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수익구조 변하며 ‘확률형 아이템’ 등장
갈수록 확률은 낮아지는데 성능은 오르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형 아이템에 극심한 과금 피로도 호소하는 게이머들
‘포트나이트’, 신규 수익모델 ‘배틀패스’ 가능성 보여줘
“배틀패스, 게임 수명 주기 늘리는 데 긍정적 영향”
게임 자체를 즐길 기회 뺏을 수 있다는 지적도

배틀패스를 도입한 게임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트나이트, 배틀그라운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서든어택. 사진=각 게임 홈페이지 캡처

게임의 수익구조가 월정액에서 부분유료화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꾸준한 매출이 필요했던 게임사들이 정기적으로 ‘랜덤박스’라고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게임 시장이 모바일게임 위주로 재편되면서 점차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이 갖는 영향력이 커졌고, 많은 게이머가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극심한 과금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여러 게임사가 ‘배틀패스’로 불리는 구독경제 모델 도입 등 과금 피로도 감소에 나섰다.

◆ 게임, 접속할 때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구조로 변화

게임사가 게임을 만들어 CD에 담아 패키지 하나를 팔던 시기에서 이제 게임 자체는 무료로 즐길 수 있지만, 다운로드 콘텐츠(DLC)·확률형 아이템 등으로 본 게임을 보완하고 유저 편의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국내 게임 시장은 ‘엔딩’이 없이 지속적인 콘텐츠 추가 업데이트가 이뤄지는 온라인게임 위주로 발달해왔다.

90년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은 매월 계정 접속을 위해 월 2~3만원대 요금을 내야 했다. 이제는 대중화된 부분유료화 시스템은 넥슨이 1999년 10월 출시한 ‘퀴즈퀴즈’가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인기 온라인게임들은 주로 MMORPG였는데, 한 번 접속하면 오래 플레이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타크래프트처럼 한 게임에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고, 단판으로 진행되는 게임들은 주로 패키지게임 형태였다.

하지만 넥슨의 퀴즈퀴즈는 캐주얼게임이었다. 출시 초기 무료로 서비스되던 퀴즈퀴즈는 2000년 1월 월정액을 도입해 상용화됐지만, 유료화 직후 70%가량의 유저가 떠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퀴즈퀴즈는 MMORPG처럼 또 하나의 세계에서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모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온라인으로 가볍게 퀴즈를 푸는 게임에서 접속하려면 일정량의 월 요금을 내야 하는 부분이 퀴즈퀴즈 유저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이에 넥슨은 접속은 무료로 할 수 있게 하고,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 꾸미기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월정액에 부담을 느끼던 청소년 게이머들이 대거 늘어났고, 남들과 다른 ‘개성’을 추구하면서 매출도 함께 상승했다. 이후 넥슨은 처음부터 부분유료화를 도입한 ‘크레이지아케이드’를 선보였고, 다른 게임사에도 부분유료화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월정액에서 부분유료화로 수익구조가 변하면서 고정적인 매출이 사라진 게임사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중 하나가 ‘확률형 아이템’이다. ‘랜덤박스’ 혹은 ‘가챠’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1만원을 주고 게임 내 재화를 사서 ‘뽑기’를 하거나 1000원에서 10만원 상당의 아이템이 무작위(랜덤)로 나오는 상자를 사서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매출을 끌어올리던 게임사들은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캐릭터, 장비 등을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얻을 수 있게 하기도 했다. ‘돈만 있으면 다 이길 수 있다’는 ‘페이 투 윈(Pay to Win, 이하 P2W)’의 시작이다.

◆ ‘배틀패스’, 확률형 아이템 대안으로 급부상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P2W은 점차 심해졌다. ‘무너진 밸런스가 캐시템(유료 아이템) 수요를 만든다’는 말이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컨퍼런스에서 나오기도 했다. 접속은 무료로 할 수 있지만, 남들과 함께 게임을 하려면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캐릭터를 뽑거나 장비를 갖춰야만 하는 일이 여러 게임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복권 당첨 확률만큼 낮은 확률이지만, 한 번 얻게 되면 일정 기간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월등하게 앞설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들이 속속 등장했다. 몇 주에서 몇 달이 지나면 더 좋은 성능의 아이템이 출시되는 게임도 많았다.

패키지게임(콘솔게임) 시장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게임을 한 번만 사면 됐는데, 이제는 미완성된 게임을 출시하고 DLC로 모자란 부분을 추가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재밌으려고 하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돈을 써야만 하는 주객전도 상황이었다. 온라인게임도, 패키지게임도 게임을 하려면 이전보다 많은 돈을 내야 하게 되면서 게이머들의 과금 피로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이미 출시한 게임의 추가 콘텐츠를 DLC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콘솔게임계에서는 ‘시즌패스’라는 새로운 수익구조가 탄생했다. 게임 출시 이후 일정 기간 추가될 DLC의 보유권을 한 번에 구매한다는 개념이다. 기간제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이후 발매될 모든 DLC를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온라인게임 쪽에서 ‘배틀패스’가 나왔다. 일정한 기간 특정 게임 플레이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면 각종 게임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배틀패스는 시즌패스보다 늦게 나온 만큼 보다 정교하게 설계됐다. 예를 들어 신학기 기념 이벤트를 진행할 때 배틀패스를 구매하지 않고도 무료로 진척도를 채우면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배틀패스를 구매하면 무료로 플레이했을 때보다 더 좋고 더 많은 ‘프리미엄 보상’이 주어진다.

여기에 확률형 아이템을 벨기에,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 ‘도박’으로 규정하는 등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많은 게임사들이 점차 자사 게임의 수익구조에서 확률형 아이템 의존도를 낮추고 배틀패스 등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게 됐다.

◆ 장르 불문 ‘배틀패스’ 도입하는 게임사들

콘솔게임계의 시즌패스는 일각에서 게임업계가 게이머들의 기대치를 미끼로 나오지 않은 상품을 사게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같은 게임 안에서도 DLC별로 품질이 다를 때가 있었고, 품질이 일정하더라도 유저 반응이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플레이하면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 미리 알려주는 형태인 배틀패스의 경우, 배틀패스를 구매했다고 바로 게임 재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를 해야만 하므로 지속적인 접속을 유도하게 되고, 다른 유료 아이템보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가 좋았다. 가성비를 본 게이머들이 다른 시즌에도 배틀패스를 사게 되면서 게임사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자리잡게 됐다.

실제로 포트나이트,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등 배틀패스 시스템을 도입한 게임들이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2020년 1+2월호)’에 따르면 2018년 배틀로얄 모드에 배틀패스를 도입한 포트나이트는 일일 최대 5000만달러(한화 약 611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가장 최근에 배틀패스 효과를 본 게임으로는 서든어택이 꼽힌다. 서든어택은 4일 코로나19 확산으로 게임 사용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게임트릭스 점유율 8.52%, 더로그 8.31%를 기록했다. 넥슨에 따르면 이는 2017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점유율이었고, 최고동시접속자수는 2016년 4월 이후, 일간접속자수는 2017년 5월 이후 최고 수치였다. 넥슨은 시즌제도 안착 및 신규 생존모드 추가에 구독경제 모델이 적용된 ‘서든패스’의 인기가 힘을 보탰다고 분석했다.

배틀패스는 전 세계적으로, 게임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게임에 도입되는 추세다. 게임 분야 시장조사업체 게임리피너리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미국 내 매출 상위 100대 게임 중 배틀패스를 수익원으로 하는 게임은 2%였지만, 2019년 12월 초에는 20%로 증가했다. 중국의 경우 매출 100대 모바일게임 중 배틀패스 적용 게임 비율이 2018년 12월 3%에서 2019년 12월 30%대로 늘었다.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를 작성한 시장조사업체 스트라베이스는 “배틀패스는 게임은 무료로 이용하고, 더 큰 즐거움을 얻으려면 돈을 내라는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 F2P)’ 모델의 기본 원리에 위배되지 않아 기존에 프리미엄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에 적용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면서도 “하지만 배틀패스가 보상을 위해 게이머에게 계속 게임 플레이를 요구하는 점은 역설적으로 게임 자체를 즐길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틀패스와 관련해 환불 정책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배틀패스가 대세 수익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선 이러한 문제점을 적절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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