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주가 폭락하자 지분확대·상속·증여 “이때다

주가 급락으로 이른바 ‘개미’들의 시름이 깊은 가운데, 재벌 일각에서 최근의 폭락장을 재산 불리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주주나 고액 재산가들이 주가가 하락했을 때 지분 확대에 나서고, 심지어 상속세나 증여세 같은 세금을 아끼기 위해 주식·펀드를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도 포착되고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으로 푸념하는 사이 재벌들은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주식이나 펀드를 증여할 호기로 여기고 적극 매수에 나서고 있다. 지난 외환위기 때의 풍경을 재현하는 듯해 이를 바라보는 개미 투자자들은 질시 섞인 눈총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풍림산업, 능률교육, 보령제약 등은 최근 주식을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증여했다.

지난달 15일 이필웅 풍림산업 회장은 아들, 손자 등 친인척 8명에게 주식을 증여했고, 이 회장의 아들인 이윤형 전무는 20만주를 증여 받아 경영권 기반을 확고히 했다. 주식 수증자 중에는 2001년생도 있었다.

지난달 7일에는 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이 사회복지재단인 보령중보재단에 4020주를 넘겼고, 8월 중순에는 능률교육 이찬승 사장이 부인과 자녀에게 각각 9만주를 증여했다. 펀드의 경우도 30~50% 손실 난 펀드를 환매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문의가 증권사마다 늘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모 지점장은 “처음부터 아이 명의로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많았지만 최근엔 자신 명의의 펀드를 증여하기 위해 세금 문제를 묻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반토막 난 펀드를 가지고 속 끓이는 것보다 사전 증여해서 관리 부담도 덜고 세금 부담도 줄이려는 의도인 것이다.

대우증권의 모 연구원은 “보통 주식시장 하락기에 최대주주나 기업 회장들이 2세에게 주식을 통해 부를 이전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주식이나 펀드의 경우, 증여시 가격으로 세금이 산정되기 때문에 대주주나 재산가들은 향후 상속시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급락장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법상 증여 후 10년 이내에 상속이 이뤄지면 증여재산이 상속재산으로 합산되는데, 증여 후 주가가 오르더라도 상속재산에 합산되는 금액은 상속시점이 아닌 증여시점 전후 2개월의 평균 주가로 책정되고, 현 수준보다 주가가 더 하락하면 3개월 이내에 증여를 취소할 수도 있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환매하기에는 손실폭이 너무 크고, 증시가 앞으로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고 증여를 하는 고액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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