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연말 정국주도권 장악 시나리오 전모

10·29 재보선 지원 거절하면서부터 ‘親朴’ 독자행보 나서
朴, “11월 새로운 계절 맞이할 준비 시작” 정치 ‘신호탄’ 
“경제를 살릴 딱 한 가지 모약은 신뢰” ‘朴경제론’ 피력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경제현안 관련한 발언도 부쩍 늘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움직임은 미묘하고 예사롭지 않다. 정치권은 그래서 그의 일거일동에 무척 신경이 쓰인다. 박 전 대표의 최근 동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朴心이 움직이고 있다’고 표현하면 맞을 듯싶다. 물론 정치권의 관측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0.29 재보선 지원유세에 대한 당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때부터 ‘朴心이 결단을 내렸다’는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떠돌긴 했지만, 어쨌든 핵심은 하나고 결론 역시 하나다. 박 전 대표가 ‘새로운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달 26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11월이 되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어찌보면 단순한 글이지만, 달리보면 복잡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구절이었다.실제로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계절’, ‘준비’, ‘시작’ 등의 표현은 정치 고수들이 대게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신호탄’ 성격의 단어들”이라면서 “박 전 대표가 사용한 이 같은 표현들이 단순한 의미는 아닐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여의도 정가는 지난 10.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갖은 악재 속에서도 체면치레를 했지만 민심을 또다시 얻지 못한 까닭에 박 전 대표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특히 평행선 달리듯 끝없는 이어지는 경제위기 국면에도 불구하고 ‘해법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현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감이 사실상 사라진 까닭에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위치와 역량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어떤 수순을 밟지 않겠냐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시선이다.

박 전 대표는 이미 경제관에 대해선 자신만의 해법을 내놓은 상태다. 그는 박 전 대통령 29주기 추모식에 참석해서 “경제는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인데 걱정”이라면서 “경제를 살릴 딱 한 가지 묘약은 신뢰”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그러면서 참석자들에게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안 되는데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것 역시 신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전반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이밖에도 강만수 장관 교체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며 경제팀 교체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청와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부동산 미분양 사태에 대해선 “집 값이 떨어져서 걱정”이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경제정책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현 정부와 어긋난 행보를 보이면서 그의 측근들 또한 당내 주류와 동떨어지는 발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친박계인 허태열 최고위원은 최근 쌀 직불금 국정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고, 얼마 전 유인촌 문광부 장관의 욕설 파문과 관련해선 “변명은 있을 수 없다. 대단히 부적절한 언동이었다”고 맹비난해, 당내 일각에선 이를 두고 ‘朴心의 영향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와 일정부분 대립각을 형성하는 까닭은 이명박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한나라당의 지지율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여전히 20% 초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꾸준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전 대표 때문이라는 게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한나라당이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가 당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내외적으로 지속되는 꾸준한 악재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의 위상 추락, 그로 인한 당의 지지율 저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가 슬슬 구체적인 플랜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 일각의 목소리에 박 전 대표도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친박 측 한 인사는 당내 분위기와 관련해 “동반 몰락을 방지하기 위해 박 전 대표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발언을 중심으로 정치권의 화두를 이끌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반드시 이명박 정부와 일정부분 선을 긋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박 전 대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침묵 정치’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여의도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확인 취재하는 모습이 부쩍 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에 대해선 작심한 듯 “현실적 대안도 없이 규제완화부터 전면적으로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라며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환경 개선 등 현실적 대안을 먼저 내놓고 수도권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고 언급, 이명박 정부 정책에 전면 반기를 들었다.

한 정치부 기자는 “박 전 대표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이 온 나라를 떠들썩거리게 하고 있을 당시 ‘(협상을)너무 급하게 했다’는 비판적 입장을 밝힌 이후 한동안 현안 관련 발언을 자제해 왔지만, 최근 들어 이명박 정부 비판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그 배경에 정치부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수상쩍은 행보는 비단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립각 형성만이 아니라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과의 충돌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여의도 정가가 요즘 관심을 두는 사안은 박 전 대표와 미국에서 체류 중인 이재오 전 의원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낙 심상치 않게 분위기가 돌아가기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이 핵심인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기 전 박근혜 전 대표가 확실한 자기 진영 구축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전 의원 간 샅바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면서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 이후 박 전 대표와의 혈투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박근혜-이명박 샅바싸움 속에서
…박근혜-이재오 대혈투 예상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반면, 이재오 전 의원은 “과감한 경제개혁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며 상반된 기조를 보이고 있다. 한쪽은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외견상’ 반기를 들고 있다. 양측의 혈투가 예상되는 까닭은 두 사람 모두 차기대선 주자라는 점 때문이다.

결국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기 전, 계파 수에서 이재오 측에게 다소 밀리는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발언을 통해 ‘친박 진영 다지기’에 가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로 공성진 최고위원 등 친이계 핵심들은 이재오 전 의원 복귀를 강하게 기대하면서 압박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인 까닭에 박 전 대표 측의 신경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는 이재오 전 의원의 내년 귀국설에 대해 “나랑 관련된 일이 아니”라며 관심 밖 일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과적으로 국내 정치권에선 이재오 역할론이 떠들썩하게 진행되면 될수록 자연스럽게 ‘박근혜 역할론’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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