은 것은 부당 이득에 해당한다며 지급된 보험금에서 환급금만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즉, A씨가 보험금을 수령하고 본인부담상한제를 통해 환급금을 받은 것이 이중 지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H손보의 주장에 A씨는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을 실손보험으로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2009년 10월부터 보험 약관에 기재됐고, 자신은 2007년에 보험계약을 했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부산지법에서 진행된 1심에서 재판부는 A씨가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해 본인부담금 상한제로 환급받은 2238만2420원을 H손보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A씨가 가입한 실손보험 약관에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환급금을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지만, 보상하는 손해에 대해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금과 비급여에 해당하는 비용의 100% 해당액을 1질병당 3000만원 한도로 보상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재판부는 당초 A씨가 본인부담금으로 병원비를 부담했다가 사후에 본인부담금 상한제로 환급받아 결국 본인부담금은 환급금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이므로, 실손보험에서 보상하는 손해인 본인부담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와 보험사의 판단이 같은 것이다.

재판부의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고,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H손보의 실손보험 약관상 명시된 ‘본인부담금’이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른 환급금을 제외한 금액임을 설명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와 함께 비록 A씨가 환급금을 받았어도, 병원비를 납부할 당시 이 환급금도 본인부담금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손보험에서 보상해야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 성격상 취약계층의 소득 보전 성격의 금품으로, 별다른 근거없이 환급금을 배제하는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역차별이자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시행 취지를 정면으로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H손보의 청구를 기각했다. H손보는 상고를 포기했다.

H손보 관계자는 “2009년도 이후 계약 약관에는 환수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이전 계약 건의 약관에는 명시돼 있지 않다 보니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상고함에 있어 효력이 없다고 판단해 추가 대응은 안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소분위, M손보와 가입자 간 분쟁에 가입자 손 들어줘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이와 유사한 분쟁 조정 결과가 나왔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이하 소분위) 서울 제2조정부는 지난해 9월 28일 M손보와 실손보험 가입자 B씨 간의 ‘본인부담상한제 적용해 환급 요구하는 실손보험금 채무부존재 확인 요구’ 분쟁에서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소분위 결정서에 따르면 B씨는 2019년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황색인대골화증’ 진단을 받고 골화증 제거 및 흉추후방 고정술을 받았다.

B씨는 M손보에 실손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는데, M손보는 ‘향후 본인부담금 상한제의 환급액이 확정되면 상한액을 초과한 금액은 반환한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B씨에게 요구했다. 보험금을 받기 위해 B씨는 각서를 작성했고, 493만3736원의 실손보험금을 수령했다.

이후 B씨는 각서 내용이 실손보험 약관에 없는 내용이라며 부당함을 주장했고 보험금 반환요구의 철회를 요청했지만, M사는 이를 거부했다. B의 계약은 2009년 2월 이뤄졌다.

소분위는 “복지행정의 목적으로 도입한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따른 환급금과 가입자가 별도로 가입한 민간 의료보험에 따른 보험금의 성격과 목적은 현저히 다르다”며 “보험사가 B씨에게 반환 각서를 징구하는 조건으로 실손보험금을 지급하거나, 기지급한 보험금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복지행정의 수혜자인 B씨의 궁핍한 처지를 이용해 국가가 시행하는 제도를 사적 기업이 활용하는 것이다”고 판단했다.

이어 “비록 신청인이 반환각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음이 상당하고 B씨는 M손보로부터 수령한 실손보험금 493만3736원을 환급할 의무가 없다”며 B씨가 M손보에 해당 금액을 환급할 채무가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함이 상당하다”고 결정했다.

M손보 관계자는 “해당 건에 대해 관련 판례와 함께 금융당국에 전달한 상태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금과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경계선 모호해

실손보험금과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에 명확한 경계선이 없어 보험사와 보험가입자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해당 사건 외에도 본인부담금 상한제로 인한 실손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간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봉민 무소속 의원은 본인부담상한제 관련 민원이 2016년 30건에서 2020년 178건으로 5년 새 6배가량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국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실손보험이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을 보험금에서 제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민이 받아야 할 건강보험 혜택이 보험사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소비자들이 보험사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시민단체와 함께 소송을 진행하는 등 최근 들어서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손가입자권익추진회 관계자는 “이전까지 본인부담상한제 관련해서 주로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가입자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먼저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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