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게임업계 향한 게이머들 불신·분노
무너진 상호신뢰, ‘트럭 시위’로 표출돼
K-GAMES ‘자충수’에 게임업계 요동
게이머·국회·학회 vs 게임업계 구도 형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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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이 들어간 아이템의 모든 확률을 공개하라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트럭에 담겨 게임사 앞을 맴돌고 있고, 오랜 준비 끝에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도 소관위원회에 접수된 상태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균열이 시작된 소비자-회사 간 상호신뢰는 이미 무너져 버렸고, 전부개정안에 관한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의 의견서가 논란이 되면서 업계를 향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 K-GAMES “확률정보는 영업비밀”

K-GAMES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하 개정안)이 “게임산업 진흥보다는 규제 쪽으로 무게가 쏠렸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의원실에 지난 15일 제출했다. 법률이 발의되고 통과되기 전에 관련 업계의 의견을 듣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고, 관련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협회가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도 평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의견서 내용이 문제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초부터 게임업계는 그동안 소비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운영을 해왔다고 분노한 게이머들이 자발적 모금을 통해 트럭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업계 ‘빅3’로 불리는 3N이 주 타깃이었다. 물론 3N뿐 아니라 여러 게임사에도 트럭이 향했다.

소비자들은 “소통하라”고 게임사에 요구하는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정보를 게임사가 공개하지 않는 불공정거래를 일삼았다고 입을 모았다. 게임업계의 트라우마로 남는 ‘바다이야기’ 사태까지 거론됐다.

“월급도 랜덤으로 받아라”는 말은 더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악에 받친 원성이 된 지 오래다. 게임별로 소비자들이 게임사에 해명을 요구하는 부분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내 돈을 주고 상품을 구매하는 데 정확한 정보를 모른다는 점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K-GAMES는 이런 상황에서도 의견서를 통해 확률정보는 영업비밀이라고 게임법 개정안을 우려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게임법 개정안은 제2조 13호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게임 이용자가 직·간접적으로 유상으로 구매한 아이템뿐 아니라 유상+무상 결합의 형태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을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K-GAMES 측은 ‘간접적으로 유상 구매’나 ‘유상+무상 결합’이 어떤 경우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게임 내 수백개의 아이템이 게임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 개수 등 밸런스 조절을 위해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확률형 아이템 종류 및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은 “영업비밀이라는 재산권을 제한한다”고 입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해외 게임에서는 ‘변동 확률’ 구조를 가진 게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사들은 K-GAMES의 의견서 제출에 관해 별도의 입장을 내진 않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화난 소비자들이 “게임 좀 똑바로 운영하라”며 트럭을 보내 시위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총대를 협회가 메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K-GAMES는 “급변하는 게임 환경 변화에 발맞춰 현실에 부합하는 법 개정안을 기대했으나 내용을 보면 업계 전문가 등 현장 의견 반영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산업 진흥보다는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항이 다수 추가돼 국내 게임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 ‘폭리소매(暴利小賣)’ 모바일게임 시장

이런 상황은 모바일게임의 특수한 수익구조에서 나온다. 모바일게임은 게임마다 다른 재미 요소를 담은 탓에 자신이 하는 게임이 아닌 다른 게임의 상품 패키지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렴한 패키지를 여러개 판매하는 경우는 있어도, 같은 품질의 다른 게임이라는 것은 없는 셈이다. 지금 하는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하는 게임에서 판매 중인 상품을 사야 한다.

여기에 치밀하게 구성된 레벨 설계, 다른 사람과 대결하는 PVP 요소를 통한 경쟁심 자극이 더해지면 남들보다 빨리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돈을 쓰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개념의 패키지 상품이라면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얻기 위해 드는 시간이 대폭 줄게 되고, 캐릭터나 장비를 뽑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면 소위 ‘서버 지존’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캐주얼게임보다 코어 장르에 속하는 RPG류 게임의 매출이 월등히 높은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앱애니의 모바일 현황 2021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게임 장르 다운로드 비중에서 코어 장르는 20%로 캐주얼 장르 78%의 ¼수준에 불과하지만, 지출은 캐주얼 23%의 3배가량인 66%에 달한다. 모바일 앱 순위 분석 사이트 게볼루션의 모바일게임 종합순위에 의하면 국내 1위부터 10위까지 게임은 모두 RPG·전략 등 코어 장르다.

더 적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쓰는 구조다. 게임 안에서도 형태는 비슷하다. 일종의 폭리소매로,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2016년 구글플레이 카테고리 총결산에 따르면 연간 100만원 이상 결제하는 고과금 이용자 비율은 전체 이용자의 0.1%였지만 매출 기여도는 58%이상으로 나타났다. 국산 게임의 수익구조에 큰 변화가 없던 만큼 소수 유저에게 매출 대다수를 의존하는 형태는 유지 중일 것으로 보인다.

속칭 ‘랜덤박스’ 또는 ‘가챠’라고 불리는 현금을 내고 구매한 유료 재화로 뽑는 확률형 아이템은 초기 도입 이후 수익모델(BM) 고도화 과정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무료로 얻은 재화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자에서 낮은 확률로 재료아이템을 얻고,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낮은 확률로 나오는 재료아이템과 결합하면 좋은 장비가 되는 식이다.

또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마련한 장비에 유료로 구매한 아이템을 이용해 랜덤 확률로 추가 옵션을 부여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옵션을 얻을 확률이 낮아 좋은 옵션이 주렁주렁 달린 장비를 끼고 있으면 운영자가 권한을 남용한 것 아니냐는 ‘슈퍼계정’ 논란이 생기기도 하고, 실제로 슈퍼계정인 것이 드러난 일들도 있었다. K-GAMES에서 반발하고 있는 게임법 개정안에는 유료 재화로 구매하는 단순 확률형 아이템뿐 아니라 이러한 유료+무료 결합 방식에 ‘우연적 요소’가 들어간 것도 확률형 아이템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K-GAMES의 의견서가 ‘자충수’라는 지적이 많다. K-GAMES가 확률정보를 영업비밀이라고 본 것을 여론은 이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자율규제에 따라 유료 확률형 아이템 확률은 공개됐으니 K-GAMES의 ‘영업비밀’은 ‘이중가챠’ 논란이 있는 유료+무료 형태를 보호해야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게임사가 공개한 확률에 대한 신뢰도도 매우 낮다. 한국게임학회에서는 2016년 ‘데스티니 차일드’ 확률 조작 논란을 예로 들며 한 유저가 3600만원을 들여 실제 획득 확률이 개발사가 제시한 확률 1.44%의 절반 수준인 0.7%라는 것을 밝혀냈고, 개발사 대표가 오류를 인정하고 환불을 약속하는 사태로 번지는 등 확률 정보에 대한 이용자 불신이 심화 중이라고 지적했다.

◆ 규제 요구하는 소비자, 업계 비판하는 국회·학회

폭리소매가 주를 이루는 모바일게임이 전체 게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고,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한 BM은 게임사들의 주 수익원이 됐다. 게임법 개정안에 K-GAMES가 반발하고 있지만, 실제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모바일게임 하나에서 수천억원의 매출이 나오는 시대다. 이용자당 월평균 매출액이 높지 않음에도 수천억원의 매출이 나오는 것은 소수의 ‘고래’에 의존한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게임사 대부분의 수익구조가 비슷한 형식이다.

소수 ‘고래’에게서 더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BM은 더 치밀해졌다. 전에 나온 것보다 더 성능이 좋은 것이 꾸준히, 더 얻기 어렵게 나온다. 이렇다 보니 이미 소비자들의 과금 피로도는 한계치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이 보상 대신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는 게임업계의 반성을 요구하며 “보상은 필요 없다.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라고 울분을 토했던 것은 해를 거듭하며 적대감의 깊이를 더했다. 개별 게임에 붙던 ‘유저 적대적 운영’이라는 꼬리표는 업계 전반으로 확대돼 ‘소비자 적대적 업계’라는 오명으로 변하기 직전이다.

이용자(소비자)는 수년에 걸쳐 국내 게임사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고, 올해부터는 관련 게임 커뮤니티에서 항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청원을 올리고 국회의원들에 의견서도 내고 있다. 결국 이번 게임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게임업계와 소비자, 국회의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셧다운제와 4대 중독법 등 게임 규제라면 반발해왔던 게이머들이 이제는 국회에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의무 법제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게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그동안 K-GAMES와 게임업계에 수차례에 걸친 자정 기회가 있었지만, 이용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봤다.

이상헌 의원은 K-GAMES 의견서에 관한 입장문을 통해 “2019년과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논란 당시 협회는 ‘게임은 문화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등재 반대 운동을 펼친 바 있다. 묘한 점은 국내 게임 이용자들은 질병코드 등재는 적극 반대하면서 협회 캠페인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냈다는 점”이라며 “K-BM의 높은 사행성과 ‘게임은 문화다’ 캠페인 취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또 이 의원은 “협회의 주장대로 자율규제 준수율이 80~90%에 달한다면 전부개정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미 자율규제로 공개하고 있는 획득 확률을 명문화하자는 것”이라며 “하물며 확률 공개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알 권리다. 하다못해 강원랜드 슬롯머신도 당첨 확률과 환급율을 공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셧다운제나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앞장서 반대해 온 한국게임학회도 이번 논란에서 이용자 편에 섰다. 학회 측은 자율규제를 시행할 때 왜 영업비밀을 자발적으로 공개했는지, 변동하는 확률을 개발자와 사업자도 모른다면 지금까지 게임사가 공개한 것은 거짓정보인가 되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 게임법 개정안 처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주도적 역할을 촉구했다. 과거 셧다운제, 4대 중독법 대응에서 타 부처, 타 상임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실책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최근 게임 이용자들의 트럭 시위 등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반발과 항의가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소위 ‘IP 우려먹기’와 결합해 게임산업의 보수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 반발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게 되고, 게임 BM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들어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확률 공개 법제화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하나의 조치에 불과하다”며 “2011년 게임 셧다운제 강제 입법, 게임을 마약과 동일시한 2012년 4대 중독법 논란, WHO 게임질병코드 지정 등 게임업계가 대응에 실패한 전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법안 심사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진행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 같은 경우 청소년 등 사행성을 조장해 재산상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에는 많은 분이 공감할 것이다. 한편으로 현장에서는 소비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자칫 과도하면 산업의 발전·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외국계 게임업체에 대해 규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 법률 심의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승수 의원은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이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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