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 ‘군침’에 영세 호텔 고사 직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부대시설 부지에 들어설 예정인 비즈니스·특급호텔 건물

[파이낸셜투데이=김상범 기자] 최근 수년간 문화 ‘한류’ 현상에 힘입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서울 도심에 위치한 숙박 시설의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났는데, 특히 비즈니스 호텔의 공급 속도가 방문객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경기 불황 및 저금리 상황의 지속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던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먹거리’를 발견한 셈이다. 하지만 영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은 대기업의 진출이 달갑지만은 않다. 대기업들의 강력한 자본력에 버틸 맷집을 갖춘 업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호텔업 전반에 대한 위기설까지 등장, 영세 호텔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SK·한화·롯데·신세계·GS 등 대기업들의 ‘각축장’
공정위, “대기업 호텔, 객실 담합 및 끼워 팔기 조사 중”

최근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이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집중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급 호텔을 이미 운영하고 있던 기업들은 물론, 통신사나 항공사 등 호텔업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기업들도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처럼 대기업들이 대거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들면서 영세 호텔이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숙박 시설을 운영하고 있던 업체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즉, 호텔업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호텔의 매력?

일반적으로 비즈니스호텔은 출장 등의 비즈니스적인 수요가 많은 도심에 위치하는 호텔을 의미한다. 비즈니스호텔은 식당 등의 부대시설은 최대한 간소화하고 객실 위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이름만 들어도 말만한 ‘특급’ 호텔보다 가격을 20~30% 정도 저렴하게 책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수도권 호텔 수요는 3만6000실에 달하지만 실제 공급은 2만8000실(객실 가동률 80% 기준)에 불과, 외래 관광객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1천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비즈니스 사업을 이른바 ‘캐시 카우’ 사업으로 판단,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대기업 진출 ‘러시’

우선 기존에 특급 호텔을 운영하고 있던 삼성(호텔신라)·SK(워커힐)·한화(프라자)·롯데(롯데호텔)·신세계(웨스틴조선)·GS(인터컨티넨탈) 등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비즈니스호텔 사업 진출 의지를 밝혔다.

이 중 롯데호텔의 경우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일찌감치 진출한 바 있다. 롯데호텔은 지난 2009년 서울 공덕동에 롯데시티호텔마포를 열었고 2011년에 롯데몰 김포공항에 2호점을 오픈했다.

또한 제주시 연동, 대전 스마트시티, 울산 달동 등의 지방에도 비즈니스호텔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서울 구로 등 총 6군데에 비즈니스호텔 설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명동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고 롯데백화점 본점과 호텔이 위치하고 있어 집중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2015년 10월을 목표로 을지로2가 사거리 인근 장교빌딩 맞은편에 435실 규모의 ‘롯데시티호텔장교’가 들어설 예정이며, 명동 하이파킹 주차타워 자리에 272실 규모의 ‘롯데시티호텔명동’도 신규 오픈된다.

전통 강자들도 ‘군침’

먼저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가칭)’라는 비즈니스호텔 신규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신라는 비즈니스호텔 사업 신규 진입에 앞서 다소 특이한 방식을 도입했는데, 건물을 직접 짓고 소유하는 대신 장기 임대 방식으로 2020년까지 전국 30여 개의 비즈니스호텔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최근 1년 사이 호텔신라가 펀드·리츠 등과 손잡고 해당 계약을 체결한 비즈니스호텔만 서울 7개, 울산 1개 등 총 8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동 뱅뱅사거리 인근 부지, 역삼동 KT영동지사 부지, 서대문 옛 화양극장 부지 등이 이에 해당하며, 지난 2월에는 부동산 개발 업체인 SK D&D와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비즈니스호텔 리스 계약을 마쳤다.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은 “올해 호텔신라는 비즈니스호텔에 본격 진출한다. 오는 2017년에는 20개의 호텔에서 약 250억~300억 원의 위탁 운영 매출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세계그룹 계열인 웨스틴조선호텔 역시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진출한다. 조선호텔은 맥쿼리자산운용이 용산구 동자동에 건설 중인 약 350실 규모 호텔에 대한 20년 장기 임대 계약을 지난해 체결했다.

호텔업 ‘새내기’들의 진출

SK네트웍스와 KT는 수익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한 주유소나 전화국, 주차장 등을 호텔 부지로 선정해 비즈니스호텔을 건설 중이다. 

KT는 자회사 ‘KT에스테이트’를 설립하고 건설·부동산 분야의 전문가인 롯데건설 대표이사 출신의 이성배 사장을 영입하는 등, 향후 부동산 관련 사업에도 적극 진출해 수익다각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미 KT는 유동인구가 풍부한 서울 중구 흥인동의 KT 동대문지점을 비즈니스호텔로 용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SK네트웍스는 서울 오장동에 비즈니스호텔을 지을 예정이다. 

또 KT&G는 오는 2015년까지 서울 남대문시장 인근에 특2급 비즈니스호텔(객실 390개 규모)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안을 지난 2월 서울시에 제출하고 중구청에 건축 인허가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대림산업 역시 호텔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특히 올해를 호텔 사업에 본격 진출하는 원년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먼저 여의도 옛 대림산업 사옥 자리에 2014년 3월 준공을 목표로 260실 규모의 호텔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명동에서 쇼핑중인 외국인 관광객들

아울러 중구에 2015년 12월 430실 규모의 호텔을 오픈한다는 계획 역시 밝힌 바 있다. 또한향후 을지로와 동대문은 물론 강남 테헤란로 인근에도 비즈니스 호텔을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관광객 급감세…호텔업계 수익성 급속도로 악화
수년간 호텔업계 공급과잉 전망…‘호텔리스크’ 발생 우려

대림산업은 자회사인 ‘오라관광’을 통해 이미 제주 그랜드 호텔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즉, 대림산업이 전체적인 사업 개발과 호텔 시공에 직접 참여하고 호텔과 리조트 분야 전문인 오라관광이 호텔의 운영을 맡는다는 방침이다. 

손해보험 업계 선두주자인 삼성화재 역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내에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삼성화재는 지난 2011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지를 매입했지만 인근에 위치한 풍문여고와 200m 이내에 붙어 있어 학교보건법에 잠시 발목을 잡혔다. 하지만 올 초 중구교육청의 승인을 받는데 성공했다.

영세 호텔 ‘울상’

최근 대기업들이 너도 나도 비즈니스호텔 운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영세한 규모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은 말 그대로 ‘울상’이 되고 말았다. 

재벌 특급 호텔들이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면 마케팅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업계의 판도를 크게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아져, 영세 업체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실제 일부 호텔들이 객실 담합 및 끼워 팔기 등으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으면서 대기업들의 비즈니스호텔 사업 진출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국내 비즈니스호텔의 재정 상태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악화됐다는 분석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시사저널’은 신한은행 보고서를 인용, 올해 들어 호텔 및 숙박업의 여신이 크게 증가했다는 내용을 알린 바 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2013년 2월 기준 신한은행의 기업 대출액은 87조1179억원 수준이었는데, 이 중 호텔 및 숙박업의 여신이 10위에서 4위로 6계단이나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여신 규모 역시 2조4749억원으로 2008년 말에 비해 8000억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30%에 육박하던 부동산 임대 및 공급업·금융업·건물건설업 등의 여신이 20% 수준으로 크게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라는 설명이다. 

해당 보고서에는 ‘원화 가치 상승으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무분별한 비즈니스호텔 난립으로 호텔 및 숙박업계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중소 호텔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줄도산?

아울러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류와 원화 약세로 매년 10% 이상 증가하던 외국인 관광객 수도 감소세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나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비즈니스호텔 사업이 일반인들의 예측과는 달리 그렇게 매력적인 사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업계 전반적인 ‘줄도산’이 예상된다는 분석까지 등장해 충격을 더하고 있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두 자릿수 성장세는 끝이 났고, 11월에는 심지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말았다는 것. 2010년 이후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금융권에서는 호텔·숙박업 여신이 크게 증가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향후 개업할 비즈니스호텔이 상당수 남아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정부는 7월 호텔 건립 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관광숙박 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관광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그 결과 상업 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600~1000%에서 900~1500%로 확대되면서 서울 등 관광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 건물을 비즈니스호텔로 전환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호텔 건립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목적법인(SPC)들 역시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자체의 인허가를 받은 비즈니스호텔이 완공되면 호텔 산업 전반의 리스크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사저널’이 입수한 신한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등록 호텔은 2007년 125개(2만1962객실)에서 2011년 148개(2만5160객실)로 늘어났다. 아울러 오는 2017년까지 설립이 추진 중인 호텔도 128개(2만7639객실)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로 2016년을 맞이할 경우 호텔 및 객실 재고율이 2011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호텔업체들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결국 그 피해는 영세 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차하면 순식간에 문을 닫게 될 입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불황 등으로 인한 금융권 수익이 낮아지면서 부동산 등의 사업 영역 확장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자신들의 건설하고 있는 비즈니스호텔의 타겟 자체가 소규모 호텔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비즈니스호텔 사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세 업체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게 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향후 비즈니스호텔의 운영 실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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