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사진=변인호 기자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사진=변인호 기자

“게임사들이 공격적으로 신규 IP를 개발하지 않고 글로벌 진출에 관한 소극적 자세, 시장을 포기한 듯한 자세를 계속 보인다면 10년 뒤 한국 게임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28일 서울 강남구 백암빌딩에서 한국게임학회가 개최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뿐 아니라 한국 게임 업계를 향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현재 한국 게임 업계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업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먼저 판호 문제가 여전히 해결된 것이 없다. 지난해 말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이하 서머너즈워)’가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이후 처음으로 중국 외자판호를 발급받았지만, 추가 발급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서머너즈워’ 판호 발급은 전례 없는 민관의 협력과 노력에 의한 결과였고, 특히 문체부와 외교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달 문체부와 외교부의 장관이 동시 교체된다. 인사청문회는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두 부처의 장관이 동시에 교체되면서 판호 관련 정책일관성 유지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히 위정현 학회장은 새로 장관이 임명되면 일선 실무진까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서머너즈워’ 판호 발급 때까지 문체부와 외교부의 일관된 정책 진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판호는 불공정무역의 증거고, 미국‧일본‧유럽의 게임이 30여개씩 판호를 받을 때 우리나라는 사드 배치 이후 ‘서머너즈워’ 단 하나에만 판호가 나왔기 때문에, 수치를 근거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추가 발급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중국은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철저하게 실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는 1년에만 중국게임 수십, 수백개가 들어왔는데 한국게임은 1개 진출했다는 이런 무역 격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누가 공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올해는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리하고, 코로나19 사태 때 국민적 비난에도 우리 정부는 중국 하늘길을 막지 않았다. 중국은 우리를 외교적으로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며 “신임 장관은 시진핑 주석이 한국에 오더라도 한한령을 철폐할 때 우선순위 리스트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지난 외교부(강경화 장관)에서 판호는 꽤 우선순위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신임 문체부 장관과 신임 외교부 장관의 행보에 따라 세계에서 손꼽히게 거대한 시장인 중국 시장의 개방이 달렸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위정현 학회장은 판호 문제는 민관의 지속적인 압력과 정부 차원의 일사불란한 공동대응 노력이라고 계속 강조하면서, 필요하다면 장관 면담 등을 통해 게임 산업의 중요성을 전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중국게임에 대한 심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중국게임에서 선정적인 광고나 게이머에 대한 미흡한 서비스 등 문제가 많은데, 게임위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게임 업계는 ‘게임질병코드’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자 ‘따로 집에서 같이 게임하자’는 ‘플레이어파트투게더(#PlayApartTogether)’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게임사들이 게임에 대한 인식을 대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위정현 학회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비대면 산업으로 주목받아 게임 산업이 성장한 것은 우리 게임 산업 내적으로 만들어진 동력에 의한 것이 아닌, 우연에 의한 외적 요인이었고, 코로나19 사태 최대 수혜 산업이 게임 산업이지만 메이저 게임사들이 국민적 고통에 동참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게임학회는 지난해 4월 2일 정부와 게임 업계에 WHO의 플레이어파트투게더 캠페인 적극 동참을 촉구했지만, 동참 노력이 미미했다는 것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WHO 캠페인은 WHO가 게임을 부정했다가 게임을 통해 코로나19를 극복하자는 모습을 보인 게임질병코드의 정당성을 뒤흔들 절호의 기회였다”며 “게임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강화할 기회였지만 게임사들의 참여와 노력이 부족했고,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그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로 WHO의 신뢰가 하락하고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됐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정현 학회장에 따르면 의사집단은 우리 정부의 자금으로 논문 등 데이터를 생산했고, 이를 통해 일본이 움직여 WHO 게임질병코드가 등재됐다. 하지만 학계, 산업계뿐 아니라 주무부처인 문체부까지 단호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게임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논의가 총리실 산하 민관협의체에서 이뤄지고 있다.

위정현 학회장은 “보건복지부나 의사단체는 WHO 게임질병코드 등재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도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하니까 격분했다. 그걸 뒤집으면 그만큼 우리 정부와 문체부가 대응을 잘했던 것이다. 셧다운제 당시에는 완패였다”며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정말 좋아졌는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데이터를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겠다. 2년 전 물러설 수 없다는 그 결연한 의지가 오늘날까지 질병코드 도입을 막은 하나의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WHO 게임질병코드 국내 도입 저지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양우 장관은 2005년 문화관광부에 게임산업과가 신설될 당시 문화산업국장에 임명됐고, 이후 차관을 역임하며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힘써온 대표적인 친게임 인사로 꼽힌다. 2009년에는 고사하긴 했지만, 한국게임산업협회가 4기 회장으로 추대한 바 있다. 하지만 황희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의원 당시 국토교통위원회와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한 도시공학 전문가여서 판호, 게임질병코드에 대한 문체부의 대응이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가 많다.

이어 위정현 학회장은 코로나19가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이 커 게임 업계는 코로나19에 대한 국민적 고통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신속히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순히 PC방 혜택을 모든 이용자를 대상으로 확대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격교육에서 문제가 되는 정보격차, 학력 격차 등의 문제를 게임 업계의 적극적 공헌으로 완화할 수 있다면 국민적인 지지 기반 강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위정현 학회장은 주요 게임사들의 공격적인 신규 IP 개발 및 글로벌 진출 등 산업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도 촉구했다. 위정현 학회장은 “최근 메이저 게임사의 다각화를 보면 게임에 대한 공격적 개발이나 글로벌 진출보다는 유행처럼 엔터테인먼트나 K-팝 진출, 부동산 매입 등을보인다”며 “과거 재벌기업에서 보인 문어발식 확장과 유사한 양태가 IT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게임사에서 나타나고 있고, 이런 모습이 게임이라는 산업의 성장성에 관해 ‘게임 산업으로부터의 대탈주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정현 학회장에 따르면 최근 2~3년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게임의 비약적 약진이 확인됐고, 한국게임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메이저 게임사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신규 IP 개발이나 공격적인 글로벌 진출 대신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게임사들이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전통적 제조업보다 더 보수적이고 현상 유지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인다. IT기업이자 게임기업이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라며 “이런 모습은 90년대 후반 일본 콘솔산업 보수화와 유사하다. 일본 콘솔산업이 보수화되며 2000년대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을 우리나라가 거의 완벽하게 지배했지만, 모바일게임 시장이 형성될 때 시장 진입이 늦으며 밀려난 뒤 다시 진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게임 업계는 공격적인 모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만약 현재처럼 공격적으로 IP를 개발하지 않고, 글로벌 진출에 소극적인 자세, 시장을 포기한 듯한 자세를 계속 보인다면 10년 뒤 한국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국내 게임 업계가 과거의 영광을 망각하고 관료화되는 측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국내 게임 업계에서는 넷마블 ‘페이트 그랜드오더’를 시작으로 엔씨소프트 ‘프로야구H2’, 넥슨 ‘마비노기’, ‘바람의나라: 연’, 그라비티 ‘라그나로크: 오리진’ 등 많은 게임에서 게임사에 트럭을 보내 그동안 방치하거나 무시했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

트럭 시위에 관해 위정현 학회장은 “메이저 게임사들이 대기업화되면서 관료화돼 게이머들의 서비스 요구는 올라갔지만 서비스 품질은 떨어졌다. 게이머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향유하면서 불이익을 받을 때 인내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트럭 시위는 대단히 온순하고 부드러운 의사 표현 방식이고, 트럭을 세워 시위할 정도면 게임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불만을 수용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게임사가 진정으로 소통하려 하는지, 관료적으로 귀찮다고 생각하고 빨리 끝내야 한다고, 불평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거대기업 텐센트의 한국 게임사 인수에 관한 논평도 있었다. 위정현 학회장은 2019년 김정주 NXC 회장의 넥슨 매각 시도 당시 중국 기업에 메이저 게임사를 매각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텐센트의 국내 게임사 인수 기대감에 게임주가 요동친 것.

위정현 학회장은 “텐센트는 넥슨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가 키워준 기업이다. 한국게임으로 성장한 기업이 한국게임사를 사겠다는 루머에 한국이 기대감으로 들뜨는 것을 보면 심한 자괴감과 절망감을 느낀다”며 “한국의 주력 게임사들이 과거 중국 시장을, 전 세계를 석권했던 그런 과거를 다 잊은 것인가. 한국이 키워낸 중국 기업 텐센트가 한국기업을 사면 고마워해야 하고 영광인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탄식했다.

또 “3N 같은 주력 게임사들이 텐센트에 흡수되는 것은 한국의 산업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텐센트의 한국 메이저 게임사 인수를 단호하게 반대한다”며 “인수를 기대하는 것에 앞서 자존심이 있다면 ‘텐센트에 맞서서 자신들의 역량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하는 것이 ‘텐센트가 기업을 사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뜨는 것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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