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밥그릇’ 싸움 맞불…과거 정통부 부활 ‘견제’

▲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파이낸셜투데이] 최경환 지경부 장관이 21일 공개석상에서 또 한 번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취임 후 관가(官家)에서 재정부, 환경부 등과 정책상 이견으로 갈등을 빚은 최경환 장관은 이번에는 화살을 김형오 국회의장과 방통위에 겨눴다. 물론 이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할 정도로 그 수위는 예상보다 셌다.

최 장관은 이날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한 조찬세미나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IT.정보통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다 현 정부 들어 폐지된 정보통신부 부활 논란과 관련, “옛 정통부와 같은 조직의 부활은 예전 개발연대로 돌아가자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최근 김형오 국회의장이 공개적으로 ‘정통부 부활론’을 제기한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향후 우리나라 정보통신관련 정책을 주도하기 위한 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처간 밥그릇 싸움에서 예전처럼 쉽게 밀리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셈이다.

지경부 “IT.정보통신 홀대? No~”

실제로 지경부는 최 장관 취임 이후 IT.정보통신 관련 정책을 줄줄이 내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올해 2월 소프트웨어(SW) 강국 도약을 목표로 공공SW사업 관련 제도를 대폭 개편하고, 2012년까지 3년간 1조 원을 투자하는 등 SW생태계 재편, SW융합 수요창출, SW인재양성, SW기술역량 제고 등 4대 핵심전략 및 12개 정책과제가 포함된 'SW산업 종합대책'이다.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자동차, 로봇, 기계·항공, 국방, 조선, 섬유, 의료, 건설 등 기존 산업과 IT를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IT산업 융합정책을 수립했다. 예를 들면 ‘제약+IT 융합 발전전략’은 의약품에 RFID 부착을 통해 유통비용 절감은 물론 생산단계에도 IT를 접목시켜 제품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지경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경부는 한국형 스티브잡스 육성을 목표로 SW명품인재 육성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정부에서 주로 추진했던 대학 중심의 인력양성 방식을 버리고 개인중심·현장중심의 소수인재 양성 방식으로 미래의 SW산업을 선도할 최고급 인재 육성을 목표로 마련됐다.

또 IT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완화할 목적으로 IT 인재 4만여 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경부는 2013년까지 총 4011억 원을 투입해 기업 맞춤형 기초인력 3만5000명, IT고급인력 4000명, 융합고급인력 2000명을 양성한다.

물론 지경부가 대기업 중심의 정책만 내놓은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선진적인 관행 정착에 중점을 둔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가장 큰 불만으로 오르내렸던 SW생태계를 재편하기 위해 ‘대기업 참여하한제’, ‘대기업간 공동입찰금지’ 등 중소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던 장애요인을 제거해 중소기업의 시장 확보를 지원했다.
또 내수 위주의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SW 수출 활성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해외진출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대·중소 협의체(협의체당 3000만~5000만 원 지원)의 구성·운영했다.

그밖에 중소SW기업에 대한 SW공학기술 지원, 모바일융합산업협의회 발족, 소프트웨어(SW)고충처리센터 출범, 5년간 모바일 민관프로젝트 7600억 투자 등 관련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또 오는 6월까지 'IT·SW 규제개선 민·관합동 위원회'를 통해 소프트웨어, 인터넷, 정보보안, 전자거래 등 IT산업 전반의 직·간접적 규제나 관행을 뿌리 뽑을 계획이다.

정치권?방통위 정보통신 통합부처 ‘솔솔’

이처럼 지경부가 내놓은 IT.정보통신 정책의 중심에는 소프트웨어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곧 최 장관이 소프트웨어산업을 IT와 제조업 간 융합의 핵심이 되는 산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 장관은 틈날 때마다 “소프트웨어산업은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줄 뿐 아니라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 장관은 지난해 취임사에서도 “‘SW 코리아’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IT.정보통신 관련 정책개발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치권과 관가에서 조금씩 불거져 나오는 정보통신 통합부처 논란을 바라보는 최 장관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김형오 국회의장이었다. 최근 애플사(社) 아이폰이 IT는 물론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꿔놓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통부 부활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IT 산업 전반의 위기는 정통부 해체로 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천안함 사고로 어수선한 시국임에도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 2년 전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각 부처로 이관된 IT(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을 총괄할 통합부처의 신설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 의장은 “우리나라의 IT산업 경쟁력은 지난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였던 것이 지난해는 16위까지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옛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IT 관련 업무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 등 5개 부처로 이관됨에 따라 각 부처로 뿔뿔이 흩어진 업무들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김 의장의 지적이었다.

이후 방통위가 중앙 부처 가운데 가장 먼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며 화답했다. 방통위 내부 기류는 현재 시스템상 IT정책을 총괄할 부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보통신부 이상의 IT 통합부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지경부, 문화부 등이 IT 관련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부처간 불협화음이 감지되고 있는 점도 IT통합부처 채비를 서두르려는 방통위의 입장과 맞물린다.

실제로 올 2월 범부처 차원의 SW산업육성을 위한 종합대책을 대통령에 보고하는 제4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지경부가 방통위 등 관련부처와 논의 끝에 데이터요금 무한정액제 도입이 ‘확정’된 것처럼 발표하자 방통위 내부에서는 적잖게 곤혹스러워하며 지경부에 비공식적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물론 최시중 위원장은 겉으로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5일 국회 문방위 업무보고에서 “정부조직을 개편한 지 2년쯤 지났는데 또 개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재로써는 주어진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 개선의 길”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정보통신부 기능이 지식경제부, 문화관광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나뉘어 업무에 마찰이 생긴다”며 “참 비효율적으로 됐다”고 현재 시스템상 한계를 지적하며 김 의장의 문제제기에는 100% 공감을 나타냈다.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전날 역대 정통부 장관들과 비공개 회동을 가져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을 더 자아낸다.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정보통신 통합부처 해법을 구하기 위해 IT원로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경환 “정보통신 통합부처=규제부활”

이를 지켜보는 최경환 장관 입장에서는 손 놓고 있다간 자칫 공들여온 IT정책부처 입지를 빼앗길 상황에 몰린 셈이다. 특히 취임 후 지경부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정책개발을 주문하며 각종 이슈를 선점해 다른 부처들이 자연스레 따라오게끔 강조해온 업무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다.

이런 위기감이 작용하자 최 장관은 곧바로 다음날인 21일 방통위와 상반된 시각으로 정보통신 통합부처 필요성을 반박했다. 최 장관은 이날 “정통부와 같은 공무원 기관은 결국 규제 마인드로 갈 수밖에 없다. 과거 개발연대식의 IT 발전정책은 통하지 않는다”며 “미국에 정통부와 같은 기관이 있어서 구글이나 애플이 등장했느냐”고 주장했다.

이는 곧 조직규모가 커질수록 규제만 늘어가는 공무원 조직의 단점을 상기시켜 ‘통합부처=규제부활’로 여론몰이 하려는 의도로 비춰진다. 또 취임 후 정기적으로 정보통신업계와 간담회 등을 통해 스킨십을 강화해 온 최 장관이 정보통신 통합부처를 바라보는 IT업계에 기대보다는 우려를 ‘당부’하는 ‘신호’처럼 읽혀진다.

최 장관은 취임 후 “관료생활당시 느낀 것보다 현재 지경부가 정책 부서로서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자신을 스스로 ‘황소장관’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뚝심 있는 정책개발과 추진력으로 지경부의 위상을 끌어올린다는 약속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최 장관은 정치인 출신답게 관가에서 부처간 이견이 대립되는 상황에서도 섣불리 물러서지 않고 부처 ‘밥그릇’을 챙기는데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최 장관의 뚝심이 이번에도 통할지 관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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