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변인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랜덤박스, 뽑기, 가챠로 불리는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예고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노리는 게임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게이머가 국내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수익구조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고, 사행성 우려가 끼어들었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공정위의 개입은 타당해 보이지만, 예고된 가이드라인은 게이머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듯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뿐이다.

거기다 국내 기업들은 국내법에 근거한 가이드라인 같은 정책을 의무적으로 따르지만 글로벌기업들은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정감사에 왔던 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기업 대표들이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모른다”로 일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거의 모든 기업이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의 자율규제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10대 한국게임학회장으로 취임한 위정현 학회장도 언급한 적 있다. 확률형 아이템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먼저 확률을 공개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게임사의 ‘확률 조작’을 우려하는 게이머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데스티니 차일드’처럼 확률을 공개했어도 실제로 수백, 수천만원을 쓴 게이머들의 사례가 1만여건 이상 모여 게임사가 공개한 확률이 실제 뽑기 확률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던 사례가 있다.

확률을 공개하고 하지 않고 문제보다 게이머들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을 뽑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가 낮은가 하는 부분이다.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도 다수의 게이머가 체감상 내가 원하는 것이 잘 나온다고 느낀다면 많은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한다.

대표적인 예가 ‘브롤스타즈’다. 현재 국내 게임 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의 뽑기 확률을 자율적으로 공개하는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도 브롤스타즈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핀란드의 게임사 슈퍼셀은 단 한 번도 국내 게임 업계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았다. GSOK는 지난해 4월부터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물을 발표해오고 있다. 슈퍼셀은 14회에 걸친 GSOK의 미준수 게임물 공표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그래도 브롤스타즈는 흥행했다. 브롤스타즈는 모바일 빅데이터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2019 총결산 대한민국 모바일 앱 사용자 순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이용자 254만여명으로 게임 카테고리 1위였다. 앱 분석 플랫폼 앱애니의 ‘2020년 모바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월간 사용자 수(MAU)가 가장 높았던 게임 2위에도 올랐다.

게이머가 확률형 아이템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이라고 하면 몸서리를 치는 이유 첫 번째는 확률형 아이템이 대부분 밸런스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있어도 게임을 공정하게 즐기는 것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외형을 변경하는 ‘스킨’ 같은 상품은 없어도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수집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결제한다. 하지만 대부분 확률형 아이템은 없으면 게이머의 뇌리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진도를 나가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확률형 아이템이 주는 과금 피로도를 없애겠다고 ‘착한과금’을 선언하는 게임들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확률형 아이템이나 시간 단축형 아이템을 통한 수익구조나 똑같이 결제하지 않으면 ‘남들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소리를 듣긴 한다. 그래도 최근 게임 업계에서 수익구조를 대부분 플레이하면서 얻을 수 있지만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 게이머들이 느끼는 극심한 과금 피로도를 줄이고 밸런스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두 번째 이유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너무 낮은 것이 문제다. 게이머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을 수 있다는 기약도 없는 고성능의 아이템이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써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로또 2등에 당첨될 확률에 비견된다는 지적이 나온 적도 있었다. 한 푼도 돈을 쓰지 않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이 수천만원을 썼지만 운이 없는 사람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 게임에 일명 ‘천장’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좋은 것을 뽑을 수 있는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보통 마일리지 시스템을 채택해 30~60만원을 쓰면 최고등급의 아이템 혹은 캐릭터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지난해 여름 ‘에픽세븐’ 유저간담회에서 김형석 슈퍼크리에이티브 대표가 ‘월광소환’을 40회하면 ‘월광 5성 소환 기회’를 주겠다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지자 발언을 철회한 적 있었다. 당시 에픽세븐의 월광소환은 1회 소환에 현금 33만원가량의 재화가 필요했는데, 40회는 현금 1320만원에 달한다.

사실 확률을 공개하고 안하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확률이 낮은데 공개하지 않으면 확률 조작 논란이 생기지만 확률이 높은데 공개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많은 사람이 즐긴다. 지난해 여름 한국 게이머들이 “한국 게임사들에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며 “한 번 제대로 망하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분노를 쏟아냈던 것은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확률이 높은지 낮은지 객관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공정위가 하려는 가이드라인 도입은 전시행정이나 다름없다.

파이낸셜투데이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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