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방심에 1년 장사 ‘물거품’

[파이낸셜투데이=김상범 기자] 지난달 KTB투자증권(사장 주원)이 선물거래 주문 실수로 100억원대 손실을 입은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관련업계 및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파생상품 거래시 기계적인 매매(알고리즘 매매)에 따른 입력 오류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주문거래 실수는 올 초 KB투자증권에서도 발생, 홍콩계 헤지펀드 이클립스퓨처스는 19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손실을 입고 말았다. 이처럼 해마다 수차례 주문 착오가 발생, 관련업계와 한국거래소 측은 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코스피200선물 7000계좌 잘못 주문‥‘영업이익 절반’ 날아가
홍콩계 헤지펀드 이클립스퓨처스, 주문오류로 190억원 손실

지난 2일 한국거래소 집계결과에 따르면 3월 결산 국내 증권사 19곳 가운데 15곳이 지난해 영업손실을 기록하거나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등 증시침체로 인한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9개 증권사의 영업이익은 총 8,101억을 기록, 전년 동기에 비해 45% 급감했고 당기순익도 5,241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쳐 무려 47%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지난해 증권사들이 고전하고 있던 가운데 KTB투자증권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KTB투자증권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80.7% 증가한 193억원, 순이익은 6.1% 늘어난 129억원을 기록하며 전통 대형사들을 압도하는 탁월한 운용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하지만 KTB투자증권에 예상치 못한 주문사고가 발생, 지난해 어려운 대내외적 환경 가운데서 힘들게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리게 된 셈이다.

손실금액 100억원↑

지난 2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TB투자증권이 지난달 일어난 코스피200선물 주문실수 사건을 자체 조사한 결과 손실 규모가 11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앞서 지난달 25일 오후 2시 30분부터 기관 창구 주문에서 KTB투자증권의 일부 직원이 매수가 적절치 않은 시점에서 7천계약이라는 대규모 매수 주문을 냈고, 뒤늦게 이를 알아차리고 포지션 청산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이 주문실수로 인해 비싼 가격에 선물을 매수해 싼 가격에 되팔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 같은 주문실수로 당시 하락세를 보이던 코스피200 지수선물은 잠시 급반등세로 돌아서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업계관계자들은 최소 100억원에서 최대 200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KTB투자증권 측은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었지만 헤지 포지션에 의해 100억원대 손실에서 막을 수 있었다”며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KTB투자증권 관계자는 18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정확한 피해액수는 민감한 사항이라 공개하기 곤란하다”면서 “현재 해당 직원은 타 부서로 이동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사태의 전말은?

KTB투자증권이 지난달 25일 선물시장에서 주문 실수를 내면서 코스피지수 선물이 잠시 급등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8.38포인트(1.02%) 떨어진 1780.63으로 마감했다. 

이날 시장에서는 오후 들어 20포인트 넘게 하락하고 있던 코스피지수가 잠시 낙폭을 크게 줄여가면서 장중 한때 강보합권으로 전환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KTB투자증권에서 나온 코스피200지수선물 주문에서 실수가 발생했기 때문. 

한때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의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주가조작 등의 시장 교란행위가 집중적인 감시 대상 1순위에 오르면서 KTB증권이 ‘의도적으로’ 선물 매수 주문을 내고 그 사이 옵션 거래 등으로 수익을 내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 역시 잠시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업계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해당 주문 실수가 단순 사고였는지 혹은 의도가 담긴 행동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단순 실수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의도가 담긴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그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사고로 KTB투자증권이 100억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감수할 만큼의 실익이 없다는 점, 그리고 해당 거래가 사람의 인지가 없는 기계적인 매매(알고리즘 매매)로 이뤄져 시스템 오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이런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원래 착오 거래의 경우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구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KTB투자증권은 이에 해당하지 않아 100억원 대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전망이다. 

거래소는 착오거래에 대한 구제요건으로 가격변동폭이 직전 체결가의 3%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설정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 발생 당시 가장 많이 오른 가격은 직전체결가의 1.9% 내외에 불가, 안타깝게도 구제대상에는 포함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반복되는 주문실수

이 같은 선물거래 주문실수는 해마다 1~2회씩 벌어지고 있다. 특히 촌각을 다투는 파생시장의알고리즘 매매 특성상 잠깐의 실수 한 번에도 엄청난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앞선 올 초에는 홍콩계 헤지펀드인 이클립스퓨처스에서 KB투자증권을 통해 16조원에 이르는 코스피200 지수선물 주문 실수가 발생하면서 무려 19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이클립스퓨처스는 주문 오류를 알아채고 취소하기 위해 시스템 종료까지 시도했지만 결국 200억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2011년에는 골든브릿지증권이 선물 주문 실수로 268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이는 이 회사의 2009 회계연도 순이익 115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결국 골든브릿지증권은 2010회계연도에 영업손실 11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킬 스위치 도입

최근 파생상품시장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주문 착오를 방지하기 위한 ‘킬 스위치(일괄취소기능)’가 도입될 전망이다. 이는 파생 시장에서 알고리즘 매매 비중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이로 인해 발생 가능한 현물 시장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알고리즘매매란 투자자가 설정한 목표가격·수량·시간 등의 매매조건에 따라 전산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매매가 이뤄지는 거래를 말한다. 알고리즘매매를 통해 반복된 자동주문이 한 방향으로 몰릴 경우 시장이 빠른 속도로 붕괴할 수 있고, 불공정거래의 소지가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인력이 중간에 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장 변화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과 비용의 절감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거래소는 파생상품시장에 대한 위험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파생상품시장 업무 규정 및 시행세칙’을 개정하고, 내달 30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이를 위해 거래소 측은 9일부터 증권사들의 알고리즘거래계좌를 사전신고를 의무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거래소는 내년 2월부터 신고된 계좌에서 주문 착오 발생 시 위탁자의 접수를 받아 해당 계좌에서 제출한 모든 호가를 한꺼번에 취소하고, 추가적인 호가 접수를 차단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알고리즘 매매에 관한 규제 강화 조치가 거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알고리즘거래계좌에 대해서만 신고의무와 거래차단 및 부담금 부과를 시행하는 것은 과도한 권한행사의 소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알고리즘거래 계좌의 신고에 따른 투자자 실익이 없어 오히려 투자자의 거래동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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