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많은 보험사들이 어린이가 가입하는 어린이보험을 어른들에게 판매하고 있고, 그것도 자랑하듯이 태연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의아하고 황당하다. 어린이보험의 가입자 중 30%가 어른이고, 급기야 어른이 가입하는 어린이보험이란 의미의 ‘어른이 보험’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험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일부 보험사들이 먹거리(돈벌이)를 확보하고 실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어린이보험을 변칙적인 방법으로 판매해 벌어진 일이다. 즉, 보험사들이 상품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어린이보험의 가입연령을 15세에서 30세로 크게 확대해서 20대의 어른들도 보험료가 저렴한 어린이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2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보험가입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건강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주저하는 것도 있겠지만 장기 불황에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주머니가 가볍기 때문일 것이다. 20대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실손보험, 암보험 등이 필요한데, 여기에 각종 특약을 부가하다 보면 보험료가 크게 올라 보험 가입이 어려워진다.

이에 보험사들이 15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어린이 보험의 가입 연령을 의도적으로 30세로 올려서 20대의 성인들도 가입할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이른바 ‘어른이 보험’이 탄생한 것이다. 20대가 어린이 보험을 가입하면 성인보험(실손보험, 암보험 등)에 비해 보험료가 최대 30% 저렴하므로 보험사는 판매가 수월하고 가입자도 그만큼 부담이 적어진다.

이처럼 어린이 보험의 보험료가 성인 보험에 비해 크게 저렴한 이유는 ①어린이보험의 손해율이 성인보험보다 양호하고 ②사업비(부가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적게 부가돼 있기 때문이다. ③ 또한 성인 보험은 가입 후 3개월까지 면책기간이 있거나 1~2년간 감액기간이 있어서 이 기간 중 질병에 걸리면 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소액의 금액만 받을 수 있지만, 어린이보험은 가입 직후부터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일부 보험사가 잔꾀를 부려서 어린이보험의 가입연령을 높이고 저렴한 보험료를 내세워 20대 성인에게 어린이보험을 판매한 것이 성공했고, 이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다른 보험사들도 이를 따라서 경쟁적으로 ‘어른이 보험’ 판매에 매달리게 됐다. 그래서 현재는 많은 보험사들이 어린이보험을 당연한 것처럼 성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른이 보험 판매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보험은 어린이가 가입하는 보험이지 어른들이 가입하는 보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고 상식에도 어긋난다. 어른이 보험이 비정상적이고 부당하며 변칙이라 보는 이유다.

많은 보험사들이 20대의 어른들에게 보험료를 아끼려면 어린이보험에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마치 어른들에게 “버스 요금을 아끼려면 성인요금을 내지 말고 학생이라고 속여 학생요금을 내라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러므로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아낀다는 명분으로 어른들에게 양심 불량을 권유하고 유도하는 셈이다.

더구나 해당 보험사들은 어린이보험을 어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잘못인 줄조차 모르고 있다. 오로지 돈벌이와 실적 경쟁에 정신이 팔려 뭐가 잘못인지조차 모르고 지금도 너스레를 떨며 어른이 보험을 열심히 판매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보험사들이 어른이 보험을 판매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할망정 변칙과 양심 불량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부끄럽고 창피하며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어린이에게 “어린이보험을 어른들에게 파는 일이 올바른 것인가”라고 물어보시라.

금감원이나 금융위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험사들의 어린이보험 변칙 판매에 대해 방치하고 묵인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른이 보험이 신문에 수 없이 보도되었는데 금감원이나 금융위는 아는지 모르는지 한 마디 말이 없고 보험사들의 변칙에 대해 아무도 잘못을 지적하거나 바로 잡으려 한 적이 없으니 그들의 존재이유가 의심스럽다.

여러 신문사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보험의 판매를 앞다퉈 보도했지만 아무도 잘못을 지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린이 보험의 가입연령을 만 30세까지 늘려 성인들에게 가입의 문을 확대했다”고 보험사 대변인 노릇을 하며 호들갑스럽게 보도했고, “어른이 보험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라고 제호를 달아 판매를 부추겼다. 또한 “어린이보험은 일반 보험보다 싼 보험료가 매력이고 보험사 입장에서도 젊은 층의 고객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커지는 어른이 보험 시장…소비자·보험사 ‘방긋’”이라며 어른이 보험을 미화하며 가입을 부추겼고 지금도 여전하다.

어린이보험을 어른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잘못이다. 필자는 보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린이보험 가입자 3명중 1명이 성인이라니 놀랍고 황당하다. 보험사들의 ‘과열 마케팅’과 ‘도 넘은 변칙’의 산물이라고 본다.

혹시라도 일부 보험사가 “돈벌이를 위하여 어린이보험을 어른에게 파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 있고, 나아가 “어른이 보험이 잘못이라고 지적할 일이 아니다”라며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게 반문하거나 따지는 보험사가 있다면 그 보험사는 결코 정상적인 보험사라고 할 수 없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좋고 안면을 몰수해도 좋다는 것이므로 상식을 무시한 보험사, 염치가 없는 보험사, 기본이 안 돼 있는 보험사라고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어른이 보험이 변칙 보험으로 기본을 무시한 채 시장을 더럽히고 누워서 침 뱉는 보험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보험을 팔기 전에 신중하게 앞뒤를 분별해야 하고 보험사들 스스로 천박하고 찌질한 삼류 보험사를 자초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어린이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일에는 기본과 원칙이 있으므로 이를 준수해야 하고 상식적이고 합당하며 정직하고 정상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돈벌이와 실적 달성이 시급하고 중요하더라도 보험사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 있는 것이다. 어린이보험을 20대에게 변칙으로 판매하지 말라는 얘기다.

20대 고객에게는 어린이보험이 아니라 성인 보험을 팔아야 한다. 20대의 니즈에 맞게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면 될 일이고, 사업비를 적게 부가해서 보험료를 낮춰 정정하고 당당하게 판매하면 될 일이다.

보험은 가입자를 위한 상호부조의 제도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상품 판매는 보험사 돈벌이가 아니라 소비자 편익이 최우선 돼야 하고, 그 바탕에 정직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잔머리와 잔꾀를 부려 속이지 말고 변칙을 행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럴 때 금감원장이나 금융위원장이 나서서 보험사들에게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고치도록 지시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행여라도 ‘상품 자유화’를 핑계 삼아 책임을 회피할 일이 아니고, 등 떠밀려 마지못해 지시할 일도 아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잘못을 반성하고 고쳐야 신뢰가 생기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변칙을 강행한다면 올바른 보험사가 아니다. 돈벌이가 더 중요하다면 보험이 아니라 차라리 간판을 내리고 업종을 바꿔서 다른 장사를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앞에서 필자가 지적한 내용들이 비단 필자만의 허황된 생각이고 필자가 오해한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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