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일사천리 통과…김중수 총재와 ‘선 긋기’

[파이낸셜투데이=이원배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가 총재 후보자로는 처음 치러진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했다. 이로써 이주열 총재 후보자는 한국은행 총재로서 향후 4년간 한국의 물가·통화 정책을 이끌어 가게 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19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고 이날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결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인사청문회 치고는 상당히 신속하게 청문경과 보고서가 채택됐다.

이 후보자가 별 흠결 없이 무난히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뜻이다. ‘현미경 검증’을 예고했던 야당 의원들도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위는 보고서에서 “후보자는 전반적으로 효율적 통화신용정책 수립과 물가안정, 디플레이션 방지, 금융안정 달성 등 산적한 경제과제에 대한 해결 의지와 경험을 갖췄다고 평가되고 준법성과 도덕성에서도 한은 총재로 적격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후보자는 4월 1일 제25대 한은 총재로 임명돼 물가안정과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됐다.

“한국은행 시장과 소통 미흡”

이날 열린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금리인상 가능성 등 이 후보자의 향후 정책 기조에 대한 질의를 쏟아냈다.

그는 금리인상 가능성 여부를 묻는 김현미 민주당 의원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미국 연 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조기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해외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질 경우 국내에서도 금리 인상 필요성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향후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발언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다소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경제가 저성장 기조인 지금, 물가와 성장의 균형있는 조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원칙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자는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시장과의 소통이 미흡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4월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시장 기대가 형성된 데에는 중앙은행이 그런 신호를 줬기 때문”이라며 “기대가 어긋났다는 시장 평가를 보면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주열 후보자는 향후 중점 사안으로 ▲물가 안정과 성장의 균형 있는 조합 모색 ▲국민의 신 뢰 ▲글로벌 금융협력 지속 등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신뢰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물가안정목표제는 국민 신뢰가 중요하다”면서 “신뢰는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에서 나오는 만큼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4월 1일 공식임기…소통 강화
여야, 이 신임 총재 기대감↑

 

포워드 가이던스 ‘검토 가능’

이주열 후보자는 기관 간 금융안정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금융 안정 기능이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고 조화로운 운영이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협의체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정책수단도 상호 보완적으로 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3년~2015년 중기 물가안정 목표(2.5%~3.5%)와 관련해서는 “현재 1%대 소비자 물가에는 공급 측 요인이 많이 작용했다”며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통화로 인정하기에 제약이나 한계가 너무 많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통화정책의 잣대를 미리 제시하는 선제적 지침(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형태로 도입하기는 어렵지만 소통의 수단으로서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며 다소 긍정적으로 답했다.

 

중도성향 평가 속 통화정책 주목
김중수 색깔 지우기 본격화 할 듯

 

이주열, 매파? 비둘기파?

이 후보자가 ‘매파(독립성과 물가안정 중시)’인지 ‘비둘기파(성장 중시)’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중도파’에 가깝다는 평가다. 청문회에서도 다소 원칙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09년~2012년 금융통화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할 때에도 ‘중도파’로 분류 됐다.

하지만 당시 그는 한은 부총재로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부총재 당연직 신분과 총재 신분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 하겠다”며 앞으로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예고했다.

정부와 정책이 충돌할 때에 대해서는 “정부나 한국은행의 주어진 책무가 있고 모두 국가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게 목적”이라며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양 정책의 조화가 필요한 것도 맞지만 중립성을 지키는 범위에서 정부에도 협조해 최적의 조합을 찾겠다”고 중립적인 의견을 비쳤다.

한은의 중립성 논란을 일으켰던 청와대 ‘서별관회의’ 참석에 대해서는 “중앙은행과 정부 간에 통화정책과 정부정책을 놓고 협조할 부분과 견제하는 사안을 선별해서 참석 하겠다”고 말했다.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경제수석과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한은 총재 등 경제부처 핵심 책임자들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에 따라 ‘서별관회의’에 한은 총재가 참석하는 것을 두고 한은의 중립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가계부채 문제가 위기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금융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위험 가능성은 낮게 봤다.

시장 평가 역시 ‘중도파’

전문가들은 이 후보자의 발언을 종합할 때 특별한 색깔을 내기보다 경제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중도파’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성향이 뚜렷하기보다는 중도에 가깝다고 본다”며 “낮은 물가가 걱정이긴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생각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이 중요하지만 통화 정책적 대응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도 이 후보자에 대해 성향이 잘 나타나지 않은 ‘중도파’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와 지적에 의견을 내기보다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딜러는 “최대한 국회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며 “때문에 후보자의 성향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인사 청문회가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통과가 됐다”며 “예상만큼의 매파적 성향이 나타나지 않아 시장이 다소 강해진 측면이 있다”고 청문회 관전평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일부 여당 의원이 ‘비둘기파’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져도 원론적인 답변으로 자신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일부 여당 의원이 노골적으로 비둘기파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다”며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두루뭉술하게 답변하며 매파적으로 보였던 서면질의 답변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이날 청문회에서 드러낸 성향은 청문회 통과를 의식해 다소 원칙적인 발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총재로 임명되면 본인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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