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보험 ‘출혈 경쟁’, 손해율 상승 등 수익성 악화…“경쟁자는 빅테크”
“‘출혈 경쟁 지양’ 공감대…과거처럼 과열되지는 않을 것”

최영무 삼성화재 사장. 사진=삼성화재
최영무 삼성화재 사장. 사진=삼성화재

삼성화재가 올해 장기보험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설정하면서 손해보험(이하 손보)업계의 장기보험 출혈 경쟁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삼성화재의 영업 전략 변화는 보험환경 변화 속에서 과도한 경쟁보다 ‘업의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손보사들은 시장 포화와 자동차‧실손의료보험 손해율 악화 속에서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한 장기보험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덕분에 장기보험 매출은 증가했지만, 사업비와 해약환급금 증가 등으로 손해율이 상승해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반면, 장기보험 경쟁을 주도했던 메리츠화재는 올해 ‘장기인보험 시장점유율 1위’를 목표로 내걸며 장기보험 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을 예고했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4분기 장기인보험 매출에서 삼성화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영무 삼성화재 사장 “장기보험, 수익성 강화 집중”

5일 업계에 따르면 최영무 삼성화재 사장은 올해 장기보험 수익성 강화를 주문하면서 장기보험 매출 목표 하향 조정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최근 직원 조회나 임원회의 등을 통해 올해 장기보험에서의 수익성 중심 매출 확대와 종목별 균형 성장에 집중할 뜻을 밝혔다. 업계 내 장기보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 분야 업계 1위인 삼성화재가 매출 목표를 낮춘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장기보험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을 보장하는 인보험 ▲재산이나 물건에 대한 위험을 보장하는 물보험 ▲저축성보험으로 나뉜다. 이중 인보험은 장기보험 매출의 60~70%를 차지한다. 장기보험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업계 내 경쟁은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이 악화하고, 시장 포화 등 보험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장기간 보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장기보험이 새로운 수익원을 부상했기 때문이다.

장기보험을 둘러싼 업계 내 경쟁은 2017년 메리츠화재가 높은 수수료 등 강력한 시책을 앞세우며 장기보험 영업 드라이브를 걸면서 시작됐다. 이에 다른 보험사들도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해 시책과 수수료 등을 늘리면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장기보험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악화했다.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보‧KB손보 등 ‘빅4’의 작년 3분기 기준 장기보험 손해율은 평균 92.1%로, 2018년 말 85.6%보다 6.5%p 상승했다. 삼성화재만 해도 장기보험 손해율이 2018년 79.0%에서 2020년 3분기 85.8%로 6.8%p 올랐고, 메리츠화재 역시 83.2%에서 91.2%로 8%p 상승했다.

결국 최 사장은 빅테크가 보험업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자동차보험‧실손의료보험 손해율 증가로 인한 적자폭 확대와 시장 포화, 저금리 상황에서 오히려 수익성을 해치는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기보험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보험종목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부분도 문제라고 본 것이다. 그는 “빅테크의 상품 공급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업계 내 과도한 점유율 경쟁은 의미가 없다”며 “장기보험은 일시적 역성장이 있더라도 시장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삼성화재는 올해 장기보험에서 효율성을 중심으로 수익성과 유지율이 높은 신계약 확보와 보장보험료 중심의 질적 성장에 주력하고, 기존 계약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등 내실 다지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디지털화를 통한 비용 절감, 해외사업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힘쓸 방침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는 외형적 성장보다 내실 성장을 해보자는 것”이라며 “디지털 전환을 통한 사업비 효율화나 해외사업 등을 통해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장기보험 ‘출혈 경쟁’ 진정될까?

삼성화재가 장기보험에서의 과도한 경쟁에 나서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움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업계의 장기보험 출혈 경쟁의 진정 여부에 관심이 높다. 관련해서 지난해 장기보험 경쟁보다 언더라이팅 강화 등 손해율 관리에 집중했던 메리츠화재는 올해 다시 장기보험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은 올해 CEO 메시지를 통해 ‘인보험 시장점유율 20%, 1위’를 목표로 설정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손보사 CEO들이 장기보험에 대한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기로 했고, 삼성화재가 한 발 물러선 만큼 과거처럼 경쟁이 과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화재가 장기보험 외형 경쟁보다 내실 다지기에 방점을 찍은 만큼 예전처럼 출혈 경쟁까지 감수하는 양상으로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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