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 이어 KT도 넷플릭스 협력…3일부터 서비스 시작
글로벌 경쟁력 강화 대신 국내 영향력 확대 선택했나
넷플릭스와 외로운 싸움하는 SKB, 웨이브·티빙·왓챠 남아
글로벌 경쟁력 키우려는 정부 정책과 상반되는 KT 행보

사진=KT
사진=KT

대한민국은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경제보복을 하자 전국적 불매운동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로 대일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한 나라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은 다르다. 글로벌 공룡 넷플릭스에 대항하겠다며 뭉친 웨이브나 티빙·왓챠 같은 국산 OTT 기업들, 넷플릭스와 협상을 통해 선례를 만들겠다는 SK브로드밴드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넷플릭스발 전방위 압박에 밀리는 형국이다. 정부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LG유플러스에 이어 KT가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다.

◆ KT, 올레tv에서 넷플릭스 서비스 제공

10일 KT에 따르면 KT와 넷플릭스가 제휴를 맺고 올레tv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레tv에서 제공하는 넷플릭스 서비스는 8월 중 UHD2, 기가지니2, 테이블TV 셋톱박스부터 적용되며, 이외 셋톱박스는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자동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KT는 “이번 제휴에서 KT와 넷플릭스는 관련 법률을 준수하고, 서비스 안정화 노력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넷플릭스가 KT에 망 사용료를 지불하기로 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익분배 역시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맺은 제휴보다 유리한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KT-넷플릭스 제휴 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가정 내 OTT 사용량이 늘며 대폭 증가한 트래픽으로 인해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법정까지 가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에 망 사용료를 내지 않지만, LG유플러스는 일찌감치 넷플릭스와 손을 잡아 국내 점유율 상승을 꾀했고 KT는 관망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OTT 1위 사업자다. 미국의 할리우드리포터가 지난해 보도한 글로벌 영상 트렌드 연례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점유율이 54%에 달하고, 영어권에선 61%에 육박한다. KT는 지난해 말 기준 KT가 점유율 21.96%, 스카이라이프가 9.56%로 국내 1위 IPTV 사업자다. 여기에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현대HCN 점유율 3.95%가 추가될 소지가 다분하다.

◆ 韓 미디어 생태계 뒤흔드는 넷플릭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자본력을 통해 넷플릭스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전방위에서 뒤흔들고 있다. 국내 IPTV 70%가량을 차지하는 1위 IPTV 사업자 KT, 2위 LG유플러스와 손을 잡아 국내 영향력이 더 커질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경쟁을 선택한 건 웨이브·티빙·왓챠 정도다. 특히 넷플릭스는 매년 콘텐츠 확보에만 20조원가량을 투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국내 콘텐츠제작사들에도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회당 제작비는 평균 4억~5억원 수준인 국내 드라마의 5배에 육박하는 20억원대로 전해졌다.

넷플릭스에서 시작된 국내 미디어·콘텐츠업계 전방위 압박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 넷플릭스로 인해 ‘미디어 주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하는 이유다. 당초 넷플릭스는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LG유플러스에 망 사용료 대신 캐시서버를 설치해 트래픽을 분산하는 정도의 정책을 고수했다. 이에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뿐 아니라 다른 글로벌 대기업이 국내에 진출했을 때를 대비해 선례를 남기기 위해 망 사용료 협상을 시도했고, 현재 법정다툼으로 번졌다. 사태를 방관하던 KT는 LG유플러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넷플릭스와 제휴를 체결했고, SK브로드밴드만 홀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OTT 업계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기존의 방대한 콘텐츠와 더불어 국내 콘텐츠기업들에게 투자하는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킹덤’ 등 신(新)한류콘텐츠 주역이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지자 국내 OTT 기업들은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옥수수(oksusu)’와 지상파 3사의 ‘푹(POOQ)’이 연합해 탄생한 웨이브(wavve)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나 영화수입배급사협회와 저작권료 징수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웨이브·티빙·왓챠 등 국내 OTT 기업들이 표적이 됐다. 콘텐츠업계만 놓고 봐도 넷플릭스가 고품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국내 OTT가 경쟁에서 밀려 모두 퇴보하고 난 뒤에도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 KT, 글로벌 OTT 경쟁 포기했나

일각에서 KT의 이번 넷플릭스 제휴를 두고 미디어 주권 상실에 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로 최근 들어 넷플릭스발 전방위 압박이 거세진 것이 꼽히기도 한다. KT의 넷플릭스 제휴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넷플릭스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잠식하는 가운데 경쟁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KT는 국내 OTT 시장이 형성된 지 한참 뒤에야 OTT 서비스 시즌(seezn)을 선보였다. 하지만 시즌이 웨이브·티빙·왓챠에 콘텐츠 측면에서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KT는 기자간담회에서 시즌에 ▲요금제별 차등 화질 제공 없음 ▲영상에 삽입된 음악 바로듣기 기능 ▲AI 기술을 적용한 콘텐츠 추천 서비스 ▲스토리텔링 장면 검색 기능 등 기존 OTT에 없던 서비스를 추가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김훈배 KT 뉴미디어사업단 단장은 “여러 측면에서 웨이브나 티빙이 적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 콘텐츠를 교류할 수 있고, 사이도 나쁘지 않다”며 “디즈니 플러스까지 왔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화두를 던져본다. 결국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사가 선택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T는 결국 시즌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것 대신 넷플릭스의 손을 잡고 국내 IPTV 1위 사업자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직접 국내 기업을 공격하고 있진 않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는 최근 시청 비율을 따져 정산하던 기존 방식이 저작권료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콘텐츠 제공 중단을 선언했다. 넷플릭스는 시청 시간이나 횟수를 따지지 않고 판권을 계약할 때 정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TT에서 월정액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웨이브, 티빙은 월정액과 건별 결제를 판권 계약 과정에서 상호 합의에 따라 진행하고 있고, 건별 결제 시스템이 남아 있다. 왓챠는 “콘텐츠 권리사들과의 계약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산해왔다”며 “영화만을 위한 개별과금시스템을 마련하라는 주장은 구독형 OTT 모델을 버리고 IPTV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국내 OTT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22일 국내 미디어 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수립하고 발표한 바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전략적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콘텐츠 투자로 국내외 영향력을 신속히 넓히는 반면, 국내 미디어 업계는 수직적 규제환경으로 인한 제약과 글로벌 미디어와의 불공정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정부는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규제 폐지 ▲온라인 비디오물 자율 등급분류제 도입 ▲방송통신 분야 M&A 절차 간소화 등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KT는 정부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활성화 정책과도 반대로 걷는 모양새다.

한편, 송재호 KT 미디어플랫폼사업본부장 전무는 “이번 제휴를 통해 넷플릭스 가입 및 결제부터 해지, 서비스 품질까지 올레tv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편익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KT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지속 발굴하고 고객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 고객 중심 전략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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