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금융투자업 혁신 적기

▲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투데이=조민경 기자] “대체 한국에는 왜 삼성전자 같은 금융회사가 없는겁니까?”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이 해외 출장을 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외국인들은 삼성전자, 현대차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기업으로 성장할 동안 금융 분야에서는 왜 한국을 대표할만한기업이 나오지 못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김 원장은 해답을 알고 있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는 왜 없을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해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는 김형태 원장의 답변이 최근 달라졌다.

“한국에선 금융이 ‘가난한 집’의 맏딸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라는 동생들을 뒷받침하느라 독립된 산업으로 발전할 기회와 경험이 부족했던 거죠. 동생들이 성공하고 나니주변에선 누나가 촌스럽다고 손가락질을 하네요. 이제 누나의 ‘반격’이 시작될 겁니다.”

김 원장은 “금융투자업이 사상 최초로 인수·합병(M&A)을 통한 과점체제에 진입하게 될 올해가 업계 재편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2020년까지 자본금10조의 ‘국가대표 투자은행(IB)’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종연횡으로 몸집 불려야

김 원장은 국내 금융사를 세계에 내놓으려면 ‘몸집’을 불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7월에는 자기자본 3조9500억원인 KDB대우증권이 3조5600억원의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독립 증권사’를 탄생시켜야 한다고 발언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증권 유관 기관장들을 만난 자리였다.

당시 김 원장은 “우리투자증권이 NH나 KB로 이름만 바꿔 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은행이 차지하는 금융지주 계열사보다는 투자은행 업무에 공격적으로 매진하는 독립 증권사가 나오는 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쓴 소리를 쏟아냈다.

자기자본 규모가 커야 일본·중국 투자은행들과 겨뤄볼 수 있고, 벤처·혁신기업의 위험까지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지론이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 규모는 2012년 말 기준으로 81조원이고, 일본 노무라(30조원)와 중국 중신증권(13조원)의 자기자본도 1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후 우리투자증권은 NH농협금융지주의 품에 안겼지만 김 원장은 이 증권사가 여전히 ‘국가대표’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금융의 삼성전자’ 탄생 원년…증권업 살길은 ‘대형화’
M&A 통해 몸집 불려야…글로벌시장에서 이익 창출 절실

“자기자본 4조원짜리 증권사를 2020년까지 10조짜리로 키우려면 연간 자기자본이익률(ROE)이25%는 돼야 합니다. 증권업 평균 ROE가 1%가 채안 되는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이죠. M&A를 거쳐야만 마켓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극심한 증권업 불황 속에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정부가 증권사 M&A 활성화 정책을 발표한 지금이 금융투자업 혁신의 적기라고 보고 있다. 62개까지 늘어난 증권사들이 출혈 경쟁을 멈추고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때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자본 10조원 규모의 대표 증권사 1곳과 5조원 규모 증권사 3∼4개가 경쟁하는 구도가 가장이상적”이라면서 “금융당국이 증권사 M&A 활성화를 위한 정책 기조를 한결 같이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자산 굴려 돈 벌어야 진정한 ‘해외 진출’

김 원장은 M&A를 통한 대형화는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기 위한 1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증권사들이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올 때 비로소 ‘삼성전자’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해외 매출액 비중이 전체의 90%에 달하고 현대차는 70%, LG화학은 65%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의 해외 매출 비중은 평균 3%에 불과하다.

“금융업 해외 인프라가 뒤떨어진 것이 지난해 터키원전 수주전에서 일본에 밀린 큰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까. 국내에서 블루오션을 개발하는 게 어려우니해외로 나가야죠. 해외 매출을 전체의 30% 수준까지 높여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김 원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부터 16년간 금융업이 궁지에 내몰렸던 국내 기업들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지켜봤고,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경영학자인 김 원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1998년 1월 자본시장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국내 거의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 한파를 맞고 있었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 구조조정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을 기반 삼아 출자전환과 유동화증권(ABS), 기업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CR리츠) 등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제도를 국내에 다수 소개했다.

론스타의 ‘먹튀 논란’이 거셌던 2004년에는 외국기업 먹튀를 방지하려는 방편으로 지분투자형 사모펀드(PEF) 제도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국내 PEF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 44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동생들이 해외 진출을 통해 훌쩍 큰 이제 누나인 ‘금융업’도 자기발전에 매진할 때가 됐다.

김 원장은 “국내 증권사들은 그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정부도 먹고살 수 있도록 보호해줬기 때문에 죽을 둥 살 둥 경쟁해본 경험이 없다”면서 “해외에 지점을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터키 등 각국 자산을 잘 굴려 돈을 벌어오는 것이 진정한 ‘해외 진출’”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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