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게임, ‘소녀전선’ 전후로 게임성 승부 나섰다
미호요 ‘원신’, 짝퉁 논란에도 글로벌 흥행 성공
中게임사, 겉보기론 구분 어려워…막장운영 우려
中 판호 악용해 韓게임 수출 막고 불공정무역
모바일게임 위주 韓게임, 여전히 경쟁우위 있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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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더이상 게임산업에서 큰 시장 역할만 하지 않는다. 한국, 일본, 북미·유럽의 명작 게임들을 경험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개발사의 국적을 가리면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게임인지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개발력이 늘었다. 물론 이면에는 판호 발급제도를 악용한 불공정무역이 숨어있지만, 중국 시장은 이제 한국 게임이 진출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거대기업 중 하나인 텐센트가 지난해 전체 매출의 ⅓가량을 게임 분야에서 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앱애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매출 1위는 텐센트 ‘왕자영요’였고, 월간활성이용자수 1위는 크래프톤 펍지스튜디오의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하 배그 모바일)’로 집계됐다. 텐센트는 중국 내 ‘배그 모바일’도 퍼블리싱한다.

이외에도 지난해 9월 28일 중국 게임사 미호요가 출시한 멀티플랫폼 게임 ‘원신’이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원신은 개발사에서 공식적으로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하 젤다 야숨)’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힐 만큼 오픈월드 시스템, 카툰풍 그래픽, 상호작용 방식 등 젤다 야숨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로만 할 수 있는 젤다 야숨과 달리 원신은 모바일, PC, PS4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매출도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이 도입돼 성과가 상당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가 지난해 9월 28일부터 11월 28일 사이 가장 높은 수익을 낸 게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신은 3억9300만달러(한화 약 4317억원)을 달성해 왕자영요(약 5129억원)와 배그 모바일(약 4217억원) 사이에 이름을 올렸다.

원신은 중국 게임사의 개발력과 게임성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물론 국내에서 여전히 중국게임은 ‘왕이되는자’처럼 게임 내용과 무관한 선정적 광고로 빈축을 사거나 막장 운영에 이은 ‘먹튀’ 논란까지 발생한 ‘샤이닝니키’처럼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겉보기로는 구분이 어려울 정도까지 왔다.

이런 현상은 2017년 6월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X.D.글로벌의 ‘소녀전선’ 출시 이후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많다. 소녀전선은 소위 ‘오타쿠’ 게이머들을 타깃으로 하는 ‘2차원게임’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카카오게임즈가 2차원게임 열풍을 예상하고 2017년 8월 중국 넷이즈가 개발한 ‘음양사’를 퍼블리싱한 바 있다. 소녀전선은 한 때 국내 애플 앱스토어에서 ‘리니지M’을 제치고 매출 1위를 달성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물론 중국이 게임유통허가증 역할을 하는 ‘판호’ 제도를 악용해 한국게임의 수출은 막으면서 국내 시장에 중국게임은 진출하는 불공정무역을 한 것도 한국게임의 발전속도를 늦추고 중국게임의 성장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게임업계는 여전히 중국 수출 비중이 높다.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9년 국내 게임의 주요 수출 국가 1위는 중국으로, 중국 수출 비중은 전년 대비 9.7% 늘어난 40.6%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큰 시장이다. 2019년 기준 세계 게임 시장에서도 중국 시장은 미국(20.1%)의 바로 뒤를 이은 18.7%로, 규모는 349억600만달러(약 38조4734억원)에 달하는 2위다.

한국게임은 2016년 넷마블 ‘리니지2 레볼루션’, 2017년 엔씨소프트 ‘리니지M’ 등 대형 모바일게임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됐다. 많은 기대를 받은 신작 PC 온라인게임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고, 거의 모든 게임사가 모바일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흥행에 성공한 모바일게임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들고 개발 기간이 짧지만, 확률형 아이템을 기반으로 매출이 높았기 때문에 전략적인 경영상 판단인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게임의 본질을 망각하는 경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게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잘 만든 예술적인 게임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게이머들은 하지 않는다. 예약구매를 했어도 환불하고, 십수만원짜리 한정판 패키지를 샀어도 중고로 되판다.

재미없는 게임이라는 것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지 못한 게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각종 게임 커뮤니티만 봐도 정식 출시일만 손꼽아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표출하는 게임은 대부분 외산 게임이다. 출시 이후 온갖 혹평에 시달린 폴란드 CDPR의 ‘사이버펑크 2077’도 출시 전까지는 게이머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왔다. 하지만 이런 게이머들도 국산게임에는 냉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확률형 아이템에 지쳤다는 반응을 보인다. 국산게임은 대부분 부분유료화 정책을 택하고 있고, 그 안에서 ‘랜덤박스’라고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한다. 게임사들도 확률형 아이템으로 게임 밸런스를 조정하기보다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형태의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 달 내내 반복작업을 해야 하는 것을 몇만원에 사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경쟁 요소가 없는 게임에서마저도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한국 게이머들이 민감한 부분을 돈 아끼고 조금 뒤쳐질지, 몇만원 쓰고 따라갈지 이지선다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구매 욕구도 감성의 영역이다. 사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사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면 과금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질리기 마련이다.

국내 게임사들의 콘솔게임 개발도 중국 판호 문제로 인한 신규 시장 개척도 있지만, 부분유료화에 지친 한국 게이머들을 재유입하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라인게임즈 ‘베리드 스타즈’, 넷마블 ‘세븐나이츠 –타임원더러-’ 같은 콘솔게임이 나왔고, 올해는 펄어비스 ‘붉은사막’,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X’ 등의 콘솔게임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더는 한국게임이 중국게임보다 경쟁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 게임사의 개발력은 멀티플랫폼으로 나온 원신이 보여줬다. 또 지난해 중국의 독립개발사 게임사이언스가 공개한 ‘블랙미스: 오공’ 트레일러를 보면 국내 게임업계와 마찬가지로 PC‧모바일 위주인 중국 게임사가 일본‧북미‧유럽이 강세인 콘솔게임 시장에서도 게임성으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된 개발력을 입증했다.

결국 평가를 어떻게 받을지는 게임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중국 게임사들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하기에 추가 개발 여력도 충분하다. 중국게임들은 이미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국산게임들과 치열히 경쟁하고 있다. 12일 기준 모바일 순위분석사이트 게볼루션 종합순위 10위 안에 ‘기적의 검’, ‘S.O.S: 스테이트 오브 서바이벌’, ‘라이즈 오브 킹덤즈’ 등 중국게임, 중국 게임사가 일본 게임사와 공동개발한 ‘블리치: 만해의 길’ 등이 포진해있다.

한동안 막혀있던 판호가 컴투스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에 발급되면서 한국게임의 판호 추가 발급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중국게임과의 경쟁이 남아있어 더는 성공을 보장한다고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KOCCA 포커스 130호를 통해 “국내 산업 및 정책 동향 등 게임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비해 정책 의존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고수하기보단 시장 중심의 선제 대응 전략을 우선으로 확립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게임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에서 탈피해 벤치마킹 대상으로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하고, 새로운 시장 발굴 및 관련 수익모델 다각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겸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도 지난해 7월 ‘중국 게임 판호 전망과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판호의 재개는 한국게임의 중국 국내 서비스는 막으면서 중국게임을 한국 시장에 수출하는 기회 불균형을 시정해 줄 것”이라며 “판호 재개가 한국 게임산업의 중흥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한국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중국게임과 대결하며 실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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