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 대책 마련 고심…중장기 경영 ‘차질’

▲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투데이=김남홍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실형(징역 4년)이 확정된 후 SK그룹이 ‘패닉’에 빠졌다. 총수의 장기부재로 인해 신규투자 및 해외사업 추진 등 주력사업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사상 최대위기에 직면한 SK그룹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집단경영체제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이 설립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최태원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되면서 중장기 사업전략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룹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가 있지만 그룹의 미래 먹거리는 오너의 결단이 필요해 중장기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이 시급해졌다.

10일 증권가와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 회장 등의 실형 확정이후 ‘수펙스’ 권한 강화 등 전문경영인 중심의 집단경영체제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단기적 상황에서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너리스크가 불가피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안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옥중경영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 분야에서는 수펙스 역시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욱중에 있는 최 회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기업의 구조를 볼 때 전문경영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따른다”면서 “일정 시점이 흐르면 최 회장의 옥중경영이 본궤도에 오르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이어 “SK는 하이닉스, 이노베이션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상태”라며 “옥중경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만큼, 그룹 전체적으로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수펙스의 결단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최태원 형제, 등기이사직 줄줄이 사퇴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모두 내려놨다.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사퇴했다.

SK그룹은 지난 4일 “최 회장이 그룹 내 계열사에서 맡고 있는 모든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각 사의 이사회에 전달했다”며 “회사 발전을 위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SK(주)와 SK이노베이션 외에도 2016년에 끝나는 SK C&C, 2015년에 마무리 되는 SK하이닉스의 등기이사직에서도 사퇴한다.

최 회장은 이미 2012년 12월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날 결정으로 그는 법적으로 SK의 경영과 무관한 대주주 자격만 남았다. 최재원 수석 부회장도 SK E&S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SK네트웍스 이사직에서 사퇴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투자·글로벌 진출 차질

최 회장의 부재가 길어질 경우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그룹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최 회장 형제의 형이 확정된 지난달 27일 SK그룹 계열사의 주가는 큰 변화는 없었다. SK가스와 SK네트웍스, SK C&C 등은 오히려 주가가 상승했다. 에너지 사업을 하는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소폭 하락했지만 이는 ‘오너 리스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박형중 유진증권 투자전략팀장은 “SK이노베이션 주가 하락은 산업적 측면에 따른 것이지 오너리스크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충분히 예측하고 있던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총수 부재가 그룹 경영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앞서 SK그룹은 최 회장 수감 이후 신규 사업 진출, 대규모 인수합병 등에 대해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STX에너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가 9월 항소심 선고가 나온 뒤 인수의향을 철회했다. 또 SK에너지는 지난해 11월 호주의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 예비 입찰에 참여하려다가 번복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실형이 확정됨에 따라 수조원이 들어가는 SK하이닉스 투자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태국을 허브로 삼아 동남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사업과 자원 개발 사업에 진출하려던 계획과 물 관리 사업에 SK텔레콤과 SK C&C 등이 IT사업에 진출하려던 계획도 추진이 어렵게 됐다.

박형중 유진증권 팀장은 “수조원이 들어가는 SK하이닉스 투자 등 중요한 경영상 판단은 차질이 예상 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오너리스크’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판부, 횡령 사건에 단호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최태원과 최재원이 횡령 범행을 공모한 사실을 인정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형이 확정됨에 따라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은 특별사면없이 만기 출소할 경우 각각 2016년 말~2017년 초까지 복역하게 된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최 부회장은 같은해 9월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은 SK그룹 계열사의 펀드 출자금 465억원을 빼돌려 옵션투자 위탁금 명목으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송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원심은 이 중 450억원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법조계 ‘사적 이익위해 회사에 손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김 전 고문이 없는 상태에서 항소심이 진행돼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최 회장 형제가 무죄의 증거라고 제출한 김 전 고문과의 대화 녹취록을 유죄의 증거로 본 원심의 판단도 정당하다고 밝혔다.

또 최 회장 형제가 상고심에서 당초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실이나 항소심에서 반대신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SK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사적 이익을 위해 유용한 행위 등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1일 파기환송심에서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재벌 총수 형’인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가졌던 ‘희망’은 최 회장 형제에게 오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경우 경영상 판단에 따른 배임으로 사적 이익을 취할 의도가 없음이 참작돼 집행 유예를 받은 반면 최 회장 형제의 경우 선물 투자 손실을 메꾸기 위해 계열사의 돈을 횡령한 것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쳐 죄질이 나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SK그룹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

SK그룹은 최 회장 형제의 형이 확정되자 “SK를 사랑하는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룹 총수의 실형이 확정된 SK는 당장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 27일 SK그룹은 김창근 의장 주재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은 최 회장이 챙겼던 대규모 신규 사업과 해외 사업 분야의 차질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총수의 부재에 따라 SK그룹의 경영은 당분간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주도할 전망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1975년 ‘선경운영위원회’로 출발해 1998년 수펙스추구협의회로 이름을 바꿨다. 협의회 의장은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맡고 있다. 협의회 안에는 전략위원회와 글로벌성장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동반성장위원회 등 6개 위원회가 있다.

전략위원회 위원장에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와 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에 구자영 부회장(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겸직),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에 김영태 사장,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에 정철길 사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 김재열 부회장이 직을 맡고 있다. 김창근 의장과 6개 위원장들이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그룹의 주요한 일을 협의한다.

최태원 회장, 수감되는 교도소는?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형이 확정된 기결수이기 때문에 교도소로 이송돼야 한다. 최 회장은 2월 말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구치소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를 수감하는 곳이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최 회장을 어느 교도소에 수감할 지 결정하게 된다.

법무부는 최 회장의 형집행지휘서를 검찰에서 받는대로 분류처우위원회를 개최해 경비처우 등급을 확정할 방침이다. 경비처우등급은 1등급~4등급으로 나누며 초·재범 여부와 사건 내용, 죄명 등 16건 항목에 대한 심사를 하게 된다. 이 등급에 따라 등급에 맞는 교정시설에 수감된다.

교정시설은 등급에 따라 개방시설과 완화경비시설, 일반경비시설, 중경비시설로 구분한다. 개방시설은 수형자의 자율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통상적인 관리·감시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하지 않는다. 완화경비 시설은 도주 방지를 위한 통상적인 설비 및 수형자에 대한 관리·감시를 일반 경비시설보다 완화한 시설이다.

일반경비시설은 도주방지를 위한 통상적인 설비를 갖추고 수형자에 대해 통상적인 관리·감시를 하고 중경비시설은 수형자 간의 접촉을 차단하는 설비를 강화하고 수형자에 대한 관리와 감시를 엄중하게 한다.

1등급 수형자는 면회는 매일 1회, 전화통화는 매달 5회까지 허용된다. 2등급~4등급인 완화경비·일반경비·중경비시설의 수감자의 면회는 월 4회~6회로 제한된다.

1등급은 아주 짧은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은 2등급 이상을 받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완화경비시설인 의정부교도소나 여주교도소 등으로 이송될 가능성이 높다. 의정부교도소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복역했었다.

여주교도소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수형 생활을 했던 곳이다. 만약 경비처우 등급에 맞는 교도소의 빈자리가 없는 경우 서울구치소에 그대로 남을 수도 있다.

최 회장이 현재 수감된 서울구치소는 재벌총수나 정·관계 인사들이 많이 수감됐던 곳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일반적으로 재벌 총수나 정치인, 고위 관료들은 대부분 독거방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구치소 독거방의 규모는 1.9평으로 접이식 매트리스와 텔레비전, 1인용 책상 겸 밥상, 세면대, 화장실 등이 마련돼 있다. 면회는 하루에 한 번 가능하고 면회시간은 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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