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변인호 기자
사진=변인호 기자

라이브 서비스가 이뤄지는 게임들은 항상 ‘운영’ 문제를 겪는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다른 게임사가 운영하는 다른 게임에서 고질적으로 터지는 ‘운영 이슈’다. 게임사는 기획자가 설계하고, 디자이너가 꾸미고, 개발자가 만든 게임을 ‘게이머’로 불리는 소비자에게 판매하거나, 서비스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망각하면서 각종 오명을 뒤집어쓰는 형국이다.

‘내수차별’은 소비자들이 흔히 마주하는 일 중 하나다. 스마트폰도, 자동차도, 가전제품도 내수용 제품과 수출용 제품의 상세정보를 비교하며 해외직구를 하기 시작한 지도 꽤 흘렀다. 게임 분야도 해외 서비스와 국내 서비스의 현황이 비교될 것은 자명한 일이고,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항의하기 마련이다. 가장 최근에 운영 문제가 불거진 게임도 게임사가 하던 대로만 했으면 사옥 앞에 날카로운 말이 담긴 트럭이 순회공연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게임업계는 자꾸 ‘실적’을 더 위에 놓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미보다는 상품성에 좀 더 집중한다. 모바일게임이 흥행하며 시장이 재편된 뒤로는 더 심해졌다. 월정액 방식으로 게임을 서비스할 때는 유저 수, 동시 접속자 수가 지금보다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큰손’들을 붙잡을 수 있으면 매출 순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큰손’도 게이머라는 점이다. 그냥 게임에 쓸 돈이 조금 더 있을 뿐이지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는 것은 무·소과금 게이머와 같다. 어떤 게임사의 과금 피로도가 높은 온갖 확률형 아이템 수익모델을 전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부자라고 해도, 어디 자랑할 곳도 없고 상대해줄 사람도 없다면 재미를 느낄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냥 싱글플레이 게임에서 치트키를 쓰고 인공지능을 학살하다 흥미가 떨어져 게임을 삭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것들이 게임에 돈을 거의 쓰지 않는 무·소과금 유저들이 온라인 게임 생태계에 필수적인 이유다. 게임사에서 운영 이슈가 터졌을 때 무·소과금 유저들뿐 아니라 수천만원에서 억대 과금을 한 사람들까지 뜻을 모으는 것은 모두 게이머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온라인으로 서비스되는 게임은 그동안 자신이 플레이하며 축적한 결과물을 다 분해해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갈갈쇼’까지 빈번하게 보인다.

확률형 아이템이 들어간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은 스스로를 ‘개돼지’, ‘흑우(호갱이 변형된 말)’라고 부르고, 게임을 그만둘 땐 ‘지능이 상승했다’고 표현한다. 패키지게임을 하는 게이머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게임사가 각종 마케팅과 프로모션으로 기대감을 한껏 높여놔 십수만원대 한정판 패키지를 예약구매하고 정작 게임이 출시된 뒤에 보고 실망하면서 ‘흑우’로 자신을 지칭하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계속해서 자기가 좋아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애정을 갖고 시간을 들여왔다. 누가 어떤 게임을 하는지는 순전히 취향 문제다. 게이머들은, 특히 한국 게이머들은 애정결핍 증세를 자주 보인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모두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에 시달려왔다.

매번 운영 이슈가 불거졌을 때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은 소통이었다. 게임사의 일방적 통보가 아닌, 사과를 원하고 사건의 경위와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사안의 경중에 따른 게임사의 피드백을 원한다. 게임을 운영할 권한을 얻었다고 가상세계의 ‘신’이 된 것처럼 착각한 운영자의 비리가 발견된 게임들도, 게임사가 ‘유저 적대적 운영’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게임들도, 크고 작은 사소한 이슈들이 터진 많은 게임에서도 게이머들은 소통을 원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게이머들이 마주한 이런 이슈가 어떤 정도의 문제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게임업계 출신 게임 유튜버 김성회씨는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오더(이하 페그오)’ 사태에 관한 영상에서 “게임에 억대 과금한 유저도 접는다고 인증하는데, 백화점은 1년에 몇백만원만 써도 VIP를 달아준다. VVIP한테는 P-DAY라고 휴무일에 따로 문을 열어주기까지 한다”며 “그런 우수고객이 그동안 샀던 명품을 불태우고 몇억짜리 자동차를 분을 못 이겨 자기 손으로 박살 내는 정도의 심각한 사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논리에 따라 돈을 내고 서비스를 영위할 소비자가 판매자에 분노해 트럭을 보내고,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논스톱 간담회에서 그동안 쌓여온 울분을 토해내고,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공식 커뮤니티에서 ‘●▅▇█▇▆▅▄▇’ 같은 이모티콘으로 드러눕는데도 게임사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게임사에게는 ‘유저간담회’가 주로 몹시 화가 난 게이머들의 불만을 듣고 해결책을 약속하는 비장의 수단 중 하나다. 게임사들은 단순히 유저간담회를 진행한다고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쉽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한번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게이머가 스스로 자조한다고 게임사가 고객이자 소비자인 게이머를 얕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고객들이 자조적으로 자신을 ‘개돼지’, ‘흑우’라고 부른다고 해도 기업이 고객을 정말 개돼지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상식이다.

운영 이슈가 터진 게임들은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운영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아이템을 찍어내고, ‘슈퍼계정’으로 일반 고객들과 같은 서버에서 놀았던 것이 걸린 게 아니라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경우라면, 고객들은 오래전부터 건의하고, 문의하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지만 게임사가 미온적 대응을 반복했다. 재밌으려고 하는 게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고객이 ‘이런 데다가 돈을 쓴 내가 바보지’ 하면서 혼자 그만뒀다면 이건 게임 콘텐츠의 문제다. 단체로 들고 일어나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건 게임사가 ‘선’을 넘은 것이다.

한두 번 반복된 문제도 아니다. 글로벌에 자사 게임을 출시한 한국 게임사에게 매번 발생하는 ‘한국 서버 홀대 논란’, 확률형 아이템으로 누적된 과금 피로도는 한국 게임업계와 한국 게이머 사이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게이머들의 분노는 서로 다른 게임에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 보상은 받지 않아도 된다.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온다.

돈이 아니라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는 요구를 게임사가 아직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게이머가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류를 이루는 의견들이 그랬다. 게이머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기꺼이 돈을 내겠다는 것도 보여줬다. 라인게임즈가 지난해 출시한 PS4·닌텐도 스위치용 콘솔게임 ‘베리드 스타즈’는 예약판매가 순식간에 매진됐고, 오프라인 게임샵에서도 빠르게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페그오’ 사태는 월초부터 아직까지 현재 진형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저간담회를 열겠다며 수차례에 걸친 사과문과 공지사항 안내에도 게이머들은 ▲투명한 재발 방지 대책 공개 ▲사건의 원인 소명 ▲간담회에서 약속한 내용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어찌저찌 넷마블에서 2월 6일로 간담회 날짜를 제안했고, 유저들은 탐탁치 않아하면서도 일단 받아들였다.

게이머 측에서는 ‘페그오’ 관련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투표로 뽑힌 ‘총대’들이 참석하고, 넷마블에서는 백영훈 부사장, 한지훈 사업본부장, 박현준 사업부장, 담당PM까지 총 4명이 나오기로 했다. 넷마블은 이미 순서대로 박영재 전 본부장, 권영식 사업총괄 대표, 한지훈 본부장까지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여전히 트럭이 사옥을 돌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게이머들은 게임사가 소통하길 원한다. 자신들은 돈을 내는 소비자고 고객이다. 게이머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는 호소를 수년 전부터 계속해왔다. 게임을 1020세대에서 많이 즐긴다고 게이머들은 다 ‘어린 친구들’이 아니다. 자신의 취미생활에 수억원까지 소비하는 사람도 있다. 게임이 코로나19를 만나 비대면 시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놀이문화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면, 게임사들도 달라져야만 하는 시기다. 고객과 척진 서비스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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