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파이낸셜투데이= 김남규 기자]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데 이서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는 굴욕을 겪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직장인으로 출발해 재계 순위 13위까지 성장한 그룹의 수장에 올랐던 인물로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우상과 같은 존재감을 과시 했었다.

그는 STX 회장으로 13년 동안 재임하면서 다수의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외형을 키워왔다.

그러나 비대해진 외형에 걸맞은 체력을 키우지 못한 점은 커다란 과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검찰은 최근 실시한 압수수색 자료를 토대로 강 전 회장이 STX중공업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원했고, 회사에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강 전 회장은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가 내려진 상태다.

재임기간 동안 ‘전세계로 뻗어나가자’는 글로벌 경영을 강조해온 그였지만, 정작 현시점의 그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발도 나아갈 수 없는 영어(囹圄)의 존재로 전락했다.

검찰의 칼날이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으로 향하면서 샐러리맨 신화의 몰락이 가시화되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검찰은 강 전 회장이 STX중공업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원해 회사에 20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정황을 포착했다.

강 전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지난 17일 STX그룹 계열사 6곳과 강 전 회장의 서울 서초동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압수한 회계장부 및 컴퓨터 파일 등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계열사 간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STX중공업이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한 STX건설에 대해 추가로 연대보증을 서주는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STX건설은 2010년 1월 사업 시행사인 유넥스글로벌(Younex Global)이 군인공제회로부터 사업비 1000억원을 차입하는 데 연대보증을 서줬다.

또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STX건설은 300억원을 우선 상환하고 STX중공업의 추가 연대보증으로 만기를 연장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STX건설 최대주주이자 STX중공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의 지위를 이용해 STX중공업이 STX건설을 부당 지원하도록 했을 가능성을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중국 현지법인인 STX대련이 금융권에서 차입한 1조5000억원에 대한 계열사들의 연대보증도 들여다 볼 계획이다.

STX중공업은 약 1400억원을 보증을 섰지만 최근 STX대련의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현지 은행으로부터 채무보증을 이행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검찰은 STX중공업이 2012년 7월 재무적 어려움을 겪던 STX건설로부터 약 300억원어치의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 과정에서도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강 전 회장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사업과 관련해 군인공제회 차입금으로 괌 현지에 사업 부지를 매입하면서 가격을 과다 책정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우선 STX중공업이 손실을 입었다며 수사 의뢰한 혐의를 확인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관련업계는 채무보증과 CP 매입이 여러 계열사에 걸쳐 이뤄진 만큼 그룹 전반으로 수사가 광범위하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檢, 강 전 회장 정조준?

STX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이후 처음 실시된 대기업 수사이기도 하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토대로 자금 흐름을 파악한 뒤 그룹의 의사결정에 관여한 전직 임원들을 차례로 불러 의혹을 확인할 방침이다.

이에 관해 STX 측은 지난 10일 강 전 회장을 비롯한 전 경영진 5명의 배임과 횡령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현재 검찰은 강 전 회장이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속에서도 성과달성률을 허위로 조작해 거액의 성과급을 부당하게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STX 정상화를 위해 수조원의 추가 자금지원이 예상돼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사안이어서 관련 의혹을 신속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덕수 회장 13년 만에 ‘퇴장’

STX그룹은 한때 재계 13위까지 올랐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또 지난해 3월 초 해운 계열사 STX팬오션의 공개 매각을 추진하면서 숨겨왔던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후 핵심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은 물론 STX중공업과 STX엔진·㈜STX가 잇따라 채권단 자율 협약 체제로 전환됐고, 지난해 4월에는 STX건설이, 6월에는 STX팬오션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사실상 그룹 전체가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현재 강덕수 회장은 채권단에 의해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끌어내려진 상태다.

STX는 지난 11일 서충일 고문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면서 전임 강덕수 STX그룹 회장을 13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채권단의 압박 속에 지난해 7월에는 STX팬오션 대표에서 물러나야 했고, 9월에는 STX조선해양, 11월 STX중공업의 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

사실상 이날 이사회의 결정으로 강 회장은 모든 ㈜STX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이제 강 회장에게 남은 직함은 STX엔진 이사회 의장과 STX장학재단 이사장 등 두 개뿐이다.

남은 두 자리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사실상 검찰 조사가 본격화되면 그나마 이 자리도 내놓아야 할 처지다.

빛바랜 샐러리맨 신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강 회장의 성공신화도 빛을 잃게 됐다.

강 전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사원으로 입사 했고, 2001년 자신이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있던 쌍용중공업을 인수했다.

당시 외환위기의 여파로 외국 자본에 넘어갔던 쌍용중공업이 매물로 나오자 사재 20억 원을 털고 펀드를 끌어들여 STX그룹을 세운 것이다.

그는 이어 범양상선(현 STX팬오션)과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을 잇따라 사들이며 M&A를 통해 급속하게 외형을 키웠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STX를 재계 서열 13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룹 설립 첫해인 2001년 5000억원에도 못 미쳤던 매출은 2012년에는 18조8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2008년 전세계를 덮친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아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해운업이 위축되고 조선업까지 그 여파가 밀려오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강 회장이 성공신화를 다 쓰지 못한 채 퇴진하면 서 STX그룹의 해체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강 회장은 그동안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지원을 요청하러 은행과 여러 금융기관을 찾아 지원을 호소했고, 시가 100억원 상당의 서초동 아파트도 매물로 내놨다.

STX 한 관계자는 “자신이 일으킨 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강 회장이 많이 괴롭고 힘들어했다”면서 “회사를 살리려 마지막까지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STX의 재정 상태에 대한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많았다”면서 “강 전 회장은 ‘실패한 경영인’이 된 입장이라 경영에 관해 말하는 게 회사에도 누가 된다며 모두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앞으로 STX장학재단 등이 있는 서울 강남 도곡동 STX사옥으로 출근해 업무를 볼 예정이다.

STX 내부에서는 강 회장의 퇴진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새로 선임된 서 신임 대표 체제에 기대를 걸고 있다.

STX 관계자는 “서 신임 대표 체제를 갖추면 곧 새로운 목표와 운영방안 등을 발표할 것”이라면서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함께 일 해 왔던 분이어서 내부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종합상사로 거듭난 STX가 기존 STX팬오션이나 STX중공업 등 기존 거래선과 관계를 회복해 안정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STX 내부의 중론이다.

채권단 STX조선 1조8천억 추가 지원

강덕수 전 회장의 퇴임과 함께 채권단이 STX조선해양에 1조8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20일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은행들로부터 STX조선 경영정상화 방안에 대한 동의서 접수를 완료했다”며 “통과 기준인 ‘75% 동의’를 넘어 지원안이 가결됐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의 의결권 비율은 산업은행이 34.6%로 채권단에서 가장 많고 수출입은행 20.8%, 농협은행 17%, 우리은행 7.3% 등 순이다.
이번에 확정된 채권단의 경영정상화 방안에는 1조8000억원의 추가 자금 지원, 1조3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등을 포함하고 있다.

1조8000억원의 추가 지원은 당초 지원액인 2조 7000억원과는 별도여서 STX조선에 대한 채권단의 총 지원 규모는 4조5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추가지원에도 자본잠식 규모에 비춰보면 STX조선의 상장폐지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STX조선의 자본잠식 규모는 1조4000억원에 달한다. STX조선은 사업보고서 제출 시한인 오는 3월 말까지 상장폐지 사유인 완전자본잠식을 해결하지 못하면 상장이 폐지된다.

채권단은 추가 자금을 지원하는 만큼 대대적인 인력감축과 임금삭감, 원가구조 개선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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