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석화단지 부두서 벙커C유 5900ℓ 유출…‘안전 불감증’에 ‘책임 회피’까지?

 

▲ 기름 유출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난지도의 바닷가 바위. <사진=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

[파이낸셜투데이]2007년 12월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크레인 예인선의 충돌로 대규모 기름유출 사고(일명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벌어졌던 서해안에서 2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21일 또 다시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충남 서산의 대산석유화학단지 현대오일뱅크 연안 부두에서 지난해 12월 21일 밤 10시경 4026t급 성호해운(주) 소유 유조선 신양호에 벙커C유를 선적하던 과정에서 벙커C유 약 800~1000 리터가 바다에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급격한 한파 및 폭설과 함께 사고 후 보름이 지나도록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음에 따라 방제활동에 필요한 자원봉사자 모집도 뒤늦게 진행되면서 초기 방제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사고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2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두 건의 사고 모두 유출된 기름의 화주가 현대오일뱅크라는 점 때문에 2년 전 발생한 초대형 환경재앙에도 불구하고 현대오일뱅크의 안전불감증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지적되고 있다.

 

▲ 기름 유출 사고가 벌어진 현대오일뱅크의 대산공장 선박 접안시설.

폭설·한파로 방제작업 지지부진한 가운데 보상 협상도 난항

지난해 12월 20일 22시 40분, 성호해운 소유의 유조선 신양호는 대산항 현대오일뱅크부두에서 벙커C유를 4번 탱크에 채운 뒤 2번 탱크에 선적하는 과정에서 4번 탱크 밸브를 완전히 잠그지 않아 30~40분 동안 흘러나오는 사고를 일으켰다.

유조선 선장을 비롯한 작업자들은 기름이 대규모로 유출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현장을 벗어났고, 태안해양경찰서는 유조선 선장 A씨(65)를 이튿날인 22일 저녁 8시께 부산에서 검거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5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CCTV를 판독한 결과 유조선에 기름을 탑재하는 과정에 선박쪽 작업자들이 선박내 유류고간 밸브를 잠그는 것을 깜빡해 3분여 동안 벙커C유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작업자들이 초기에 사고사실을 우리 측에 알렸으면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그냥 출항해버리면서 유출 기름이 확산됐다”며, “우리는 처음에는 인근 해상을 지나가던 배에서 기름을 몰래 버린 것이 흘러들어온 것으로 판단해 즉각 해경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기름을 탑재하는 곳에는 우리 직원이 2명씩 2조 2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작업장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각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고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자체 부두에서 진행된 작업에 대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화주 현대오일뱅크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 측은 해경의 수사가 마무리돼 책임소재가 명확하게 결론 내려지기 전에 무조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 유출기름 방제작업에 한창인 난지도 주민들. <사진=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

현대오일뱅크 “우리도 피해자”

난지도 유류피해 주민대책위원회의 최장량 위원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고는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현대오일뱅크 부산저유소로 가는 자체 화물”이라며, “특히 현대 자체 공장 내에서 사고가 난 만큼 최종적으로 사고책임이 어떻게 내려지든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특히 “당장 주민들은 생계활동을 접어두고 방제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현대오일뱅크 쪽에서 생계비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별로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대책위와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하고 있지만 유류 피해 일부 지역의 몇몇 주민들이 일당 수준이 아닌 과도한 요구(수십억 피해보상)를 하고 있어서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이 때문에 우리 직원들의 방제작업을 막는 일도 있었다”며, “주민들의 지금과 같은 요구를 일부 수용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요구가 커질 것으로 우려돼 난감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장량 위원장은 ‘무리한 요구’가 있었다는 현대쪽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특히 방제작업을 막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31일 작업 당시 일부 지역에서 주민들과 현대 직원들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현대 직원들이 방제작업을 꼼꼼하게 하지 않고 지나가려는 것에 격분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일축했다.

▲ 기름 유출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난지도의 바닷가 바위. <사진=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

“도대체 몇 번 쏟아야 가해자 되나”

환경운동연합 전국사무처 정나래 간사에 따르면 지난 1월 6일 당진수협에서 있었던 현대오일뱅크 기름유출 피해주민과의 간담회에 나온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그 첨예한 자리의 시작을 “우리는 선의의 피해자다”라는 말로 시작했다고 한다.

11일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글에서 정나래 간사는 “당연히 주민들은 항의했고 ‘수사 과정을 먼저 지켜보겠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을 지루하게 반복한 뒤에야 ‘그런 어감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오해하셨다면 미안하다’고 수그렸다”고 전했다.

정 간사는 “2008년 9월, 단일선체였던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일으킨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이중선체도입 자율협약을 제안하기 위해 찾은 시민들을 향해 현대오일뱅크가 했던 말도 ‘우리는 기름을 잃은 피해자다’였다”고 밝혔다.

정 간사는 “기름을 아무리 쏟아도 가해자가 아닌 것이 현실일까” 반문하며,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나 현대오일뱅크의 과실의 범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이지 무죄라는 것이 아닌데 현대는 범죄사실을 부인하면서 일부 언론을 통해 피해주민들을 수억의 보상금이나 챙기려는 무리로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정 간사는 “방제작업에 동원될 테니 인건비나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면 되지 별도의 생계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은 무리라며 드러내놓고 말하는데, 멀쩡한 사람을 찔러 놓고 치료비는 보험으로 처리하면 되지 뭘 또 바라냐는 식”이라고 성토했다.

정 간사는 “그런 식으로 2년 전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들의 비난까지 피해왔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2년 전의 태안 앞바다를 국민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분노가 이번에는 현대오일뱅크의 만행을 그저 바라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

 


고온고압식 방제는 ‘언발에 오줌누기’?

환경연합 “오히려 환경파괴 장기화” vs 현대 “국제적 통용 방식”

지난해 12월 21일 충남 서산시 대산항 현대오일뱅크 부두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 당시 유출된 벙커C유가 당초 알려진 800~1000ℓ(리터)가 아니라 그 6배에 달하는 5900ℓ라는 발표가 나온 가운데 방제방식을 놓고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정나래 간사는 기름제거 작업에 사용되는 ‘고온고압 방제’ 방식이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 간사는 “2007년 기름유출 사고의 방제작업 중 환경운동연합은 기름뿐 아니라 미생물을 씨를 말리는 고온고압 방제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항공 유화제 살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2년이 지나는 동안 이것은 환경연합의 생태조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이 직접 닦아 기름이 완전히 닦이지 않은 곳들은 점점 생물들이 부착되고 있지만 끓는 물을 높은 압력을 쏘아 기름을 녹아내리게 한 암반 지역은 지금도 민둥한 바위로만 남아있다는 것. 유화제 살포로 유류성분이 쉽게 분해되고 가라앉으면서 일부 어종의 기형어나 폐사어가 늘어가고 있다는 어민들이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정 간사는 밝혔다.

정 간사는 특히 지난 1월 8일 출입이 제한되어있던 사고 발생 현대오일뱅크 부두를 어민들과 함께 뚫고 들어가서 본 결과 현대 쪽 석축은 2년 전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고 이를 해양환경관리공단에서 나온 직원들이 고온고압으로 쏘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 간사는 “석축 표면의 기름은 녹아서 속으로 흘러들어갈 뿐 닦이는 것이 아니”라며, “다시 바다로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 장치는 몇 겹의 오일펜스나 두툼한 오일붐도 아닌 얇은 막 한 장이었다”고 지적했다.

정 간사에 따르면 당진환경연합과 서산태안환경연합 활동가와 난지도리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자 현장 책임자는 뭘 알기나 하냐며 더 언성을 높였지만 2년 전부터 기름이라면 피부에 이상이 생길만큼 보아온 활동가의 지적에 결국 고온고압 살포를 중단해야만 했다고 한다.

정 간사는 “방제는 기름을 눈앞에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며, “유화제로 녹이면 해저에 가라앉고 물고기가 먹고 그것이 결국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 고온고압으로 쏘아버린다면 그 지역 생태계는 죽고 바위틈으로 스며든 기름은 다시 바다로 흘러든다”고 강조했다.

고온고압 방식에 대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14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온고압세척 작업은 해양환경공단 측에서 진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화학제품이나 물질을 사용해서 기름을 녹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바위에 쏘아서 잘 떨어지지 않는 기름을 떼어내는 방식”이라며, 손으로 하는 방식에 비해 오히려 환경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환경운동연합의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현대오일뱅크 부두 석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온고압 방제작업 <사진=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

유출량은 5.9kℓ…당초 알려진 양의 6배 달해

한편 태안해양경찰서는 7일 수사 중간브리핑을 통해 사고를 낸 유조선 신양호가 12월 20일 오후 10시 40분경 현대오일뱅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기기조작 실수로 벙커C유 5.9㎘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고로 유출된 벙커C유는 당초 800~1000ℓ로 알려졌으나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사고 현장에서 떨어진 당진군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주변에서도 기름띠가 발견됐다며, 기름유출 규모가 훨씬 컸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방제작업과 관련해 난지도 유류피해 주민대책위원회의 최장량 위원장은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방제 작업에는 하루 300명씩 최소 10일 이상 작업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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