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패자부활 가로막는 병폐로 지적

[파이낸셜투데이=박단비 기자] 연대보증은 자신뿐 아니라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빚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금융의 독버섯'으로 지목돼 왔다.

혈연이나 인정에 묶여 연대보증을 섰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막대한 빚을 짊어지고 빚 상환의 노예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금융권의 연대보증 요구를 무시하기 더욱 어려워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기업을 하다 망하면 바로 노숙자로 전락한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가 제2금융권에 남아 있는 연대보증 제도를 철폐하기로 한 것도 개인이나 중소기업인이 연대보증에 발이 묶여 채무상환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재기의 기회마저 완전히 상실하는 폐해를 없애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연대보증, 채무자 가족·친척·지인까지 `노예계약'

1998년 아버지를 여읜 상속인 A씨는 아버지가 17년 전 남긴 연대보증 채무를 떠안게 됐다.

A씨는 섬유업체를 운영하는 형을 위해 다른 친척들과 연대보증을 섰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사업은 부도났고 이 와중에 형마저 세상을 떠나자 채권자들은 연대보증에 따른 채무 이행을 지속적으로 독촉했고 A씨가 가진 부동산, 예금 등을 모두 경매처분·압류했다.

설상가상으로 A씨는 신용관리대상자로 등록돼 정상적인 금융거래마저 막혔다.

A씨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월세 방에 살면서 친척들과 빚을 갚고 있다.

중소기업 대표로 재직하며 회사에 대해 연대보증을 선 B씨는 퇴임 후 경영권과 보유주식을 비롯한 일체의 의무를 후임 대표에게 양도했다.

그러고 나서 후임 대표와 금융회사를 방문해 대표자 변경에 따른 연대보증인 교체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자 연대보증인을 바꾸지 않은 금융회사는 전 대표인 B씨의 예금을 압류하는 등 추심행위를 자행했다.

이들은 모두 연대보증 때문에 빚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사례다.

금융회사가 담보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관행처럼 연대보증을 요구한 탓에 발생한 부작용이다.

금융위가 2011년 12월 IBK경제연구소에 의뢰해 420개 신생 중소기업의 금융환경을 조사한 바로는 25.1%가 직·간접적으로 연대보증의 폐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연대보증의 병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5월 18개 국내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의 개인사업자 연대보증을 원칙적으로 폐지했다.

금융기관 대출이 있는 개인사업자는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연대보증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금융위는 연대보증을 선 개인사업자 80만명 가운데 44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200만명 족쇄 채운 2금융권 연대보증도 폐지

정부가 개선방안을 마련했지만 제2금융권은 여전히 기존의 연대보증 기준을 적용받았다.

정작 서민과 중소기업이 주로 찾는 2금융권은 연대보증 개선책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셈이다.

현재 제2금융권의 연대보증 규모는 대출 연대보증 51조5천억원, 이행 연대보증 23조3천억원으로 전체 거래액의 약 14%에 달한다.

대출 연대보증인 141만명, 이행 연대보증인 55만4천명 등 200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연대보증이라는 족쇄에 매였다.

금융위는 이달 내 제2금융권의 연대보증까지 완전히 없애는 후속 조치에 나서 연대보증의 폐해를 제대로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금융회사가 연대보증에 의존하려는 탓에 패자부활이 안 되고 있다"며 연대보증에 칼끝을 겨눴다.

연대보증은 창업하거나 도전하려는 사람한테 한번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상당히 두려움을 안기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다.

금융회사가 여러 가지 기법을 발굴해 대출과 회수를 하려는 대신 연대보증이라는 손쉬운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됐다.

신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연대보증은 원칙적으로 없앤다"며 "1금융권은 이미 폐지했고 이번에 2금융권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마찬가지 계획을 보고했다.

금융위는 이미 연대보증 전면 폐지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고 이달 말까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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