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배리어 프리’
ICT 기업들, AI로 디지털 소외계층 지원 나서
정부 “지능정보기술로 포용사회 구현 앞장서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이가 많거나 적은 것,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장애가 있거나 없는 것은 모두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부분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하는 신기술 중 하나인 인공지능(AI)이 이런 ‘다름’을 지원하고 불편을 극복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AI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많은 ICT 기업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블록체인, AI 등 신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빨라진 발전 속도만큼 기술에서 소외된 계층도 덩달아 늘고 있다. 이에 최근 수년 사이에 ‘배리어 프리(Barrier-free)’라는 캠페인이 생겨나기도 했다.

장벽을 뜻하는 ‘배리어’와 자유를 의미하는 ‘프리’가 합쳐진 배리어 프리는 장애인·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장애물이나 심리적 장벽을 없애자는 사회적 운동이다. 공연예술·방송 등 문화콘텐츠 쪽에 주로 적용됐던 배리어 프리가 이제 기술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콘텐츠 업계에서는 화면해설, 문자통역, 수어통역 등을 통해 배리어 프리를 실천하고 있었다. 지난 3일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유튜브 아르코TV를 통해 ‘오셀로와 이아고’ 공연을 국내 최초 배리어 프리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일에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한국 고전x배리어 프리 영화 온라인 기획전’을 연 바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TV와 유튜브 한국 고전 영화 채널에서 6월 14일까지는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28일부터 6월 28일까지는 한국 영화 최초로 해외영화제에서 희극상을 받은 ‘시집가는 날’을 볼 수 있다.

 

SK텔레콤이 LG전자에서 출시하는 폴더폰 ‘LG Folder 2’에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 ‘누구’를 탑재한다고 17일 밝혔다.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이 LG전자에서 출시하는 폴더폰 ‘LG Folder 2’에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 ‘누구’를 탑재한다고 17일 밝혔다. 사진=SK텔레콤

최근에는 AI 기술을 연구하는 ICT 기업들이 AI로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이라는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가장 보편화하고 있는 것은 AI 스피커다. 먼저 LG유플러스는 2018년 3월 터치스크린과 영상 정보 중심의 스마트기술 이용에 시각장애인이 겪을 수 있는 불편을 네이버의 AI 클로바와 함께한 U+우리집AI 서비스를 이용해 해소한 바 있다. 이후 2018년 9월에는 척수장애인 가정 300가구에 U+우리집AI 스피커를 제공했다. 사물인터넷(IoT)에 연결된 AI 스피커가 손발을 움직이기 불편한 사람의 손발이 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은 한국광고학회가 주관한 ‘제26회 올해의 광고상’ 그랑프리 및 한국광고주협회 주최 ‘제27회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 온라인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SK텔레콤도 AI 스피커를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SK텔레콤은 지난 22일 아리아케어코리아, 행복커넥트와 ‘사회적 가치 실현과 케어테크산업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어르신 돌봄 서비스에 AI 기술을 접목한 24시간 맞춤형 시니어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앞서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취약계층에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에 서울대 의과대학과 개발한 어르신 케어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실제로 AI 스피커를 통해 ICT 케어센터에 알림이 가 위급 상황의 노인을 구한 사례도 있었다.

AI 스피커 외에도 AI가 활용되는 곳은 여러 가지다. KT는 AI를 이용해 목소리를 잃은 사람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KT 융합기술원에서 연구한 개인화 음성합성(P-TTS)과 AI 딥러닝(반복학습) 기술을 활용해 목소리 유사도가 높은 동성 가족의 음성을 데이터화하고, 성별·나이·구강구조 등 개인 특성을 반영해 목소리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또 SK텔레콤은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폴더폰’에 AI 비서를 탑재해 실버 세대의 디지털 정보 접근성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SK텔레콤이 AI 비서 ‘누구(NUGU)’를 탑재하는 것은 LG전자에서 출시하는 LG폴더2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 지원 시스템(ATC, Audio-Tactile Conversion)’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조용한 택시.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 지원 시스템(ATC, Audio-Tactile Conversion)’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조용한 택시. 사진=현대자동차그룹

AI 기술이 공감각적인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지난해 1월 2017년 R&D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 지원 시스템(ATC, Audio-Tactile Conversion)’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조용한 택시’를 공개했다.

ATC 기술은 주행 중 운전자가 알아야 할 청각 정보를 알고리즘을 통해 시각화해 전방표시장치(HUD)에 노출하고, 운전대에 진동 및 빛 발산을 통해 전달한다. 경찰차·소방차·구급차 사이렌은 물론 일반 자동차 경적소리까지 구분한다. 후진할 때 나는 사물 근접 경고음도 HUD와 운전대에 시각·촉각 정보로 변환해서 제공한다.

청각 정보를 시각·촉각 정보로 변환하는 것 외에도 촉각으로 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촉각 피치 시스템’도 개발됐다. ETRI에 따르면 현재 청각장애인들도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면 원활한 구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기술 발전이 이뤄졌지만, 음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가 지난 19일 개발했다고 공개한 이 기술은 주위 소리와 본인 목소리 음높이를 분석해 촉각 패턴으로 변환해준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에서도 AI 기술 등 첨단 ICT 기술을 활용해 ‘다름’에서 비롯되는 불편을 해소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데뷰 2019(Deview, Developer’s View)’ 모두발언을 통해 “5월 새벽 3시 40분 혈압 증세로 쓰러진 어르신이 AI 스피커에게 ‘살려줘’라고 외쳤고, 그 외침이 AI에 의해 위급신호로 인식돼 119에 연결, 어르신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유사 사례가 이미 여러 건이다. 국가에서 독거노인 지원 서비스로 지급한 AI 스피커가 하고 있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추진하고 있는 ‘사회현안해결 지능정보화 사업’ 과제 중 청각장애인을 위해 SRT 열차와 역사 안내방송을 수어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해 안내하는 서비스를 올해 클라우드 기반 앱으로 고도화하고, 다중이용시설로 적용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가정용 인지학습 콘텐츠를 AI 기반으로 추천하고 인지능력을 분석하는 앱 서비스는 올해 특수학급에서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도화하고 하버드 의대와 협력해 미 FDA 승인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AI의 ‘지능’이 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모바일 등에 기반한 ‘정보’를 처리하는 지능정보기술로 ‘디지털 포용사회’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올해 과기정통부가 공모하는 지능정보화 사업 과제는 ▲시각·지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보행 중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실내 길안내 내비게이션 서비스 ▲장애인·고령층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능형 키오스크 서비스 ▲요양환자의 생활 욕구를 ICT로 해결하며 요양보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환자 가족들도 안심할 수 있는 스마트 안심 요양 서비스 ▲기종과 통신사에 상관없이 AI 스피커를 활용해 취약계층에게 일상생활 돌봄 및 맞춤형 행정·복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오픈 서비스 플랫폼 구축 및 공공 서비스 시범 연동 등 4개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관은 “그동안 주로 산업적 관점에서 지능정보기술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해 포용사회를 구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지능정보기술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도록 실증 사업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 사업까지 연계해 디지털 포용사회 구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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