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청와대 홍보수석, 끝없는 논란에도 대통령 최측근 위치 고수

[파이낸셜투데이=김경탁 기자] 또 이동관이다. 2007년 대선 이명박캠프 공보특보를 시작으로, 인수위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지난 2009년 8월 홍보수석비서관에 임명되면서 이명박정부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이동관 수석이 봉은사 외압 논란 폭로 기자회견을 막으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동관 수석은 의혹을 폭로한 명진 스님에 대해 지난 13일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동안 숱한 오해와 논란, 거짓 파문을 낳았던 이동관 수석이기에 그의 분노에 찬 정면 대응을 보면서도 세간의 반응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수준이다.

이동관 수석은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 쌀 직불금 논란을 비롯해 각종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계속 중용되었고, 지난해 8월에는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승진하면서 정권의 핵심 실세라는 사실을 재확인시킨 바 있다.

‘대리경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계속 중용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포스트를 지키고 있는 강만수 경제특보 정도를 제외하면 이동관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랑하는 남자(?)’로 손꼽히는 인사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손꼽힐 정도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언론 장악 프로젝트 핵심

‘마이너리티리포트’ 사건으로 인터넷 스타(?) 부상

▲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이동관 수석이 사람들에게 강하게 인상을 남긴 첫 사건은 2008년 3월5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삼성 떡값’ 인사 폭로 기자회견을 하기도 전에 미리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하고 나선, 일명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건이었다.

당시 이동관 대변인의 황당 브리핑을 꼬집은 3월7일자 YTN <돌발영상> ‘마이너리티 리포트’편은 그해 최고 인기 동영상의 하나로 떠올랐으나, 이 사건으로 YTN 기자가 한동안 청와대 출입을 거부당하는가 하면 돌발영상 자체가 폐지됐다가 부활하는 고초를 겪어야했다.

이 ‘마이너리티리포트’ 사건은 청와대 춘추관(기자회견장)의 대변인 정례 브리핑에 대한 개별 매체들의 동영상 촬영을 규제하고, 방송사들 역시 매 브리핑을 한 개 방송사씩 돌아가면서 촬영해 이 영상을 다른 방송사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풀제’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사 담합 규제를 위한 기자실 폐지에 반대해 ‘프레스프렌들리’를 표방했던 이명박정부가 언론에 대한 장악과 통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계기가 사실상 이동관 수석의 ‘마이너리티리포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레스프렌들리…탄압 혹은 장악

이 수석의 공직 생활에 최초이자 최대 위기는 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불법 농지취득 사실이 드러나면서이다. 당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쌀 직불금 부당수령 논란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었고, 문제가 된 정부 고위인사 중에 스스로 사퇴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이동관 수석이 동아일보 정치부 부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지인들(3명)과 함께 춘천시 신북읍 농지 1만여㎡를 사면서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제출한 사실이 언론 취재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국민일보>가 현지 취재를 통해 이 사실을 보도하려 하자 이 수석은 국민일보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더 큰 논란을 낳았고, 사퇴압력이 빗발쳤지만 이 수석은 끝끝내 대변인 직을 지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파문 관련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명박정부가 존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같은 해 6월,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더이상 촛불집회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40여일 뒤인 8월11일에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나경원 의원(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측 간사), 김회선 국정원 2차장 등과 모여 이른바 ‘언론장악대책회의’를 갖고, 모든 언론의 장악을 모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수석은 ‘언론장악대책회의’로부터 6일 뒤인 2008년 8월17일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및 최 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 등과 함께 서울 모 호텔에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후임으로 유력한 후보들을 면접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언제부터 몇 번이나 만남을 가졌는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있는 ‘언론장악대책회의’의 내용은 2008년 YTN사태와 정연주 KBS 사장 해임(2009년 11월 해임무효 판결), 그리고 MBC 엄기영 사장 사퇴(2010년 4월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조인트’ 발언 인터뷰 파문으로 사퇴후 출국)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 실체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수석이 언론 탄압 혹은 언론 장악에 관련돼 불거져 나왔던 에피소드는 2009년 9월18일 ‘지역언론 취재 봉쇄’ 파문으로 다시 이어진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영일만항 컨테이너 터미널 개장식 행사 참석 때 지역 언론들의 취재를 차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신문들조차 청와대가 ‘신(新)언론통제’를 시도하고 있다며 반발했는데,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수석은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만남, 이 대통령과 시도지사와의 만찬행사에 대한 취재 등도 원천 봉쇄했다고 한다.

다시 6개월여 뒤인 2010년 3월에는 ‘대구·경북 X들’ 막말 파문이 터진다. 이동관 수석이 2월28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대구·경북 언론에 불만이 많다”며 “대구·경북 X들”이라는 막말을 했다고 <경북일보>에 보도된 것이다.

이 수석은 3월3일 해당언론에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고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결국 3월17일 <경북일보>의 정정 및 사과 보도(전달 과정의 와전․착오)를 이끌어냈다.

‘마사지’의 역사

이동관 수석에 대해 거론되는 수많은 표현들 중에 단연 압권은 ‘마사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사지’라는 표현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2월 이 대통령이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왜곡 전달한 것을 무마하는 과정이었다.

이 수석은 파문이 확산되고 김은혜 대변인이 사의를 표명하자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마치 곧 (정상회담이) 될 것 같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마사지’를 하다가 오해가 생겼다”며 김 대변인의 사의 표명도 김 대변인 본인의 뜻과 다르게 해석됐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물론 이 에피소드가 이동관 수석이 벌여온 ‘마사지’의 첫 사례는 아니다.

2008년 7월 <요미우리> 신문에 한일정상회담 당시 일본 총리가 교과서에 독도의 일본영유권 표기를 해야겠다는 통보를 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당시 이 대변인은 “그 같은 의견을 주고받은 일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다가 결국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번복한 바 있다.

이 사건은 이후 국민소송단의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돼 이 수석인에 대한 증인 요청이 있었지만 요미우리신문사 측이 ‘사건의 정치화’를 이유로 증인채택에 반대했다. 재판부는 요미우리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 수석에 대한 증인 요청을 거부한데 이어, 지난 4월 7일 소송인단의 소송 자격미달을 이유로 결국 기각판결을 내렸다.

앞서 2009년 2월에는 당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군포 연쇄살인 사건’으로 ‘용산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덮으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홍보지침이 경찰에 내려간 것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있었다.

당시 이 대변인은 ‘군포 연쇄살인 홍보지침’ 사건이 불거진 뒤 일주일 동안 정례 브리핑을 피한 끝에 기자들 앞에 나타나 “군포 연쇄살인사건 활용 지침은 사실무근이며 행정관 개인의 돌출행동”이라고 발뺌했다.

그밖에 2009년 9월에는 세종시 관련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던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G20정상회의 유치 특별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당시 참석기자들에게 “세종시 관련 질문은 하지 말라”고 사전에 ‘마사지’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남자들. 왼쪽부터 이 대통령,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비서관, 강만수 경제특별보좌관.


오해 혹은 말실수

이명박정부가 낳은 무수한 ‘오해’ 시리즈에서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2009년 1월30일 이 수석은 한나라당 이달곤 의원의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 발표 4시간 전에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단언했다가 발표 직후 “이 의원은 신분만 국회의원”이라고 궁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며칠 뒤인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오찬 회동에서 나온 김무성 의원의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브리핑해 김 의원이 마치 친박계에 대한 입각을 우회적으로 요청한 것처럼 호도해 논란을 낳았다.

1년 뒤인 2010년 2월 11일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 대통령의 ‘강도론’ 발언을 비판한 데 대해 공식해명을 요구하며 박 전 대표를 ‘박근혜 의원’이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이 사건을 ‘박 전 대표의 실언 파문’이라고 규정, 논란의 본말을 뒤집으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그리고 2월28일 ‘세종시 문제가 지지부진하면 중대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밝힌 자신의 발언에 대해 여러 언론에서 ‘중대결단=국민투표?’라는 취지의 해석보도가 나가자 3월 2일 “국민투표를 말한 것은 아니며 여당 내에서 논의해 결론을 내려달라는 취지였다”고 발뺌,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이동관 vs 명진 ‘진실게임’ 

민주당 “발언자 아닌 전달자 고소…입 막겠다는 뜻”

조계종의 봉은사 직영전환 방침과 관련해 ‘안상수 외압설’을 주장하고 있는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지난 4월11일 “이동관이 조계종 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의 기자회견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명진 스님은 이날 일요법회에서 “(안상수 외압 사실을 제보한) 김영국 거사가 기자회견 하기 전날(3.22) 밤 11시쯤 청와대 모 인사가 만나자고 해 만났다.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 하지 말 것을 설득하니까 흔들렸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명진 스님은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에게 전화해 바꿔줬다고 한다. 선거법 위반으로 뭐가 걸려있나보다. 사면복권 풀어줄테니 기자회견하지 말아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니까 쌍욕을 하더란다”라며, “이 정도로 청와대에서 조직적으로 봉은사 사태에 개입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튿날인 12일 이동관 수석은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한데 이어 13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명진 스님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동관 수석의 명진 스님 고소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고소고발을 하려면 그런 발언을 한 김영국씨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맞지, 들은 이야기를 전달한 스님을 고발한 것은 결국 스님의 입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라고 규정했다.

명진 “법정에서 만나자”

명진 스님은 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과 법정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제발 고소 취하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진위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만약 내가 잘못했다고 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진 스님은 특히 “평소에도 거짓말을 하는 안상수 원내대표와 이동관 수석 같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나도 진위 여부를 확인했을 텐데 김 거사는 불이익을 각오하고 안 원내대표의 ‘봉은사 외압’ 의혹을 밝힌 사람”이라면서 “신뢰할만한 전언이었기에 법회에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이동관 수석은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병역면제자가 만기제대자보다 많은 이명박 정부 핵심부 인사들 중에서 드물게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인물로, 지난해 10월 안병만 교육부 장관과 함께 자신이 병역미필이라는 허위 내용이 포함된 글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을 고소한 바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언론보도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출처로 나오는 특종보도의 십중팔구는 이동관 수석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를 연결해보면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이동관 수석이 비판자에는 소송이라는 ‘채찍’을, 그리고 친한 언론에는 ‘특종정보’라는 당근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