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지나면 결국 해 뜬다”

[파이낸셜투데이=김상범 기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향후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빠르면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히자,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해 1,100원대 중반으로 치솟았으며 채권값 역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 역시 동반 하락세를 보이며 주식시장의 문을 열었다.

증시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일정부분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미국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 역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출구전략 신호탄’ 달러화 탈 아시아…증시 급냉각 우려
미국 ‘경기 호전’ 반영…대미 수출 확대 ‘기대감’ 의견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마침내 본격화됐다. 달러화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처럼 금융시장에 ‘핵폭탄’급 불안요소가 등장하면서,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에 더욱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시장금리 상승은 결국 가계와 기업의 자금부담을 높아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면 전 세계 수요감소에 따른 수출악화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양적완화 축소를 하반기 경제운용의 핵심 불안요인으로 지목하고, 경제회복 노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대응전략 마련에 나섰다.

출구전략 ‘신호탄’

지난 19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은 양적완화 축소시기를 ‘연말’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축소를 지속해 중반쯤에 중단하겠다고 명확한 스케줄까지 제시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양적완화 축소 방침이 예고됐지만, 연준의 이러한 의사표명은 저금리를 타고 전 세계로 빠져나갔던 달러화가 미국 본토로 재유입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양적완화 정책이 만들어 놓은 자산시장에서의 ‘미니버블’을 차츰 제거하겠다는 연준의 의지로 분석된다.

연준의 이 같은 조치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시작된 미국 금융완화 정책의 첫 단계 출구전략이다. 이를 통해 풀려나간 달러화가 유입되고 실업률, 인플레이션 목표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연준은 저금리 정책을 정상화하는 단계를 밟게 된다. 0~0.25%인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앞서 연준은 2004년 4월 초저금리를 통한 경기부양을 마무리하면서 2006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1%대에서 5.25%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전 세계 주식시장은 5개월간 7.5% 하락했고 코스피도 25%나 폭락한 적이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실업률(5월 기준 7.6%)과 인플레이션(4월 기준 1%대)으로 볼 때 현재는 금리정상화를 하기 무리”라며 “버냉키 의장은 대신 양적완화 축소를 언제든 실시해도 무방한 상태라고 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출구전략의 종착지는 그간 연준이 매입해왔던 주택담보부증권을 매각하면서 시장개입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한국 경제 ‘최대 복병’

경제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화의 유출로 이어져 신흥국을 중심으로 시장 변동성을 확대하고 불확실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위험도가 큰 신흥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많이 빠져나가 당분간 미국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미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가치는 오름세로 전환했다. 주식시장도 급등락을 연출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3천281억달러에 달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15개월째 이어져 온 점,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35%에 그치는 점 등 양호한 여건을 감안했을 때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양적완화 축소는 최저점을 보이는 국내 시장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미국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시장금리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가계와 기업 모두에게 악영향을 준다. 정 수석연구원은 “1천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가계는 이자부담이 커져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조선, 해운, 건설 등 취약업종의 기업은 금리부담과 함께 회사채 발행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외화조달 측면에서는 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가 발행하는 외채의 가산금리가 올라가고 CDS프리미엄도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수출입은행이 호주 금융시장에서 3억달러 이상의 캥거루 본드를 발행하려던 계획을 잠정 연기하고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대기업이나 공기업도 이달 외화채권 발행을 검토했다가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하면 실물경제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재정난에 빠진 유로존을 대신해 수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경기가 위축하면 하반기 한국의 상품수출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역으로 생각해보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조치는 미국 경기의 호전을 반영하는 만큼 미국의 수입수요 증가에 따른 대미 수출확대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그 수요가 증가할 때까지 실물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책은?

정부는 글로벌 양적완화와 관련한 경제 불확실성을 하반기 경제운용의 ‘중요한 변수’로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 움직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상황별 시나리오란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판단해 관계기관과 함께 만들었다. 양적완화로 인한 자본의 유출입도 있을 수 있고 수출 등 실물부분의 영향도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은 내달 19~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국제공조를 통한 금융시장 불안 완화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출구전략에 따른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의 금리결정은 기본적으로 국내 물가, 경기 흐름을 봐가면서 선제적으로 이뤄지는데,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보면 버냉키의 이번 출구전략 발언으로 당장 실물경제에 큰 영향은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채권을 중심으로 시장금리가 오르면 기준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의 기준금리는 경기 흐름을 감안했을 때 내년 이후에나 인상이 가능할 전망이지만 미국 출구전략의 영향으로 시장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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