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태풍’에 나 떨고 있니?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연말 재계의 임원 인사가 한창인 가운데 올해도 글로벌 경제위기의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확실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인사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총수 일가 2,3세가 경영 전면에 배치되면서 경영진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는 양상도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

또한 이번 재계인사에 주목해야하는 부분 중 하나는 ‘코드인사’ 여부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바람 속에서 코드인사를 벌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주로 세대교체를 통해 장기불황에 대비하면서 기업스타일에 맞게 자연스러운 효과를 내는 한편 홍보와 대외협력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사를 단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인사를 단행한 그룹의 인사구조를 살펴보는 한편, 아직 인사를 이루지 못한 기업에 대한 예상을 <파이낸셜투데이>가 짚어봤다.

연말 재계의 임원인사이동 계절이 다가왔다. 삼성, LG, GS, 코오롱그룹 등이 내년도 그룹을 이끌어갈 CEO들을 내정한 반면 현대차, SK, 한화, 한진 등이 사장단 임원 인사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임원인사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총수일가의 승진여부와 실적에 대한 구조조정과 세대교체. 그리고 대통령, 정부고위 관료와의 유대관계 등 꼽을 수 있다. 또한 SK와 한화와 같이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그룹의 사장단 인사 진행여부도 주목해야 하는 부문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5년 만에 한번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의 영향으로 기업들은 정치권력에 대한 코드를 맞추는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예상도 눈에 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과거와는 달리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이 경제 분야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자칫 정치권 코드인사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예상보다 일찍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후계구도 본격화

지난 5일 삼성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부회장 승진여부였다. 이재용 사장은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과 함께 나란히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 내정자는 지난 2009년 부사장, 2010년 사장으로 각각 승진해 이번 사장단 인사가 조심스럽게 점쳐졌던 상황이었다. 관심을 모았던 오너일가의 이부진 호텔신라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이번 승진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삼성그룹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7명, 전보 8명 등 총 17명 규모의 사장단 인사를 내정해 발표했다. 사장단 인사의 규모는 작년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6명, 전보 9명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박근희 부회장 내정자는 공격적인 영업을 전개하며 시장지배력을 확대한 점을 인정받아 부회장에 오른 것으로 재계는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과 더불어 주목 받았던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은 이번 승진에서 제외되면서 경영승계가 이 부회장쪽으로 쏠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두 딸의 경우 호텔신라와 제일모직의 실적이 떨어진 이유라고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 박원규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삼성코닝의 대표이사를 맡고 삼성중공업 박대영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미래전략실의 임대기 부사장과 이인용 부사장도 승진 명단에 포함됐다. 임대기 사장은 제일기획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인용 사장은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 사장으로 임명됐다.

강유석·김반석 ‘2선 퇴진’

이보다 일주일 가량 앞선 지난달 29일 LG그룹은 LG화학‧LG디스플레이 등 10개 계열사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문은 강유석 ㈜LG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반석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모두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는데 있다.

▲전 (주)LG 강유식 부회장(좌), 전 LG화학 김반석 부회장.
 

재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다”며 “엄격한 성과주의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포스트 구본무 체제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회장은 지주회사인 ㈜LG를 떠나 LG경영개발원으로 김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강 부회장은 1997년 회장실 부사장을 맡은 뒤 줄곧 구회장을 보좌해 왔다. 강 부회장의 역할은 대부분 조준호 ㈜LG 대표이사 사장이 맡게 된다.

성과주의 광풍속 오너일가 세대교체 시작
신상필벌 스타일…그룹 스타일 맞춘 인사

이로써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부회장 중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과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만 경영 일선에 남게 됐다.

전자업계의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그에 반해 LG전자는 올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LG전자의 핵심 사업인 HE(TV)·MC(휴대폰)·HA(가전)·AE(에어컨) 등 주요 4개 사업본부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번 더 믿어 보자는 복안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HA 사업본부장인 신문범 부사장이 교체됐지만 이는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중국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사장급 이상 승진자가 올해 5명으로 지난해 2명보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화를 중시하던 그룹 문화에 경쟁요소가 합쳐졌다”며 “향후 시너지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 이마트·백화점 대표 교체

신세계그룹도 지난 1일 사장단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대표를 모두 교체하는 등 사상 최대로 이뤄졌다. 신세계는 사장 승진 1명, 대표이사 내정자 7명 외에 승진 39명(부사장급 5명), 업무위촉 변경(10명) 등 총 57명에 대한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마트 대표이사에는 그룹 경영전략실장으로 인수·합병(M&A) 등 그룹의 주요 업무를 총괄했던 허인철 사장이 내정됐다. 후임 경영전략실장에는 김해성 신세계인터내셔널 대표이사가 사장 승진과 함께 발탁됐다. 신임 김 사장은 그동안 신세계인터내셔널을 사업과 규모 확대에 따른 공로를 인정받았다. 백화점 대표이사에는 백화점 판매본부장인 장재영 부사장이 내정됐으며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계열사 6곳의 대표도 교체됐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권 곤고히 하면서 최근 실적과 관련된 신상필벌의 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부회장의 가신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룹 장악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GS, 오너 3세의 약진

지난 4일 임원인사를 단행한 GS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의 허창수 회장의 사촌인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허창수 회장의 동생인 허진수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게 되면서 투톱 체제를 갖추게 됐다.

또 오너 3세의 약진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과 허연수 GS리테일 사장의 승진으로 세대교체의 서막을 알렸다.

코오롱그룹이 지난달 30일 대표이사 선임과 승진 5명 등 총 28명에 대한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창립 60년 만에 첫 여성 CEO가 탄생됐다는 점이다.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략사업본부장은 공동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공동대표에는 이두원 부사장, 코오롱웰케어 대표에는 김경용 전무, 덕평랜드 대표에는 스위트밀 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수 전무가 선임됐다.

조용하지만 화려하게…여성·홍보인사 중용
다가오는 대선 맞춤인사…‘코드VS反코드’

코오롱이 40대 여성 CEO를 배출한 것처럼 올해 임원 인사에서도 여성 파워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2일 조직 개편을 단행한 KT는 MBC앵커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뒤 낙하산 인사라고 오명을 받아온 김은혜 전무를 신설 커뮤니케이션 실장에 내정하며 KT역사상 첫 여성 홍보총괄 임원이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KT가 대외협력 채널에 김 전무를 내정한 것은 여성대통령 당선과 청와대 출신이라는 정치적 관계를 두루 감안한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홍보임원 ‘승승장구’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홍보 임원의 약진이다. 삼성그룹의 이인용 미래전략실 부사장인 커뮤니케이션 팀장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LG그룹도 유원 상무와 전명우 LG전자 상무, 조갑호 LG화학 상무 등 이례적으로 홍보 임원 3명 모두 전무로 승진했다.

또 현대중공업 홍보임원 김문현 상무와 김승일 코오롱 홍보담당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한솔그룹 홍보를 총괄하는 김진만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이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정책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대기업 규제가 본격적으로 강화되면서 대관 업무와 국민·언론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판단해 홍보조직 강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재계 2위의 현대차그룹은 아직 내년도 사장단 및 임원인사이동을 단행하지 않았다. 이달 말 인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인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부회장의 파워 확대를 통해 추가로 다른 계열사에서 보직을 맡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여기에 최근 북미 지역에서 터진 연비 과장 문제와 비정규직 노조 문제에 따른 문책 인사가 예상되고 있어 대대적인 인사 태풍이 몰아칠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의 올해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한편 SK그룹과 한화그룹은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어 연말 정기 인사가 불투명해 보인다. 통상적으로 12월 임원 인사를 단행한 SK그룹은 이달 28일로 예정된 최태원 회장의 선고공판 이후에 인사발령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월 정기인사를 단행했던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어서 3월 이후에나 인사 조직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한진그룹은 이달 말 인사이동이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해를 넘겨 올해 초 임원인사를 단행했지만 올해는 연말 임원인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경영본부장을 비롯해 조현아 전무 조현민 상무 등 한진가 3세의 승진여부가 주목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예년 보다 한 달 늦은 내년 1월초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인 것을 고려하면 인사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이르면 내년 1월 말 정기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인사이동의 특징을 살펴보면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성과주의를 표방한 인사가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 오너 3·4세의 약진이 눈에 보이는 가운데 정치권의 줄타기와 같은 코드인사는 역풍을 우려해 비교적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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