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임·직원, 농·축협 조합장, 국회의원 동향파악 보고서 올리라 지시
노조, 농협중앙회 회장 불법사찰 혐의로 검찰에 고발
농협중앙회, 일상적인 업무 관련 보고일뿐 사생활 침해요소 전혀 없어
법률가 ”수집된 정보, 노조 탄압 등 위법 행위로 연결될 가능성 다분해“

사진=조윤화 기자
사진=조윤화 기자

농협중앙회가 지역본부 직원들과 농·축협 조합장, 심지어 국회의원들의 동향 파악을 조직적으로 해온 사실이 드러나 불법사찰 논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농협중앙회 측은 일상적인 현황파악일 뿐이라며 불법사찰은 아니라고 한사코 부인했지만, 당사자 모르게 관행적으로 정보수집을 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국협동조합노조는 29일 11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농협중앙회 불법 사찰 검찰 고발 및 엄정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을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임원, 정의당 농어민위원장, 민경신 전국협동조합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전국협동조합노조
사진=전국협동조합노조

협동조합노조에 따르면, 농협중앙회 인사 총무부는 지난 2월 16일 ‘인사 관련 당면현안 및 상황 보고 변경 실시 안내’라는 제하의 글을 각 지역본부 인사담당 책임자에게 발송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각 지역본부 인사담당 책임자에게 ▲지역 내 중앙회 및 계열사 직원의 사건·사고 등 인사정보 ▲소관 농·축협 조합장, 지자체장, 국회의원의 동향 ▲기타 지역본부장의 농정활동을 통해 수집된 주요 이슈사항 등을 매일 오전 11시까지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밖에 농협중앙회는 보고할만한 내용이 없는 경우라도 ‘해당 사항 없음’으로 회신하기를 주문했으며, ‘각종 상황 발생 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계통보고에 철저를 기해 주길 바란다’고 해당 문서에 적시했다.

◆ 협동조합노조,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 즉각 사퇴 요구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언자로 나선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은 “농협중앙회는 불법사찰이 아니라고 하지만 업무지시형태로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11시에 직원들의 동향을 보고하라고 했다”라며 “이것은 분명한 업무지시이고 농협직원이 안 해야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동조합노조에 의하면 농협중앙회의 임직원 동향파악은 기존에 계속된 관행이었다고 한다. 민 위원장은 “그간 지역본부에 지역조합장들을 전담하는 직원들을 하나씩 둬 이들의 경조사를 다 챙겼다”라며 “혹여 직원이 빠뜨리는 보고가 있으면 크게 혼났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행위의 배경에는 표심을 잡기 위한 농협중앙회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게 민 위원장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농협중앙회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해야 할 고유의 일이 있다”라며 “그 고유의 일이 아닌, 직원이 업무로 사찰하는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자 부당한 업무 지시”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 정의당 “국정원도 금지돼있는 사찰을 농협중앙회가 했다면 이는 처벌받아야 마땅해...”

같은날 기자회견에서 박인숙 정의당 부대표는 “농협중앙회는 동향파악을 통해 사적인 네트워킹을 추구할 게 아니라 농촌의 문제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 현재 국정원도 사찰이 금지되어있는 이 마당에 농협중앙회가 광범위한 조직을 활용해 동향파악을 하고 이를 사적으로 활용했다면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협동조합노조는 검·경찰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철저한 수사, 이제껏 보고받은 동향파악 전체 내용 공개, 이성희 회장의 즉각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농협중앙회 “문제 될 내용 보고받은 바 전혀 없지만, 원문 공개는 불가”

농협중앙회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불법사찰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사찰이라는 단어 자체가 맞지 않다고 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농협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임·직원 및 관계부처 사무부장 등에 관한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 “인사총무부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집한 정보라는 게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정보가 아닌 농협과 관계된 공식행사나 코로나 감염현황 등에 대한 정보”라며 “노조 측에서 우려하고 있는 개인의 노조가입 여부나 정당가입 여부는 전혀 보고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보고된 정보 가운데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노조측 요구대로 보고서 원문 전체를 공개할 생각은 없는가”에 대한 본지 기자의 질문에 농협중앙회 측은 “공개할 보고서가 없다”라고 짧게 답변했다.

◆ 법률가, “농협중앙회, 동향 파악 권한 자체 없어”

불법행위가 전혀 아니라는 농협중앙회 입장과 달리 법률 전문가는 농협중앙회 측의 동향파악 행위가 위법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대표변호사는 “농협중앙회의 경우 정보기관과 달리 주요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권한 자체가 부여돼 있지 않다”라며 “동향 수집 등을 지시받은 담당자의 입장에서 어떤 성격의 정보를 수집하라는 것인지 해당 문서에 명시돼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협중앙회가 매일 오전 11시까지 의무적으로 동향 정보를 수집 및 보고하도록 한 사실에 대해, 정 변호사는 “수집하는 정보의 성격이나 방식 등과 관련해 불법적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수집된 정보가 불법적인 로비나 노조 탄압 등 더욱 위법 행위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법적인 처분에 관해선 “조합장, 국회의원 등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해 손해배상책임 등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그와 같은 지시를 한 책임자에게는 그러한 지시를 받은 담당자에 대한 강요, 업무방해 등 형사 책임이 성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편, 농협중앙회의 동향파악을 불법사찰로 규정하긴 아직 이르다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재교 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사찰과 정보수집은 그 구분이 어렵다”라며 “관건은 권력기관인지 아닌지, 정보수집의 방법이 그 권력을 이용한 것인지 아닌지에 있다고 본다”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농협중앙회가 권력기관이라 보기는 어렵고, 정보수집 지시가 그 지시를 받은 직원의 업무에 속하되 그 수집 방법이 불법이 아니라면 불법사찰이라 볼 수 없을 것”이라 밝혔다.

이규철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어떤 기관이든 자체적으로 이슈가 있을 때 정보를 빨리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모든 정보수집을 불법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라며 "정보 수집 방법과 그 목적을 잘 따져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농협중앙회가 정보 수집 과정에서 위법성 논란이 불거진 만큼 "농협중앙회가 동향파악 지시를 내린 배경과 정말로 민감한 정보가 보고된 바가 없는지에 대해선 소명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조윤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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