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색 도는 금융시장 “한 숨 돌렸다”

[파이낸셜투데이=김상범 기자] 지난 10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상당한 수준의 경기확장적 통화정책은 당분간 필요하다”는 시장 친화적 발언이 전해지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당분간 경기부양 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그동안 채권 시장을 짓눌렀던 양적완화 축소 우려감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채권 전문가들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미국 국채 금리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면서 국내 채권시장도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상당한 경기부양책 당분간 필요” 발언 호재로 작용
금리 하락 및 코스피 훈풍까지…시장 분위기 ‘급전환’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10일 전미경제연구소(NBER) 주최 행사에서 발언한 내용이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은 가운데 시장에도 오랜만에 활기가 돌아왔다. 특히 한동안 급등했던 채권 금리가 안정세로 돌아설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국내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오전 10시 30분 현재 전 거래일보다 6bp(1bp=0.01%포인트) 하락한 연 2.88%를 나타냈다.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10bp 내린 연 3.43%를 보였다.

선물시장에서 외국인과 은행이 3년 만기 국채 선물을 각각 2천404계약, 38계약 순매도했고 증권사는 1천321계약 매수 우위를 보였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 시점이 미국 금융시장 종료 후여서 미국 쪽에는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국내 시장에는 강한 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채권 금리는 지난달 20일 출구전략 시간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버냉키 의장의 발언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21일 연 3.04%를 기록해 지난해 7월 11일(연 3.19%) 이후 약 11개월 만에 다시 ‘금리 3% 시대’를 열었다.

특히 단기채보다 장기채의 금리 급등 현상이 심했다. 이는 미국 양적완화가 장기채 매입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유동성 충격은 단기채보다 장기채에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고채 2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지난달 24일 각각 연 3.85%, 연 3.92%까지 올라 올해 초(1월 2일)보다 0.55%포인트씩 증가했다.

그동안 급등세를 보였던 국내 채권 금리는 이날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장기채를 중심으로 서서히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한숨 돌린 채권시장

국내 채권금리가 하락한 것은 미국 양적완화 출구전략에 대해 시장이 막연히 갖고 있던 우려가 버냉키 의장의 발언으로 완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버냉키 의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전미경제연구소(NBER) 주최 행사에서 금리 정책과 관련해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금리를 자동으로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양적완화 축소와 통화 긴축은 다르다는 점을 시장에 강조한 셈이다.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악재는 이미 채권시장에 충분히 반영된 상태다. 따라서 시장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이 앞으로 이뤄질 금리 인상 때까지 시간을 번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에 채권시장이 쉬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만약 양적완화 축소가 9월부터 시작되더라도 이를 반영한 채권시장보다 조정을 거의 받지 않은 주식시장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미 국채 10년물 기준으로 금리가 2%대 초반(현재 연 2.62%)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채 금리가 하락한다면 국내 채권금리도 그만큼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7월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2.50%)으로 동결한 것은 국내 채권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예상에 부합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늘 국내 채권시장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과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매수심리가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낙관했다.

문홍철 연구원은 “그동안 금리가 많이 올라 채권 가격에 메리트가 생겼기 때문에 매수세가 많을 것"이라며 "양적완화 축소 우려감이 점점 사라져 금리는 하향 안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스피도 3% ‘급등’

버냉키 효과에 코스피 역시 급등세를 나타냈다, 코스피는 11일 전날보다 53.44포인트(2.93%) 오른 1,877.60에 장을 마쳤다. 지수는 전날보다 16.18포인트(0.89%) 오른 1,840.34로 장을 시작한 뒤 점차 상승폭을 키웠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버냉키 발언으로 유동성 위축에 대한 우려가 진정되면서 외국인의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은 7거래일 만에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천92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기관도 2천835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였다. 개인만 5천736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옵션 만기가 소폭의 매도 우위를 나타낼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프로그램 매매는 매수세가 강하게 나타났다.

프로그램 매매에서 차익거래(904억원)와 비차익거래(4천222억원) 모두 매수세가 강했다. 전체적으로는 5천126억원 매수 우위다.

대장주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5.13% 뛴 131만2천원에 장을 마감했다. 또한 현대차(1.37%), POSCO(2.82%), 현대모비스(5.27%), 기아차(0.99%), 삼성생명(0.46%) 등 다른 시가총액 상위주 역시 일제히 상승했다. 시총 1위 삼성전자부터 17위 LG전자까지 모두 상승 마감했다.

게다가 모든 업종이 상승세로 장을 마감했다. 특히 전기전자(4.80%), 기계(3.89%), 증권(3.21%), 제조업(3.39%), 철강금속(3.57%) 등 경기 민감주들이 크게 뛰었다.

코스닥지수도 힘을 받았다. 지수는 11.61포인트(2.25%) 상승한 527.25로 장을 마쳤다.

한편 이같이 주식시장에 ‘화색’이 돌고 있는 가운데 연준 의장의 발언이 국내 주식시장의 주가 상승에 장기적인 동력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일부 주식시장 전문가들은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데다 중국의 경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더 강하게 지수를 누르고 있다며 ‘버냉키 효과’는 단기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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