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중 40차례 기준금리 동결…“중앙은행 무시 말라”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파이낸셜투데이=이원배 기자]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재임 기간 중 마지막으로 주재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 금리를 10개월째 동결했다.

김 총재는 임기 중 48회의 금통위에서 40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에 따라 ‘동결 중수’ 라는 별명도 얻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김 총재의 기준금리 결정과 조직 개혁, 시장과의 소통 등에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고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총재는 임기 만료 몇 달 전부터 “훗날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김 총재는 재임 중 마지막 금통위가 있던 13일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100년 만에 처음 온 커다란 위기였다”며 “격변과 질풍노도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단 한 번도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총재는 최근 평소 ‘소신’과 다른 ‘매파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총재는 이날 디플레이션 대처에 대해 “모든 경제주체가 종합적으로 대처해야할 사안”이라면서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게 그 역할에 맞다”며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물가안정성을 중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평소 김 총재가 강조한 ‘한국은행도 정부’라는 소신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김 총재는 취임 전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2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됐다가 그해 9월 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대한민국대 표부 특명전권대사로 활동했다.

이런 이력 탓에 김 총재는 물가안정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비둘기파’로 알려졌다. 그의 “한국은행도 정부다”라는 발언은 이런 인식을 더 확산시켰다.

 가계부채 문제, 차기 총재에 맡겨
엇갈린 시선…물가 급등 악재 연속

시작부터 “통화정책 혼선” 비판

김 총재가 취임한 2010년은 경제성장율이 6.3%에 달했다. 전임 이성태 총재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으로 물가불안마저 우려됐다.

이 전 총재는 “금융완화 기조는 적당한 시기에 줄이는 쪽으로 금통위원 간에 공감대가 형성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총재가 취임하고 나서도 기준금리는 석 달간 동결됐다.

당시 여야 국회의원들은 한국은행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내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금융시장의 혼란과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김 총재를 질타했다.

일부 의원은 환율 방어를 위해 물가 불안을 외면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련은 이듬해 찾아왔다. 취임 첫 해 2%였던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금통위는 그해 7월 기준금리를 연 2.00%에서 2.25%로 인상했다.

이어 2011년 6월에는 3.25%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해 3월 물가상승률은 한은의 목표치 인 4%를 훌쩍 넘어섰다.

출구 전략에 시동을 건 지 얼마 안 돼 미국 신용등급 하향 악재가 그를 괴롭혔다. 2011년 2 분기부터 0%대 저성장에 들어가자 금리 인하 요구가 분출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경제상황이 이미 안 좋아지고 있는데 한은은 금리를 오히려 올리고 있었다”며 “원화가치도 올라 부담이 됐다”고 지적했다.

학계 “통화정책 너무 경직됐다”

한은은 2012년 7월부터 금리를 세 차례 내렸지만 적극적 경기대응책을 요구한 시장을 만족 시키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지난 5월에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부양책에 떠밀려 기준금리를 내렸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금리 인하 직전까지 동결을 강하게 시사해 왔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교수는 “김 총재는 재임 기간 통화정책을 너무 경직되게 운용해 경기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낮게 평가했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통화정책의 기본은 예측 가능성인데 김 총재는 앞으로 어떻 게 될 지 확실히 말하지 않았다”며 “학점을 준다면 F학점”이라고 ‘야박’한 점수를 줬다.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큰 ‘과오’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김대식 중앙대학교 교수는 “시장 소통에서는 약간의 충돌은 있었지만 금리정책은 나름대로 잘 해왔다”고 비교적 후한 평가를 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필요 이상으로 지적을 받았지만 ‘대과(큰 실수)’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임기 중 1년 간 해외 출장 강행군
‘격변’과 ‘질풍노도’…“마음 여유 없었다”

한은 ‘국제 위상’ 제고 기여

폭증한 가계부채도 시급한 현안이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0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더 늘지 않게 올해 안에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총재의 임기 만료로 이 문제는 이주열 총재 내정자에게 넘어갔다.

김 총재가 한은의 국제적 위상과 전문성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강조하며 해외 교류를 활발히 했다.

한은에서 국제기구와 주요국 중앙은행에 파견된 직원은 2009년 5명(국제기구)에서 지난해 말 13명 (국제기구·중앙은행)으로 증가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선진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독무대였던 대규모 국제회의에서 발언권도 많이 확보했다는 평가다.

또 연구 활동도 활발히 해 국내외 연구진의 공동 연구도 2010년 1회에서 지난해 65회로 늘었다.

금통위 의사록 공개시기를 회의 뒤 6주에서 2주로 개선하고 분야별 전문가와 간담회 개최, 조직 내외의 연공서열 타파 등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총재, 해외에서 답을 찾다

김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공조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주 외국을 다녔다.

하지만 ‘국제공조’가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김 총재는 임기 4년간 18개국, 30개 도시를 73차례 다녔다.

역대 한은 총재 중 가장 많은 해외 출장 기록을 세웠다. 전임 이성태 전 총재 는 재임 기간 해외 출장을 29차례 다녀왔다.

김 총재가 주로 찾았던 도시는 미국 워싱턴과 스위스 바젤, 일본 도쿄 등이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는 13차례 참석했고 국제결제 은행(BIS)이 주최하는 총재회의에도 21차례 참석 했다. 일수로 따지면 355일로 거의 1년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한은 측은 “회의 참석이 대부분이고 일회성 출장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김 총재의 잦은 해외 출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은 김 총재가 2년 반 동안 해외 출장비로 5억8000만원 을 썼다며 이를 문제 삼았다.

김 총재는 해외 출장을 갔다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를 앞두고 하루 이틀 전에 귀국하거나 귀국 직후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바로 다시 출장을 떠나 총재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총재나 부총재보가 대신 참석해도 무방한 심포지엄과 콘퍼런스, 세미나까지 일일이 총재가 챙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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